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자산어보' 수묵담채화같은 흑백의 미학"
[인터뷰①] 이준익 감독 "'자산어보' 수묵담채화같은 흑백의 미학 담아"
이준익 감독.(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다음은 4월 20일에 나온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감독은 배우를 무조건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어떡할 거야?”
영화 ‘자산어보’는 ‘사도’, ‘동주’, ‘박열’ 등으로 역사 속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대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의 신작으로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과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라는 인물을 새롭게 발견함과 동시에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산어보’는 매 작품 대체할 수 없는 연기력을 선보이는 설경구와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변요한을 필두로 한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배우들의 의기투합으로 완성됐다. 설경구는 ‘정약전’을 맡아 첫 사극 영화에 도전했으며 변요한은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를 맡아 서로에게 벗이자 스승이 되어준다.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그린 ‘자산어보’는 무채색의 미학을 담은 수려한 영상미를 자랑한다. ‘동주’에 이어 흑백영화를 택한 이준익 감독은 “흑백이 주는 장점은 선명성이다. 현란한 컬러를 배제하면 물체나 인물이 가진 본질적인 형태가 더욱 뚜렷하게 전달된다. 선명한 흑백으로 조선시대 풍물을 들여다보니 그 시대와 인물의 이야기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이준익 감독은 정약전이200여 년 전 유배를 가서 마주한 아름다운 자연을 담기 위해서 가장 유사한 조건을 가진 장소를 물색했다. 실제 흑산도는 해변에 해안 도로가 없는 것을 포함해 영화 촬영에 적합한 제반 여건이 형성되어있지 않아 가장 유사한 조건을 가진 도초도, 비금도, 자은도 등 최적의 장소를 찾아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설경구와 변요한도 촬영지에서 있던 나날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할 정도로 1800년대의 조선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의 개봉 소감으로 “코로나 때문에 1년 동안 시간이 멈춰있던 걸 투자배급사에서 과감하게 당겨서라도 하자고 했다. 극장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왔지만 무너지는 극장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가자고 했는데 다행히 앞에서 ‘미나리’도 나오고, 뒤에 백 편 가까이 있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보람이 되겠다. 극장이 없어지면 영화가 없어진다. 극장이 몇천억씩 손해를 보고 있는데 큰일 났다”고 전하며 영화산업을 걱정하면서도 ‘자산어보’가 앞으로 개봉할 영화의 디딤돌이 되길 함께 바랐다.
이준익 감독.(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다음은 이준익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Q. 정약전과 ‘자산어보’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역사 속을 헤매면 어디에 감각적으로 캐치되는 게 있다. 영화가 나온 후 되짚어서 보면 조선의 개인의 근대성을 찾아보자고 꾸며대기 시작했다.(웃음) 우리나라 사회는 개인주의가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는데 얼마 전까지 공동체 의식과 국가주의로 봤다. 역사를 바라보다 보면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바라본다. “조선의 근대가 어디야?”라고 물으면 ‘갑오개혁?’ ‘동학혁명?’ ‘식민지 근대화론인가?’라며 부정확한 사건을 찾아 헤맸다. 개인의 근대성을 찾아가 보면 맥락이 보이지 않겠나 했더니 동학이 우선적으로 살아야 한다. 프랑스 혁명은 성공했다. 동학혁명과 프랑스혁명과 뭐가 다를까. 동학은 왜 동학일까? 그러다 동학 앞에 서학이란 게 있단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서학을 알게 되고, 서학 앞에 북학이 있네? 그리고 남학을 안 배워서 일본에 나라가 먹혔다. 서학에 관심 갖은 인물이 황사영이란 인물인데 황사영 백서가 눈에 띄더라. 황사영 백서를 논문으로 쓴 분이 있어서 작가를 대동해서 이야기를 썼는데, 시나리오를 쓰다가 공부가 부족해서 ‘사도’, ‘동주’, ‘변산’ 다 찍고 다시 펼쳤더니 갑자기 정약전이 크게 들어왔다. 황사영이 정약전의 조카사위였는데 성리학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보고 상소문을 로마 교황청에다가 보내고 죽었다. ‘그 아픈 순간에 정약전은 왜 유배를 가서 자산어보를 썼지?’ ‘자산어보 책은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와 어떤 차이가 있지?’를 생각하면 영화의 전체적인 지도가 잘 보인다. 대학에 나오는 말로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에서 격물이 뭐냐면 물건에 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건에 격을 부여하는 것은 곧 이름을 짓는 것이다. 약전이 창대에게 “짱뚱어가 뭐냐?”묻고 한문으로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눈이 튀어나왔으니까 철목어라고 짓는다. 약전이 물건에 대해서 이름을 부여한 거로 가치의 쓰임새를 쓴 게 자산어보이다. 이건 자연과학책이다. 정약용이 목민심서 초고를 쓸 때마다 형한테 보내서 자문을 구하는데 정약전도 굳이 중복해서 쓸 필요가 뭐가 있나. 이건 제 추측이다. 영화감독이 뭔가를 할 때 자기 정당성이 있어야 하니까.(웃음) 반대로 유배를 정약용이 흑산도로 가고 정약전이 강진이 갔으면 자산어보 안 나왔을 거 같다.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안 썼을 거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가치관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영화이다. 외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느낄 수 있게 하는 거다. 내용으로는 학문적으로 어렵고 깊을 수 있지만 영화를 찍을 때는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건데, 인물의 감정을 잘 엮어서 느꼈다면 그게 중요한 거다."
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Q. 설경구 배우가 영화제 행사에서 이준익 감독을 만나서 시나리오를 달라고 해서 얼마 뒤 준 게 ‘자산어보’라고 하던데, 원래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달라고 하면 바로 주시나.
