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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May 01. 2021

이준익 감독 "역사는 우리 이야기, 왜곡-날조 안 돼"

[인터뷰②] 이준익 감독 "역사는 우리의 이야기, 왜곡과 날조는 안 돼"


이준익 감독.(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다음은 4월 20일에 나온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영화 ‘자산어보’는 ‘사도’, ‘동주’, ‘박열’ 등으로 역사 속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대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의 신작으로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설경구 분)과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변요한 분)라는 인물을 새롭게 발견함과 동시에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음 내용은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Q.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단순히 소비되지 않고 ‘자산어보’의 이정은, ‘박열’의 최희서 배우처럼 혼자 우뚝 서 있는 독립적인 인물이더라. ‘가거댁’은 어떤 인물인가.


"이정은 배우도 설경구가 추천해 캐스팅했다. 가거댁의 대사 중에 <씨만 중허고 밭 귀한 줄은 모르는 거 말이여라. 씨 뿌리는 애비만 중하고 배 아파가꼬 낳고 기른 애미는 뒷전인디. 인제 자식들도 애미 귀한 줄 알아야 써>라는 말이 있다. 정약용이 유배를 가다가 주막에서 잘 때 주막 할머니가 이 대사를 한 거다. 200년 전에도 이런 주장을 유배 가는 정약용 앞에서 한 거다. 다만 정약용의 기록에 있는 걸 약전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니까 가거댁의 대사로 가져와서 시대상의 단면을 표현한 거다. ‘애절양’은 시로 안 쓰고 장면화시켰는데 남자가 아전 앞에서 자신의 양기를 잘라서 그의 여자가 그걸 들고 오열하는 걸 담았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정약용이 나주에서 목격한 걸 창대가 목격한 거로 바꾼 거다. 이것이 목민심서의 장면을 창대가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사극에서 특정한 장면을 사용할 때는 때로 장면을 대치해서 시대의 맥락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거로 사용할 수 있다. 왜곡과 날조가 있는데 이건 분명한 왜곡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묻자면 이건 합당한 왜곡이다. ‘황산벌’이나 ‘왕의 남자’에서는 사극의 기준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기준이 강해져서 잘 알아보지 않으면 더 찍기 힘들다."

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Q. ‘자산어보’에서 창대가 사람 노릇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는데 감독님이 생각하는 사람 노릇이란 뭔가.


"그 시대는 신분 사회였다. 지금은 신분 사회가 아니어도 계급의식이 있다. 인싸(인사이더), 아싸(아웃사이더)도 다 계급의식인데 부당한 관점이라고 본다. 세대에 대한 계급에 꼰대도 있지만 세대 차라는 건 부정확한 관점이다. 세대 차보다 정확한 게 개인차이다. 어린 애 같은 할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애도 있다. 이건 개인차다. 세대를 구분해서 사고하는 방식은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세대 구분을 자꾸 사회적으로 종용한다. 그리고 상업주의 때문에 상업적으로 정치로 써먹는다. 그래서 전근대적인 신분 사회의 세대 의식이 강하다. 그런데 이런 세대 의식을 깨야한다. 세대 의식을 깨면 개인주의가 나온다. 사람들은 자기 세대 안에 자기를 가두는 우를 범한다. 관객 중에 약전과 창대를 세대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습관적인 관성이다. 약전과 창대는 개인차다. 창대의 개인성은 어디로 향하는가가 욕망의 본질인데 욕망의 본질은 환경에서 선택하는 거다. 약전의 자산어보와 약용의 목민심서의 길이 있듯이 창대는 약전과 약용 사이에서 그들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드라마의 기능으로 짠 거다.


영웅이 나오는 영화에서 영웅주의는 미화하려고 찍는데 진실보다 사실을 근거로 위장시키는 거다. 영웅에게 일상은 없고 영웅적 행동만 있다면 말이 안 된다. 그 영웅을 똑바로 바라보려면 비교되는 인물을 넣어줘야 실체가 선명해진다. ‘동주’에서 윤동주만 나오면 관념이고 추상인데 송몽규를 뚜렷하게 그려야 윤동주가 선명해진다. ‘박열’에서 후미코를 뚜렷하게 그리면 박열이 더 뚜렷하다. 창대를 뚜렷하게 그리면 약전이 뚜렷해진다. 상대적 개념으로 차이를 이야기 해야지 절대적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건 오류다. 상대적 비교를 통해 차이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 개인주의의 덕목이다.


