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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May 01. 2021

[인터뷰] '태일' 강기둥 "뜨거움보다 따뜻함으로"

제공=플레이더상상

다음은 4월 21일에 나온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전태일 열사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이미지를 묻는다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분신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강한 이미지와 달리 전태일은 유머러스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음악극 ‘태일’(플레이더상상(주))은 2017년 11월 트라이아웃 공연을 시작으로 2018년, 2019년에 무대에 오르고 현재 대학로 티오엠 2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자신을 바친 전태일의 모습과 한 사람으로서의 꿈과 삶의 여정을 담은 ‘태일’의 첫 장기 공연으로 ‘태일 목소리’에는 진선규, 강기둥, 박정원, 이봉준, ‘태일 외 목소리’에는 정운선, 한보라, 김국희, 백은혜가 무대에 오르고 있다.


최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태일’의 초연부터 참여한 강기둥 배우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강기둥은 ‘태일’의 첫 장기 공연에 대해서 “조금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동안 프로젝트식의 느낌이 있었는데 많은 분이 봐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장기 공연으로 한 거 같다. 반대로 이번 공연을 하면 ‘태일’이 오랜 기간 뒤에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장기로 해서 더 여유 있는 것도 아니고 매회 한번 한번이 소중하고 캐스팅이 늘어나서 공연을 한 회차는 비슷하다”고 웃으며 전했다.


2018년에 초연으로 만났던 ‘태일’과 지금 만나는 ‘태일’에서 달라진 느낌이 있을까. 그는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태일이가 공장의 어린 친구들에 대한 마음이 잘 느껴진다. 사실적으로 그의 마음을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스스로 태일의 삶을 돌아보면서 소녀에 대한 마음이 소중하고 컸다는 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제공=플레이더상상

다음은 강기둥과 일문일답이다.


Q.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배우들이 앞에 나와 전태일의 성격에 대해서 말해줬을 때 놀랐다. 그동안 너무 열사의 이미지로만 생각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강기둥 배우께서는 어땠나.


저도 느낌이 많이 달랐다. 노동운동에 앞장서고 분신을 한 강하고 어쩌면 현실감은 없는 사람으로 위인처럼 느껴졌다.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게 들어가는 사람 같다. 작픔을 만나면서 평범한 사람이 노동 운동가로 가게 되는 과정을 알게 됐다. 위인들이 꼭 위인처럼 태어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그런 상황까지 갈 수 있구나 깨닫게 됐다.


Q. 특히 전태일이 유머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기둥 배우와 겹쳐 보이기도 하던데.


어떻게 아셨냐. (웃음) 유머를 좋아하는 편이고 관심이 많다. 전태일도 주위를 재미있게 하는 걸 좋아했다고 하니까 그런 모습이 반가웠다. 진지할 거 같고 뜨겁기만 할 거 같은데 함께하면 즐거운 사람이더라.


Q. 극이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서 배우 두 분이 객석에 말을 거는데 이게 정말 말을 거는 건지, 말을 거는 연기를 하는 건지 싶었나.


음악극 ‘태일’은 코로나 전에 만들어졌고 의도는 배우와 관객들이 편안하게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작가님이 가수 스팅‘Sting’이 힘들었던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노래를 들려주는 걸 보시고 모노 뮤지컬처럼 이런 방식을 차용하면 어떻냐고 생각해 만드셨다고 하더라. 전태일에 대해서 관객에게 이야기 하다가 공연으로 붙는 지점을 만든 건데, 이것으로 배우 강기둥과 ‘태일’의 거리 두기 효과도 있는 거 같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관객 대답도 들을 수 있고 좋았을 텐데 말이다.

제공=플레이더상상

Q. 나래이션을 할 때는 ‘태일’로서 하는지, 강기둥으로서 하는지 궁금하다.


그게 이 공연의 매력인 거 같다. 배우 자신도 태일을 경험해 가는 거 같다. 강기둥으로 시작해서 태일의 목소리를 내다보면 태일을 닮아간다. 객관적으로 태일을 바라봐서 강기둥인데 뒤로 갈수록 태일의 감정을 어렴풋이 닮아가는 거 같다.


Q. ‘태일 목소리’를 연기하며 가장 크게 고려하는 점은.


목소리인 거 같다. 태일의 수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수기는 남았는데 영상 자료는 없다. 수기를 바탕으로 한 목소리와 증언인데 이것을 제 목소리로 낼 때 실존 인물이기도 하니까 정확하게 잘 갈 수 있고 깨끗하게 마음 느껴지는 대로 전달을 잘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 어렴풋이 마음이 느껴지긴 한다.


Q. 공연하면서 전태일에 대해서 가장 마음 아픈 지점은.


기간이 오래되어지고 있으니 전태일에 대해 알게 되는 자료는 많은데 그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생각보다 가볍고 소소한데 때로는 그게 슬퍼질 때도 있다. 일단 남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뒷전으로 생각하고 나이도 많지도 않은데 마음이 아프다기보다 대단하다. 그 나이를 편하게 누릴 방법이 있었을 텐데 자기가 뒤가 되었다는 게 멋있으면서도 가슴 아프다.


