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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열' 이정화, 나를 뛰어넘는 사람

by 위수정 기자
1.jpg 뮤지컬 '박열' 이정화 프로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다음은 8월 27일에 나간 기사로 해당 공연은 종연했습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대한민국에서 박열을 아는 사람보다 일본에서 가네코 후미코를 아는 사람이 더 많다.


뮤지컬 ‘박열’이 국내 초연으로 뜨겁게 무대에 오르고 있다. 뮤지컬 ‘박열’은 이준익 감독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된 이력이 있는 독립운동가 박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1922년 관동대지진의 원인이 조선인에게 있다는 괴소문이 퍼지게 되고, 그로 인해 일어난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박열을 구속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박열과 그의 아내 후미코 등 실존 인물들의 사실을 기반으로 서술된 이야기에 가상인물 류지의 서사가 더해져 입체감 있는 인물구조와 서사가 담긴 작품이다.


조선인 아나키스트로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국과 비밀결사 단체 불령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박열’ 역에는 김재범, 김순택, 백기범, 조훈이 분한다. 박열의 아내이자, 국적은 다르지만 조선인 박열과 뜻을 함께하는 아나키스트 후미코 역에는 이정화, 허혜진, 최지혜가 연기하며, 도쿄재판소 검사국장으로, 박열을 통해 업적을 세우려는 야망가 ‘류지’ 역에는 권용국, 문경초, 임별, 정지우가 함께한다.


최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열’에서 ‘후미코’ 역을 맡은 배우 이정화는 “회사에서 ‘박열’을 작품으로 만들려고 하길래 영화를 봤을 때 후미코가 인상이 깊었기 때문에 나중에 대본이 나오면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대본을 보는데 너무 좋아서 같이 하고 싶다고 하니 수로 선배님께서 "네가 해주면 너무 좋지"라고 하시더라. 박열도 중요하지만, 박열이 ‘이 여자 장난 아니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박열 못지않은 후미코의 모습이 멋있었다. 남녀가 동등한 위치였기 때문에 박열이 후미코에게 영감을 받았던 것 같고, 둘이 합쳐져 완전체가 되었을 때 색다른 러브스토리가 재밌었다”고 작품을 함께한 소감을 전했다.


2.jpg 뮤지컬 '박열' 이정화 공연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이정화는 연습 초반에 가네코 후미코의 수미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읽었던 게 작품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어 창작진이 “박열과 후미코의 영혼이 객석에 앉아서 보더라도 흐뭇하고 뿌듯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데 이어 그는 “이 말을 역사적 사실이니 조심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도 조심하지 않은 인물로 폭탄이었다. 너무 진지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후미코는 원래 자살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었어요. 아마 그 이후의 삶은 두 번째 삶을 사는 거겠죠. 다시 사는 삶으로 제대로 살고 싶은데 그때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은 거예요. 후미코는 어릴 적 할머니 집에 쪽방에 살면서 잘못 아닌 잘못을 하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관없이 강아지 옆에 뒀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마다 자신이 강아지랑 뭐가 다를까 비참하게 느꼈을 텐데 ‘개새끼’를 읽고는 ‘누군데 자신을 이렇게 지칭하지?’라고 생각하죠. 후미코는 자신을 강아지라고 공식적으로 말을 못 하는데, 박열은 자신이 강아지라고 당당하게 말하니까 궁금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굴까 이 사람’ 신을 좋아해요. 앞으로 내가 어떤 삶아야 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까 고민하다가 정하고 나서 후미코는 달려요. 그전에는 하루가 주어져서 살았다면 이제는 잘 살고 싶어서 삶을 사랑하며 사는 거죠.”


박열과 함께 항일운동을 하며 ‘불령사’ 조직을 만든 후미코. 이 둘의 동거와 사랑은 여느 연인의 모습과는 달랐을 터. 이정화는 둘의 사랑에 대해 “어떨 때는 죽이 척척 맞고 어떨 때는 불같이 싸웠을 것 같다. 박열이 "김중완,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할 때도 후미코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지 않나. 우리가 가려는 방향이 마음은 뜨겁지만 머리는 차가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박열과 후미코는 서로 영향을 주는 사이였을 것이다. 후미코도 박열을 보며 ‘멋있다, 역시 사람 잘 봤어, 훌륭해’라는 마음이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3.jpg 뮤지컬 '박열' 이정화 공연 사진.(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의견이 나뉘는 가운데 뮤지컬 ‘박열’에서도 후미코의 죽음에 대해서 열어 놨다. 이정화는 “사형선고를 얻어냈지만, 일본이 일부러 무기징역으로 바꾸지 않나. 후미코는 자신이 보존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으로써 자신을 지켰을 것 같기도 하다. 후미코를 살아있게 하는 게 일본의 선택이라면 죽는 게 낫지 않나. 작품에서는 후미코의 죽음을 열어두고 각자의 노선이 있는데 저는 타살이지만 위와 같이 외치고 죽었을 것 같다. 나는 다 기억할 거라면서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죽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고 담담하지만 힘 있게 전했다.


“저는 ‘불꽃처럼’ 신을 가장 좋아하는데 마냥 예쁘기만 한 장면은 아니에요. 초연이다 보니 연습하면서 대사를 많이 바꿨는데 지금 버전의 신을 (백)기범이랑 같이 읽어보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죽음을 결심하는 첫 번째 장면이거든요. 폭탄을 던지면 우리도 같이 죽는 거잖아요. ‘혼자 죽게 하지 않겠다, 나도 그 자리에 같이 있겠다’는 마음과 함께 우린 죽지만 축제가 벌어지겠죠? 춤이나 한판 추자는 마음으로 둘이 춤을 추는데 오묘한 분위기가 참 좋아요. 운명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불꽃을 각자 피우고 있다면, 불꽃이 피어올라서 서로가 어디 있는지 알 것 이고, 현재 박열은 북한에 후미코는 문경에 묻혀있는 것처럼요. 처음 대사도 "찾았다, 폭탄. 그건 바로 나."였는데 몇몇 박열의 배우들이 "그건 바로, 우리"라고 바꾸더라고요. 절대 나 하나가 아니라 자신과 동일시되는 후미코가 항상 옆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좋았어요. 박열이 류지에게 말할 때도 ‘그 여자가’가 아니라 ‘그 사람’으로 말하는 것도 후미코를 존중해주는 거죠.”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 수기 <나는 나>를 남겼다. 이에 이정화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한 사람”이라고 후미코를 설명하며, 자신에 대해서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저는 엄청 바쁘게 살고 있고, 이왕 사는 거 잘살고 싶다. 저도 흔적을 남기고 싶기 때문에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하며 책의 발간을 준비 중이다. 저는 저의 한계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한계를 만났을 때 주저앉는 게 아니라 그걸 뛰어넘으려고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화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네코 후미코와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이를 전하자 그는 웃으며 “저도 매일 최선을 다하며 저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어느 회사의 팀장처럼 다들 가면을 쓰면서 살지 않나. 저는 나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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