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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Apr 25. 2021

'더 픽션' 정동화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느꼈으면"

정동화.(제공=HJ컬처)


다음은 4월 10일 나온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네가 없었으면 나도 없었을 거야> 이 말은  와이트에게 하지만,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뮤지컬 ‘더 픽션’(제작 HJ컬처)은 소설 속 살인마가 현실에 나타났다’는 설정을 시작으로, 거짓과 진실, 선과 악, 픽션과 논픽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1932년 뉴욕을 배경으로 연재소설 작가 그레이 헌트와 신문사 기자 와이트 히스만, 형사 휴 대커 역의 3명의 배우가 열연하며 진심 어린 비밀이 숨겨진 그 날의 사건을 그려낸다.


2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더 픽션’에서 연재소설의 작가 그레이 헌트 역에 뮤지컬 ‘쓰릴 미’, ‘라흐마니노프’, ‘비스티’,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등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로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 정동화가 새롭게 합류해 그만의 그레이 헌트를 만들고 있다.


열린뉴스통신은 지난달 말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정동화와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와 인터뷰에 앞서 제작사 HJ컬처에서 그간 정동화를 섭외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후문을 듣고 직접 전하니 “지난 시즌에 말씀하시긴 했는데 그때 동시에 올라가는 작품이 먼저 이야기가 돼서 참여를 못 했다. 이번에 다시 연락을 주셔서 대본을 다시 읽어봤는데, 막힘없이 한 번에 쭉 읽히더라.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음악은 들어보지 못한 상태였지만 HJ컬처 색깔이 저도 되게 좋아하는 색깔이고 사랑하는 작품들이라 믿고 함께 하게 됐다”며 겸손하게 전했다.


정동화는 ‘더 픽션’에 이번 시즌 합류하면서 고민한 지점으로 “그전에는 작품을 보지 못했고, 연습할 때 뉴 페어 위주로 진행하게 해줬다. 대본을 읽으면서 제가 생각한 부분을 연출과 음악부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다가 후반 돼서 다 같이 모여서 연습하니까 저에게 다른 느낌이 있다고 하더라. 큰 차이는 아니겠지만 그런 부분 중에 연출님께서 이야기가 좀 더 세밀하게 다가왔다고 하셨다. 정확히 어떤 지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큰 이야기의 주제가 다가왔다면 지금은 인물들의 관계나 상황, 상태가 보여서 또 다른 느낌이었다고 하더라”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극 중 그레이 헌트는 무명작가로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글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 소설이란 무엇일까 묻자 정동화는 “꿈이죠”라고 바로 답했다. 이어 “다 꿈을 꾸잖아요. 저도 배우로서 꿈을 꿨고 공연계 안에서는 감사하게 활동을 많이 하지만 밖에 나가면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끝이 없다. 배우가 되고 싶다가 배우가 되면 더 좋은 작품 참여하고 싶고 알려지고 싶고 꿈이 계속 높아진다. 작가로서 자기 글이 알려진다는 건 꿈을 알리는 거라 그가 다른 일을 했어도 손에 안 잡히고 재미가 없었을 거 같다. 늘 글 쓰는 거에 대한 꿈이 있었을 거 같다”고 덧붙였다.

정동화.(제공=HJ컬처)

다음은 정동화와 일문일답이다.


