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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Apr 05. 2021

[인터뷰]염혜란 "수천수만 가지의 저를 찾아가는 중"

제공=찬란


다음은 3월 2일에 나온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그야말로 염혜란 전성시대이다. 지난 2월에는 염혜란이 나오는 영화 ‘빛과 철’ ‘아이’ ‘새해전야’로 무려 세 편의 작품이 개봉했다. 어떤 영화는 조금 일찍 개봉하게 됐고, 어떤 영화는 늦게 나오는 바람에 겹쳤다고 하지만 각 작품 속에서 염혜란은 다른 페르소나로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영화 ‘빛과 철’(감독 배종대)는 지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되고 염혜란이 한국 경쟁부문의 배우상을 받으며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아 관객이 기다린 작품 중의 하나이다.

‘빛과 철’은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히게 된 두 여자와 그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시크릿 미스터리로 염혜란은 교통사고 후 의식불명이 된 남편과 남은 딸을 위해 가장이 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영남’을 맡았다.

지난달 염혜란과 화상 인터뷰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그는 ‘빛과 철’이 촬영한 지 3년 만에 개봉하는 것에 대해 “어렵게 세상에 나와서 뭉클하기도 하고, (배종대) 감독님께서 고생하는 걸 자세히 못 봤지만 작품에서 노고가 느껴졌다. 이렇게라도 개봉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며 “작품이 너무 어두운 얘기가 될까 봐 걱정된 것도 있고, 처음에는 제 연기만 보여서 아쉬운 게 보였는데 전체적으로 힘이 있는 영화라 재미있게 봤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내용을 아는데도 ‘어떻게 될까?’라며 저를 사로잡더라. 그때 ‘관객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싶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제공=찬란


염혜란은 영남을 봄이 오기 전에 얼음 밑에 흐르는 물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사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내면으로는 단단한 얼음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물이 흐르는 거처럼 자칫 잘못하면 깊은 물 속으로 빠질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영남의 상처는 방금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생긴 상처이다. 그래서 마치 무딘 거처럼 보이고 아무 일이 없던 거 같은 사람이지만 한편으로 감정을 묻어두며 사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인물의 감정을 미스터리 장르로 풀었는데 더 중요한 건 인물의 섬세한 변화였어요. 최근 들어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나오지만 여태 이런 작품은 없었던 거 같아요. 여자 주인공이면 전문직이나 한이 많은 거였는데 보통 삶을 살고 있는 여자들이죠. 그 사람들이 가해자, 피해자의 부인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떠나 이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여자와 여자가 만나서 긴장감을 가지고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빛과 철’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 빛과 철이 그리 와 닿지 않는 단어여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염혜란도 감독에게 가장 처음 물어본 질문이 제목의 뜻이라고 한다. 그는 “감독님께 물어보기 전까지는 이미지로 느낌이 왔었다. 빛과 철이라는 게 너무 안 어울렸다. 같이 있는 느낌이 안 들었다. 빛과 철이 같이 오는 게 낯설고 너무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눈부심이 좋지 않고 나를 찌르는 느낌까지 들었다. 감독님은 빛과 철을 교통사고로 느꼈다지만 ‘빛과 철이 오랜 시간 함께하면 철이 따뜻해질 테니까 서로 다른 존재인데 만나지기도 하지 않을까?’라고 영화를 다 찍고 나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해석했다.

제공=찬란

염혜란은 ‘빛과 철’은 김시은의 영화라고 치켜세웠다. 김시은은 극 중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자신을 고통 속에 살게 한 그날의 진실을 파헤치는 ‘희주’를 맡아 염혜란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주고받았다. 염혜란은 김시은과의 첫 촬영 날 감독님이 촬영 전까지 둘이 만나지 못하게 한 이유를 몰랐다고 시사회 후 간략한 무대인사에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감독님께서 저희 둘에게 긴장감을 넣고 싶어서 저희를 못 만나게 하고 처음 촬영부터 넣어주셨다. 안 그래도 첫 촬영은 너무 긴장되고 어려운데 김시은이라는 배우가 철처럼 단단하고 제 앞에서 독기를 품고 앉아있었다. 이때 ‘혹시 김시은이 염혜란을 싫어하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날카로운 철 같았다. 힘든 장면이었지만 칼날이 날아든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김시은 배우와는 첫 대면부터 그 감정으로 쭉 가야 해서 현장에서 친해질 수 없었다. 촬영하면서 사적인 얘기보다 오히려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 이후에 편해졌다. ‘빛과 철’은 김시은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만큼 너무 잘했다. 제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았지만 받으면서 민망한 게 이건 김시은이 너무 잘해서 시은씨가 받아야 하는 상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도 시은씨 테이크를 많이 가서 ‘일부러 저러나?’싶은 점도 있었다. 이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연기하고는 나중에 힘들었다고 고백해서 몰랐다. 박지후(영남의 딸 ‘은영’ 역)도 가지고 있는 심성이 맑고 착한 아이고 신중하려고 노력해서 연기할 때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했다”며 함께한 배우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빛과 철’을 보면 마지막 엔딩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교통사고로 얽힌 두 여자와 그 앞에 서 있는 고라니. 특히 고라니가 화면에 꽉 차 있는 모습을 볼 때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염혜란은 엔딩에 대해서 “인간사에서 치고받다가 고라니 눈을 보는데 제가 허튼짓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대 자연 앞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는 것처럼 ‘뭘 향해 아등바등 죽겠다고 난리니?’ 그런 메시지 같았다. 고라니 눈에서 은영이가 느껴졌다. ‘엄마 나는 어디로 간 거 같아?’ ‘나는 안 찾고 어디로 가고 있어’ ‘쓸데없어 보이는 싸움을 하고 있어’처럼 내가 가야 할 길에서 ‘이 길이 아니지’라며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감독님이 엔딩의 고라니가 처음 로드킬을 당한 새끼 고라니의 엄마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다고도 하셨다. 점점 의미가 많아지는 작품이다”고 전했다.

제공=찬란

대세 배우 염혜란은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카운터 추매옥 역으로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다시 한번 받았다. 그는 “이렇게까지 재미있게 봐주실 줄 몰랐다.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이 매력적이다. 제가 예상하는 것과 벗어나는 즐거움이 있을 수 있고 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때 제가 놓친 것도 알 수 있다. 또 예상보다 잘될 때 제가 느끼는 온도보다 시청자는 다른 온도로 보고 있구나 싶어서 이런 게 즐겁다. 매 순간 어떤 작품이든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제가 일을 좋아한다. 제 안에 이렇게 많은 저의 모습이 있는데 그걸 찾는 과정이 연기라고 생각한다. 연기의 스펙트럼도 저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수천수만 가지의 저를 찾아가고 있다”고 진솔하게 전했다.

염혜란은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게 환영할 만하고 박수 치고 싶다. 그래서 제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웃음) 어떨 때는 제가 변화에 늦게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들 때도 있다. 저도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제가 너무 고루하게 갇혀서 살고 있지 않나 생각될 때가 있다. 작년에 영화 ‘아이’를 찍을 때도 극에서 의사 역할의 배우가 여자였는데 제가 그분을 뵙고 "여자였군요"라고 내뱉더라. 제가 저 스스로 놀래서 여자가 많이 나오는 영화가 갈급하다고 하면서 왜 의사는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돌이켜 봤다. 그때 꽉 막혀있는 모습에 뒤떨어져 있고 저부터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자신을 회상하면서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한편, 염혜란이 주연으로 활약하는 영화 ‘빛과 철’은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http://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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