"설경구 배우가 대본을 달라고 하는 게 고맙다. 잘나가는 배우들은 스케줄이 안 된다. 스케줄 될 때까지 기다리면 내 인생은 어디 갔나. 캐스팅의 첫 번째는 스케줄이다. 저는 기다리지 않고 스케줄 되는 배우가 같이하고 싶은 배우다. 그래서 영화를 많이 찍는 거다. 그래서 같이하고 싶은 사람 없다. 스케줄 되는 사람이랑 하고 싶다. 이름 다 아는 배우는 검증된 사람인데 왜 의심을 하나. 오만이다. 이미 다른 영화에서 충분히 검증받은 사람들이다. 물론 단역이나 ‘동주’에서 박정민이나 ‘박열’에서 최희서 같은 역은 오디션을 보고 뽑았지만 이미 유명한 배우들은 굳이 안 찾아본다. ‘사도’ 유아인, ‘동주’ 강하늘 다 스케줄 돼서 찍은 거다. 촬영하면서 프리프로덕션 사이에 기다리는 경우는 있지만 그 외에 기다린 배우는 없다."
Q. 정악전의 설경구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창대의 변요한도 그에 못지않게 각인이 되더라. 어떻게 변요한과 함께하게 됐나.
"변요한 생각도 안 했다. TV를 안 본 지 몇십 년이 됐다. ‘미스터 선샤인’도 안 봤으니 변요한이 연기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설경구가 변요한을 추천하니까 같이 한 거다. 설경구가 추천하는데 누가 안 믿겠는가. 생각해본다고 하고 스케줄이 된다고 해서 ‘그럼 한번 해보지’ 싶었다."
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Q. 굉장히 솔직하신데, 그 뒤에 변요한 배우의 필모그래피 영상을 찾아보셨나.
"안 찾아봤다. 그냥 믿었다. 저는 배우는 무조건 믿는다. 저의 큰 장점은 배우를 믿는 거다. 감독이 배우를 안 믿으면 기댈 데가 없다. 감독의 생각과 마음은 배우를 통해서 영화로 관객과 만나는 거다. 감독은 배우에게 생각과 마음만 전하면 된다. 그래서 연기에 대한 디렉션도 없다. 배우가 알아서 하는 거다. 영화 찍다가 연기가 별로라고 갑자기 바꿀 수 없다. 무조건 믿어야 한다."
Q. ‘동주’에 이어서 ‘자산어보’도 흑백으로 조선을 보여주면서 공을 더욱 들인 부분이 있는지.
"‘동주’ 때 아쉬움이 많았다. 상업 영화라고 하기에는 볼거리가 없었다. 상업 영화 시장에서 5억 가지고 찍은 건 정말 저예산이다. 그래서 조명도 촛불로 놓고 찍었다. 그땐 그게 맞았다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의 분위기는 암흑이고 칙칙하다 보니 동주와 몽규를 빛내기엔 그게 맞았다고 생각하지만 영화적인 메커니즘은 아쉬웠다. 이번에는 그걸 만회하기 위해 아주 비싼 건 아니지만 중간 정도 카메라로 찍고 로케이션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했다. 앵글을 잡을 때도 넓고 크게 잡았다. 약전이 창대에게 뛰어갈 때 풀샷으로 잡고 색이 없으니까 움직임과 감정이 보인다. 컬러였으면 이런 게 보이지 않았을 거다. 흑백만이 구현해낼 수 있는 수묵담채화 같은 느낌을 담았다."
이준익 감독.(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Q. 사도 세자, 윤동주, 박열처럼 실제 역사 속 인물을 계속 스크린에 담고 있는데 부담도 될 거 같다.
"자칫 발걸음이 꼬일 수 있다. ‘박열’에서 대놓고 고증에 대한 자막을 넣어서 흠이 잡히지 않았는데 자만해서 말도 안 되는 허구를 넣으면 내 영화에 내가 발목 잡히는 거다. 그래서 항상 자막에 이 내용에 대한 정확한 워딩을 써 넣는다. 이번에도 ‘이 영화는 자산어보 서문에 쓰여 있다’고 적어뒀고 본문을 보면 창대가 말한 게 있다. 나머지는 창작이 아닌 거다. ‘자산어보’를 번역하신 정명현 학자가 있다. 그분께 시나리오를 보여줘서 고증에 어긋난 걸 50군데 찾아서 수정했다. 인문과학에서 고증을 받았으니 이제는 자연과학으로 받아야 하니 ‘현산어보를 찾아서’ 이태원 작가에게 수정을 의뢰했다. 어떤 것은 고증에 안 맞아도 영화적 선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짱뚱어였다. 흑산도에는 갯벌이 없기 때문에 짱뚱어가 없다. 고증에는 안 맞지만 약전이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는 모습으로 넓적한 넙치는 백사장에 없고 다른 물고기는 설명하기 복잡하고 짱뚱어는 눈이 볼록해서 쉽더라. 관객들에게 약전이 물질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장면을 쉽게 설명하기에는 딱 맞더라. 이태원 작가에게 고증에는 어긋나지만 영화적인 선택을 위해서 쓰겠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는 생물과학자들은 의아하겠지만 영화적 허용치 안에서 볼 수 있지 않나. 스태프 시사할 때 정명현 학자와 이태원 작가를 모셔서 보여드리고 영화를 낼 때 결함이 없냐고 여쭸더니 없다고 하셔서 영화를 내게 됐다. 고증을 다 맞추려면 다큐멘터리를 찍어야지 왜 영화를 찍나."
[다음 내용은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http://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685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