Q. 어느 날 ‘트리뷴’의 기자 와이트가 그레이 헌트 앞에 나타나 10년 전 발표한 ‘그림자 없는 사나이’를 수정해 다시 연재하자고 말한다. 이때부터 그레이 헌트의 감정 곡선을 설명하자면.


"기대가 없이 와이트를 맞이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가 혼자 연습하고 있는데 갑자기 “빅히트인데 같이 어디 가자”고 하는 느낌이죠. 기대가 없이 이 사람을 맞이했다가 제 작품에 관심을 가지니까 그 이야기에 빠져서 또 자꾸 어필하게 돼요. 대본에 없는 내용인데 저는 그때 제 작품의 장르가 어떻다며 애드립을 쳐요. 꿈에 다가갈 상황이 눈앞에 있으니까 기뻐서 죽어있던 감정이 올라가죠. 그러다 제가 망했던 작품 때문에 캐스팅하고 싶다고 하니까 ‘나 그거 때문에 무명이 된 건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연습하면서 제가 살리고 싶었던 부분인데 그레이 헌트가 ‘그림자 없는 남자’ 때문에 무명이 됐다는 설정이 없었는데 저는 이런 디테일을 넣고 싶다고 했어요. ‘내가 이 작품 땜에 망했고 꼴도 보기 싫다’는 마음이 있다가 와이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감정이 바닥을 치게 되는 거죠. 그러다 와이트가 계속 작품을 같이 하자고 구애를 하니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때부터 서로의 시너지가 나지 않았나 싶어요."


Q. 경찰 ‘휴 대커’는 와이트와 그레이 헌트가 함께한 2년의 세월이 행복했을까 묻는데 그레이 헌트로서 어떤가.


"2년이 행복했을 거 같아요. 다른 생각을 한 건 와이트이고 그리고 그런 다른 생각이 나쁘다기보다 그 친구는 트라우마를 이 작품을 통해서 해소해요. 그거와 별개로 그레이 헌트는 꿈을 잃어가는 과정에 동반자가 있고 조력자가 있어서 행복했을 거 같아요. 살인사건이 가시화되고 언론화되면서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행복했을 거 같아요."


Q. 와이트가 편집자로서 작가의 의도와 글을 마음대로 쓰는 거에 대해 불편하지 않았나.


"의심이 쌓이긴 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와이트가 빨간펜 들고 체크할 때 “무슨 일 있어? 왜 체크해?”라고 물으며 그런 의심의 지점이 쌓이기 전까지는 행복하다가 나중에 알게 되고 마냥 편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뒤에 이럴 줄 알았으면 소설 안 썼다고 싸우게 되죠."

정동화.(제공=HJ컬처)

Q. 소설 속의 자극적인 내용으로 비평가들로 인해 연재가 중단됐고, ‘블랙’을 모방한 살인사건으로 대중이 열광해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그레이 헌트의 마음은.


"연재 중단됐을 때는 참담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와이트가 별 일 아니라고 할 때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말하죠. 그런데 와이트가 다음 주 연재를 준비하는 거처럼 거짓말할 때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서 중단됐다는 거 안다고 말하며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그리고 힘들게 얻은 기회여서 그랬지만 다시 연재를 시작했을 때는 ‘혹여나 이러다 살인사건이 나면 어떡하지?’ 싶다가도 그 이면에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에요. 다시금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대감이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일단 알았다”고 해요. 이 부분도 그레이의 심리가 오묘해서 대사를 살짝 바꿨어요. 원래는 “이게 기회일까?”라고 써있었는데 저는 그래도 조금 더 걱정하고 싶어서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라고 해요. 연재 재개할 때도 “알겠어”가 아니라 “일단 알겠어”로 말해 “일단”을 넣었어요. 기분은 좋겠지만 쉽게 결정하기 힘든 상태인 거 같아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단면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Q. 만약 공연하고 있는 내용의 살인 사건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면 어떨 거 같나.


"처음부터 불안감이나 위기의식이 있을 거 같지는 않아요. 신기하거나 황당하며 놀랐을 거 같아요. 좋고 싫고를 떠나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우연의 일치 아니야?’같은 놀라움이겠죠. 그러다 점점 극의 내용과 살인 사건이 맞아 떨어져 갈 때 걱정과 두려움으로 바뀔 거 같아요."


Q. ‘더 픽션’의 물음처럼 범죄자를 죽이는 살인마는 정의로운 것일까.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개인적으로 찬성한다기보다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미드 ‘덱스터’에서 연쇄 살인마만 죽이는 사람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죽이려는 살인 충동이 있었는데 아빠가 경찰이다 보니 자기 아들에게 이왕 드는 살인 충동을 좋은 일에 쓰라고 나쁜 사람을 정리하는 법을 알려주죠. 그래서 이 사람은 나쁜 사람만 처리해요. 이런 걸 보면서 한편으로 해소해주는 게 있지 않나요. 법이 해결 못 하는 범위가 있을 때 사람들은 통탄을 금치 못하잖아요. 그래서 블랙이 범죄자를 해결할 때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레이 헌트로서는 그 부분을 많이 걱정했던 거 같아요. 와이트가 “어차피 나쁜 놈은 죽어야 한다, 살인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레이는 “살인마가 정의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묻잖아요. 그레이는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 같아요. 왜 살인범이 되었는지 그의 트라우마와 전사까지 걱정하는 거 같아요."


