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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Jun 18. 2021

[인터뷰] 강승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너도 그렇다"

강승호(제공=㈜엠피엔컴퍼니)

다음은 5월 24일에 나간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살면서 한 번도 누구를 혐오한 적이 없는지. 아마 자신 있게 누군가에게 어떤 이유로 일말의 감정이라도 혐오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듯하다.


연극 ‘빈센트 리버’는 2000년 영국 햄프스테드 극장에서의 초연 이후 웨스트엔드를 비롯해 오프브로드웨이, 호주, 이스라엘 등 세계 각국에서의 공연 끝에 올 4월 한국에서 초연을 올렸다. 작품은 동성애 혐오와 혐오에 기인한 폭행 살인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아들 빈센트를 잃은 ‘아니타’와 그런 ‘아니타’의 주변을 맴도는 미스터리한 인물 ‘데이비’의 대화로 이루어진 2인극이다. 무대에는 연기파 배우 전국향, 서이숙, 우미화가 ‘아니타’를, 이주승, 강승호가 ‘데이비’를 맡아 열연한다.


연극 ‘빈센트 리버’는 동성애 혐오와 혐오로 인한 범죄에 대한 고찰에 이르기까지 과감하게 화두를 던지는 작품으로 비행을 일삼는 거친 청소년들의 범죄, 그리고 대중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그로 인해 범죄의 피해자임에도 숨어들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열린뉴스통신은 지난 20일 충무아트센터 근처 카페에서 배우 강승호를 만나 ‘빈센트 리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강승호는 ‘빈센트 리버’ 한국 초연에 함께하고 있는 소감으로 “초연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게 있다. 그래서 초연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처음 대본을 받을 때 쏟아지는 진실들을 어떻게 풀지 막막하면서도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설렘이 있었다. 2인극으로 무대에 오르면서 세 명의 ‘아니타’가 있어서 매번 어떤 공연이 될지 설레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이숙, 강승호(제공=㈜엠피엔컴퍼니)

다음은 강승호와 일문일답이다.


Q. ‘데이비’ 역에 배우 이주승과 작년 연극 ‘아들’에 이어서 같은 역할로 함께하는데 두 작품 같이 연속하면서 어떤가.


"주승이 형이랑 같이하는 건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좋다. 더블인 배우가 각기 다른 에너지를 갖고 하는 게 장점이기도 한데 이런 부분에서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주승이 형의 가장 큰 장점은 뒤끝이 없어서 서로 감정 상할 일이 없다."


Q. ‘빈센트 리버’를 텍스트로 만났을 때 ‘데이비’의 첫인상은.


"처음 봤을 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물음표가 많이 찍혔는데 다 읽은 후에도 해소가 되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데이비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데, 그 아픔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을 제안받을 때 보다 텍스트를 제일 많이 읽은 거 같다. 심사숙고의 과정이 길었다."


Q. 작품이 쉽지 않은 내용인데 그럼 가장 물음표가 많이 뜬 지점은 어디였나.


"지금은 공연을 하면서 이해가 됐지만 처음 텍스트로 만났을 때는 데이비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고, 아니타에게 뭐라고 하고 혼잣말을 하는 등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있었다. 지금은 작품이 공연화가 되고 인물이 가진 텐션을 보여주니까 이해가 되는데 활자로만 봤을 때는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승호(제공=㈜엠피엔컴퍼니)

Q. 데이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무엇인 거 같나.


"공감이다. 아니타가 예전에 공장에서 일했을 때나 차별받았던 삶을 이야기 할 때 이야기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나가는 건 듣고 있는 데이비가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공감하는 인물이라서 그런 거 같다."


Q. 데이비는 빈센트가 죽고 나서 18주간 아니타의 집 근처를 서성이고 심지어 이사한 집 근처에서도 맴돈다. 오랜 시간 아니타의 집을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인 이유는.


"데이비는 빈센트의 죽음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고, 그 현장에서 혐오라는 프레임을 끼고 본 사람들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거에 자책과 죄책감에 휩싸여있다. 죽은 것과 다를 거 없이 살았지만 빈센트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이 18주를 보낸 거 같다. 말을 해야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데이비가 자신의 진짜 아들을 아직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니타를 보게 되며 자신 또한 사랑했던 빈센트를 제대로 보기로 한다. 데이비와 아니타는 빈센트라는 목적지를 향해서 함께 걸어가고 있는 거 같다."

강승호(제공=㈜엠피엔컴퍼니)

Q. 18주간 아니타의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다가 들어가게 된 이유는 드디어 말할 용기가 생긴 것인가.


"단순히 아니타가 불러서 들어간 거고, 밖이나 집 안이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는 똑같은 거 같다. 데이비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텍스트상으로는 술과 마리화나이다. 데이비가 목구멍까지 이 진실을 담고 있다가 토해낼 수 있게 만든 거 같다. 저도 종종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말을 너무 많이 한 거 아닐까 후회할 때가 있는데 데이비에게도 말을 할 수 있게 환각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Q. 예전 인터뷰에서 승호 씨는 항상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즐긴다 했었는데 이번에 데이비를 연기하며 스스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선 부분이 있는지.


