사랑이 지나간 자리

by 오후야


20대의 끝자락, 나는 내 청춘의 절반을 차지했던 긴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개 연애가 끝나면 사람들은 헛헛한 마음을 지우기 위해, 혹은 처량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무언가에 매달린다. 나 역시 그랬다. 이별이라는 커다란 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처음 선택한 건 잠깐의 도망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조금 먼 곳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낯선 풍경 속에 나를 던져두면 그 사람과의 추억도 함께 씻겨 내려갈 줄 알았다.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내 마음은 여행 내내 큰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그렇게 좋아하던 호텔 조식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에는 앞으로 나는 또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누구와 만나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여행동안 무얼 봤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내가 붙잡은 건 뜻밖에도 검도였다. 어느 날 퇴근길, 낡은 상가 건물 지하에서 울려 퍼지는 기합소리에 발걸음이 멈췄다. 눅눅한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땀 냄새와 발과 나무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좋았다. 그 투박한 세계라면, 내 안의 어지러움을 잠시라도 눌러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장 문 앞에 섰을 때, 별로 덥지도 않은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문고리를 잡았다 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문을 열었다. 자욱한 먼지와 기합 소리, 호구를 쓴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나를 구원하러 외계에서 온 전사들 같았다.


검도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물은 생각보다 비쌌다. 빳빳한 남색 도복과 묵직한 죽도, 얼굴과 몸을 감싸는 호구까지. 월급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별을 통과하기 위한 통행료쯤으로 여겼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도장 바닥을 맨발로 디디며 죽도를 휘둘렀다.

“머리!”, "허리!", “손목!”을 외칠 때마다 내 안의 미련도 함께 잘려 나가길 바랐다.


운동이 끝나면 도장사람들과 근처 선술집으로 향했다. 오징어회를 안주로 삼아 소주를 연겨푸 들이켰다. 술기운이 오르면 운동으로 녹초가 된 몸의 통증과 이별의 잔여물이 묘하게 섞였다.


“오늘 많이 힘들었죠?”
“네, 정말 죽을 것 같아요.”


그 말이 몸을 향한 것인지, 마음을 향한 것인지 나조차 분간하지 못한 밤들이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 보면, 잠들기 직전까지는 그 사람의 얼굴이 조금은 흐려지는 듯했다.


전환점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아마추어 대회를 앞두고 고수님과 대련을 하던 날이었다. 나는 화풀이하듯 죽도를 휘둘렀고, 그 찰나의 빈틈을 상대의 죽도가 정확히 파고들었다.

“깡.”

호구를 썼는데도 머리가 징처럼 울렸다. 눈앞이 번쩍했고,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머리를 감싸 쥔 채 누워 있다가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마음의 아픔을 잊어보겠다고 시작한 수련이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마음에 생긴 구멍은 땀으로도, 기합으로도 메워지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날로 검도를 그만두었다.


이후에는 또 다른 도망을 선택했다. 공부였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를 옮겨놓으면 괜찮아질까 싶었다. 하지만 책 속 문장들은 마음에 닿지 않았고, 억지로 눌러 앉은 책상 앞에서 나는 더 작아졌다. 성적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고, 그 사실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를 붙잡아준 건, 너무도 진부해서 믿지 않으려 했던 진리였다.

지난 사랑은 사랑으로 잊힌다는 말. 모든 방황 끝에, 다정한 온기를 가진 한 사람을 만났다. 지금의 남편이다. 그는 내가 검도장에서 기합을 내지르지 않아도, 무언가를 증명하듯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텅 빈 마음을 무언가로 채우려 애쓰던 20대의 긴 몸부림은, 그가 내 옆에 가만히 안아주었을 때 멈췄다.


방황의 끝은 그 어떤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누군가의 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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