Q. 작품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작품의 자치는 무엇으로 평가해야 할까.


"작품을 참여하고 있는 당시와 꽤 시간이 지난 이후의 평가인 거 같아요. 몸담고 있었을 때 평가는 사실은 좋은 평가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죠. 사랑을 많이 받고 싶은 건 원초적인 마음인데, 이 시즌이 끝나고 돌이켜 봤을 때 그제야 모난 부분이 들어오는 거 같아요. 이 순간에 모난 부분을 이야기해도 설사 그게 맞는 이야기일지라도 받아들여지고 필터링이 되어서 승화가 되기 어려워요. 이 이야기는 공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거 같아요. 이 이후에 평가까지도 품어 안을 넓은 시야가 초반에도 있다면 그 사람들은 이미 성공했겠죠? 예전에 어떤 말을 들었는데 혈기왕성한 청년에게 노인의 통찰력이 있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글인데 그게 맞더라고요. 저도 어릴 때는 누가 뭐라 하면 ‘내가 생각한 연기와 해석이 다른데?’라고 생각하지 ‘한 번 해볼까?’라고 생각하는 20대의 사람들은 극히 드물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선배가 되고 나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제가 20대에 그런 통찰력까지 있었다면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예술관으로 더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해요. 그래서 나이 먹어야 하나 봐요. (웃음)"

정동화.(제공=HJ컬처)

Q. ‘더 픽션’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1번 넘버 ‘기억’이요. <시간을 되돌려서 모든 걸 지울 수 있다면, 지나간 내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말을 하는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처음과 마지막 대사가 그 캐릭터를 만들어요. 위 대사가 그레이 헌트를 만들죠. 후회와 안타까움의 대사인데 그 넘버가 그레이의 색깔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연 전에 항상 이 넘버를 체크해요. 그런데 이 말은 관객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저는 공연 외의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좋아했어요. 요즘에는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니까 예전 추억이 떠오르면서 ‘기억’ 넘버가 그레이로도 그렇지만 저를 건드는 넘버에요.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싶은 찰나의 순간인데 그게 자꾸 생각나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대사처럼 먼지처럼 작은 사건들이 저에게 눈덩이처럼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에요."


Q. ‘더 픽션’으로 주고 싶은 메시지는.


"어렵네요.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다 끝난 거 같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처럼 희망은 아직 있습니다."


Q. 그레이 헌트로서 와이트에게 한마디 하자면.


"<네가 없었으면 나도 없었을 거야> 이름은 누가 불러줘야 있는 거잖아요. 자기 스스로 이름을 말하면 되게 민망하잖아요. “나 정동화다~”이러면 웃긴데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 이름이 빛나는 거로 생각해요. 와이트가 그레이 헌트한테 작가님이라고 불러줘서 작가인 거지 그게 아니면 그냥 한 사람이에요. 작가라는 직함과 그레이 헌트의 이름을 빛나게 해주는 게 와이트에요. 그리고 이 말이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제가 중의적으로 하는 대사가 몇 개 있는데 관객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거란 말이 하고 싶어요."


Q. 다른 작품에서 중의적으로 한 대사가 더 있다면.


"‘비스티’ 엔딩 대사인데 <내년에도 너희들과 함께 생일 파티하고 싶다>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너와 나 톰, 이게 전부야, 참 아름답지 않니>이다. 톰도 관객이에요."


한편 정동화는 뮤지컬 ‘더 픽션’과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에 출연 중이며, ‘더 픽션’은 5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티오엠 1관에서 공연된다.


http://cms.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67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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