"2인극이라는 거 자체가 연습을 통해서 인물의 태도나 감정의 표현을 규정짓기 마련인데 ‘빈센트 리버’의 2인극은 규정짓는 것보다 현장성이 큰 거 같다. 서로의 얘기를 예민하게 들어야 하고, 공연하면서도 많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2시간을 채워간다. 연습하면서는 다방면으로 많이 시도한 거 같다. 연출님이 저의 시도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들을 선택해주시면 효율적인 에너지를 쓰려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제가 데이비라는 인물과 본질이 맞닿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태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느꼈다. 표현적인 것보다 내가 어떤 거를 취해야 하는지가 더 어려웠다.


제가 연기할 때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진짜로 가자’고 하는데 이 대본이 그에 적합한 대본 같다. 데이비의 말 한마디에 본질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고 말을 하려고 하고, 배우 강승호로서는 데이비가 생각하는 빈센트의 진짜 아픔을 토해내야지 그걸 바라보는 아니타가 진짜 빈센트를 바라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아니타 입장에서 아들의 친구인 데이비가 와서 아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아파하는 모습을 봤을 때 어떤 모습을 볼까, 그러면 아니타 또한 진짜 빈센트를 만나러 갈 수 있겠다고 느낀다."

우미화, 강승호(제공=㈜엠피엔컴퍼니)

Q. 극의 중간에 아니타와 데이비가 자신이 아는 빈센트의 이야기를 서로 해줄 때, 빈센트가 어린 시절 그린 그림을 보며 즐거워하던 데이비의 웃음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승호 씨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야기한다면 어느 장면이 떠오르나.


"최근에 영화 ‘원더’를 보는데 아이들이 수련회 가서 폭죽 터뜨리고 노는 걸 보면서 수련회에서 재미있게 놀았던 추억이 생각났다. 친구들이 앞에 나가서 춤추면 같이 응원했었다. 뮤지컬 배우 박준휘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학교 축제 때 여고에 가서 같이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웃음)"


Q. 후반부에는 데이비 혼자 2~30분가량은 혼자 대사를 하면서 휘몰아친다. 긴 분량의 대사를 버벅거리지 않고 감정과 함께 이끌어가는 걸 보며 신기했는데 대사를 외우는 비법은.


"저는 대본을 그림을 그린다. 어릴 때 속독하는 방법이나 빨리 암기할 때 이미지화시키는 걸 알려주는 학원도 있지 않았나. 그런 거처럼 머릿속에 대본을 그리고 이 부분에 어떤 대사가 있었는지 기억을 하면 대사를 까먹어도 금방 찾아갈 수 있다. 또 연습을 많이 하면서 상황을 체화시키면 툭 치면 축 나갈 수 있게 대사를 외운다."


Q. 데이비가 아니타를 통해서 빈센트를 보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런 생각이 가장 크게 드는 지점은.


"빈센트 이야기를 하면서 아니타에게 내가 빈센트를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를 하다가 “그 사람이 이름을 말해줬어요, 빈센트.”라고 한다. 아들과 나의 사랑에 대한 어떠한 프레임을 빼고 우린 진짜 사랑이었다고 하니 아니타가 이야기 더 하라고 하며 “해야 돼”하고 그다음 대사가 “데이비”이다. 데이비도 빈센트를 간절하고 절실히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때 아니타를 빈센트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거 같다. 이때는 아니타 반, 빈센트 반인 거 같다. 그다음 대사 중에서 좋은 거는 팩트를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이중적인 느낌이 든다. “아티나, 우리 같이 보러 가야돼요. 지금 멈추면 안 돼요”라면서 빈센트를 위해서 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아니타와 데이비는 이후에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

강승호(제공=㈜엠피엔컴퍼니)

Q. 요즘은 혐오사회라고 할 정도로 성별, 인종, 종교 등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혐오가 이슈가 되고 있다. 이 시대에 혐오와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빈센트 리버’가 주는 작품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혐오, 동성애에 집중되어 있는 작품보다 누군가의 아픔을 들어주고 공감하길 바라는 작품이지 않을까. 이 질문을 미리 받고 생각하면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시가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Q.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오! 주인님’에서 ‘화이트맨’으로 연기했는데 어땠나.


"드라마를 하면서 많이 배우고 부산에 있을 때부터 연극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고 영화나 매체에 가는 건 생각을 안 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 같다. 저는 이민기 형님과 많이 촬영했는데 현장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배우게 되고 제가 NG를 낼 때 조연이고 급하게 찍다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형님께서 끊으시고 “승호랑 모니터하고 갈게요”라고 해줘서 감사했다. 저는 집이 연극이나 대학로이고 드라마나 오디션은 다른 집에 간 기분인데, 다른 집에 가면 우리 집에 있던 분들이 많다. 많은 분이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Q. 이십 대의 마지막인데 어떻게 보내고 싶나.


"얼마 전에 샤워를 하면서 ‘올해를 어떻게 보내야 하지? 어떻게 한 단계 나아가지?’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가 떠올랐다. 그냥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고, 초심 잃지 말고 겸손하게 할 수 있는 거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Q. 데이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잘살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한편, 연극 ‘빈센트 리버’는 7월 1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에서 공연된다.


http://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7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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