이 영화는 약전이 창대를 인정하는 영화다. 그 인정은 클라이맥스에서 애절양 장면으로 창대가 아전의 목을 조르는 것은 자기 인생의 목을 조르는 거와 같다. 창대와 약전의 거래를 묶어준 게 갑오징어인데 갑오징어 먹물을 찍어서 글을 쓰면 선명하고, 오래되면 퇴색되는데 바닷물에 넣으면 다시 뚜렷해진다고 한다. 성리학을 열심히 배웠던 창대가 출세한다고 아전들과 어울리면 의미가 퇴색될 건데 다시 바닷속에 넣으면 선명한 지식과 가치가 되살아나지 않겠나. 그런 의미로 창대가 아전의 목을 조를 때 약전이 죽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약전은 창대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 창대의 가치를 헌사하는 거다. 그래서 이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일 수밖에 없는 거다. 갑오징어와 성개에서 나오는 파랑새와 같다. 성게 껍질 속 알이 파랑새가 됐고 ‘밤송이 새’라고 부른다고 창대가 말한다. 그리고 약전은 ‘창대가 말하기를’, ‘~라고 창대가 말하였다’라며 ‘자산어보’ 책에 창대를 인용한다. 당시 사대부의 선비가 어부가 말한 거를 굳이 안 써도 되는데 쓰는 건 건강한 개인주의로 존재를 인정하는 거다. 약용은 수직 사회를 지향했지만, 약전은 수평 사회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외면은 쉬워야 한다. 그리고 내면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영화는 재미와 의미의 두 가지 가치로 남아야 오래 남는다. 재미만 추구하면 오래갈까? 의미만 추구하면 보기 쉬울까? 내면의 의미를 찾아서 보면 더 재미있다."

이준익 감독.(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Q.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님은 먼곳에’, ‘사도’, ‘동주’, ‘박열’ 등에 이어 ‘자산어보’를 만드셨는데 유독 사극을 잘 만드셔서 그런지 ‘시대극의 대가’라는 말이 붙지 않나. 감독님에게 사극과 역사의 매력은 무엇인가.


"현재는 뭘 하나 하려면 파생되는 다양한 정보가 많아서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 보이는 면의 편차가 크다. 하지만 사극은 공통의 역사이다. 우리의 역사이다. 그러니 포커싱을 할 때 우리의 이야기를 잡는다. ‘자산어보’의 역사는 전라도 흑산의 이야기지만 우리 이야기다. 이게 역사의 강점이다. 공동체 의식을 포커싱할 때 역사가 우월한 지점에 있다. 그래서 고증과 관점에 대한 평가가 가혹하다. ‘동주’에서는 송몽규를 통해서 동주를 뚜렷하게 만들었다. 만약 송몽규가 근거가 부족했으면 엄격한 잣대로 곤장을 맞았을 거다. ‘우리의 윤동주인데 네가 감히?’ 싶을 거다. 찍을 때 얼마나 조심스럽겠냐. 또 강하늘과 박정민이 연기할 때 얼마나 조심스러웠겠냐. 역사물은 우리의 이야기이고,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 이야기였는데 내 영화가 되는 거다."

이준익 감독.(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Q.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사극도 좋지만 중간 중간 현대물이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장르를 선택하시나.


"장르적 욕심은 없고 임기응변으로 꽂히면 간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 사람이 찍은 거 맞나 싶게 들쭉날쭉 중구난방인데 그게 나다. 나는 자기 작품 세계를 가지런하게 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변산’의 실패가 도약이어서 ‘변산’ 작가랑 ‘자산어보’를 하게 된 거다. 사람들이 보면 ‘같은 작가와 감독 맞아?’ 생각할 거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도 같은 감독이라고 생각 안 한다. 저는 분열증이 있는 거 같다. (웃음) 작품 구상한 거는 널려있다. 다음 영화는 뭐할지는 전 영화의 결과가 말해준다. ‘변산’ 망하지 않았으면 ‘자산어보’ 안 했다. 누구나 망하면 초심으로 돌아가자 생각한다. ‘변산’ 잘됐으면 ‘자산어보’ 안 나왔다. 제 말이 장난이 아니다. (웃음) 실패는 좋은 보약이다. 굴곡 없는 삶은 시시하고 골짜기가 깊어야 봉우리가 높다. 깊은 골짜기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면 높은 봉우리를 꿈꾸면 안 된다. 시련이 오면 고통을 견뎌야 한다. 시련을 피하려면 행복을 기대하면 안 된다."


한편, 영화 ‘자산어보’는 20일 기준 누적 관객 수 30만 명이 넘으며 절찬리 상영 중이다.


http://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68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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