Q. ‘태일 외 목소리’는 정운선, 한보라, 김국희, 백은혜 배우가 태일의 가족, 동료, 소녀, 기자, 사장 등을 연기하는데 배우마다 어떤 캐릭터가 기억에 남나.


다 제각각이고 매력적이고 날마다 다르지만 모든 배우의 소녀를 좋아한다. 운선 누나의 예옥은 누나가 연습하면서도 “니 달리기도 맨날 꼴찌였잖아”라고 할 때 항상 울었다. 태일이가 마지막으로 예옥을 찾아가서 하는 말 중에 운선 누나가 마음이 푹 들어가서 그런지 저도 푹 들어갈 수 있다. 보라 누나는 세 번째 공연할 때 그때 누나 때문에 노래가 많이 늘었다. 바보회 때 목소리가 짱짱해서 같이 가슴이 차는 기분이다. 국희 누나는 계남이가 독보적이다. 초연부터 함께 해서 그런지 김국희화된 게 있다. 은혜 누나는 저랑 같이 시작했는데 저랑 에너지 색깔이 비슷한 거 같다. 태일을 바라보며 공유한 것도 많다. 네 명의 소녀를 만나는 거 같아서 너무 행복하고 아름답고 소중하다. 존재만으로도 행복하다.

제공=플레이더상상

Q. ‘태일’에서 촛불이 배경이자 소품으로 많이 쓰인다. 대사를 하면서도 촛불을 켜서 두던데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


촛불의 의미는 다양한 거 같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 중에는 저의 선생님께서 공연을 봐주셨는데 처음에 강기둥으로 촛불 켜고 내려놓고 태일의 여러 모습이 촛불로 모여서 태일이 되는 거 같다고 하시더라. 태일의 어느 모습 하나는 저랑 닮아있고 이런 모습이 다른 사람과 닮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 태일을 닮아갈 수 있다고 본다. 태일 외 목소리가 주로 촛불을 내려놓긴 하지만 그가 태일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촛불은 뜨거운 느낌보다는 따뜻한 느낌이 들게 한다. 나를 희생하고 남을 밝혀주는 게 의미가 있다.


Q. 노동 운동가는 아니지만 ‘태일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요즘 노동법은 어떻다고 보나.


전태일 외에 모두가 노력해서 나아지는 건 있다. 공연을 보러온 회사원인 친구가 “지금의 환경을 알아?”라고 하는 데 많이 나아지는 건 알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것도 안다. 예전에는 이런 문제에 멀리 있다고 느꼈지만 직접 일을 하면서 노동법에 가깝게 있다는 걸 이제 알게 됐다고 하더라. 자기네 회사는 잘 지켜지고 있지만 눈에 보인다고 하는 거 보니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관객들도 전태일 위인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이야기라 더 슬퍼하는 거 같기도 하다.


Q. 공연 중에 ‘오늘의 원동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데, 인터뷰를 하러 오기 전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공연 전에는 걸어온다. 태일이가 많이 걸어서 그런지 저도 걸어서 온다. 벚꽃이 만개했더라. 봄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교복 입은 여학생 4명이서 꽃을 꽂고 웃더라. 저도 중학교 때 학교에서 집까지 20분인데 하교 시간엔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릴 정도로 오면서 낄낄거리던 시간이 있었다. 태일의 눈에 보이던 소녀들도 공장에서 힘든 와중에 장난치고 놀았을 텐데 그 소녀들의 마음이 생각났다. 그러다 성북천을 걷다가 한성대입구역 광장에 소녀상이 있더라. 소녀상이 눈에 들어온 순간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다. 소녀들의 소중함을 깨닫다가 저 소녀는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더라. 여러 소녀의 이야기가 원동력이었던 거 같다.

제공=플레이더상상

Q. 전태일을 만날 수 있다면 어느 순간의 전태일을 만나고 싶나.


만난다는 말 자체가 설렌다. 지금 만나면 무조건 저보다 어린 건데, 제가 밥을 한번 사주고 싶긴 하다. 전태일이 여공들 밥을 많이 사줬는데 둘의 밥을 시켜놓고 자기는 밥을 먹었으니까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식당 주인이 태일이 밥을 안 먹었으면서 여공들 밥만 시킨 걸 알고 태일의 밥을 줬다고 하더라. 그런데 태일은 밥을 안 먹었다고 한다. 태일이 밥을 먹으면 여공들이 그가 밥을 안 먹고 오는 걸 알 테니까 말이다. 저는 태일이 시다, 재봉사, 재단사를 하기 전에 밥을 못 먹던 때에 만나서 밥을 사주고 싶다. 그리고 미안해서 말을 못할 거 같다. 무슨 말을 하겠나. 맛있는 밥이라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태일’을 보고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건.


관객들이 생각하는 게 다 맞을 거다. 개인적으로 큰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소소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자신이 이 이야기 스며들면 밖에서 무슨 일이든 행동하는 거에 있어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않을까 싶어 태일을 연기한 사람으로서 기분 좋을 거 같다.


한편, 음악극 ‘태일’은 5월 2일까지 대학로 티오엠 2관에서 공연된다.


http://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68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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