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월 3일에 나간 뮤지컬 '더 라스트맨'의 배우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뮤지컬 ‘더 라스트맨’을 보면 오늘날 우리 모습과 꽤 닮아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고, 마스크 속에서 내 표정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창작공연의 활성화를 위해 서울예술단이 주최하고 네이버가 미디어 후원한 ‘청년예술가 웹뮤지컬 창작 콘텐츠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웹뮤지컬로 관객들과 먼저 만난 '더 라스트맨'은 좀비를 소재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경쾌하고 독창적으로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더 라스트맨’은 제목처럼 1인극으로 정민, 정동화, 주민진, 김려원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작품은 좀비 바이러스 출몰로 인해 지하 방공호에 살아남은 생존자의 모습을 다룬다. 생존자는 좀비들과 생존 대결을 펼치며 열악한 환경과 고독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수도와 전기가 끊기며 점점 버티기 힘들어진다. 어느 날, 문밖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생존자는 좀비 떼가 아닌 지 의심을 한다. 좀비인지 진짜 사람인지 의문인 가운데, 과연 생존자는 문을 열고 나갈 것인가.
최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더웨이브 연습실에서 만난 배우 김려원은 세 명의 남자 배우와 함께 ‘더 라스트맨’을 올리고 있는 유일한 여자 배우다. 그는 “더웨이브 대표님께서 작품을 함께 하자고 연락을 주셨는데 1인극은 절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계획되었던 일정이 취소되면서 이 시기의 활동이 비어서 다른 작품을 해야 하나, 쉬어야 하나 생각할 때 마침 전화를 주셨다. 이것은 작품을 하라는 운명인가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하다가, 지금 안 하면 평생 1인극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왕 하는 김에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물리적으로 심장이 아팠다. 무언가를 생각할 때 가슴이 찌릿 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껴서 병인가 싶어서 검색도 해봤었다. (웃음) ‘더 라스트맨’ 연습이 8주가 아니라 6주 정도로 짧고, 반나절 이상 와있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2시간씩만 하고 가니, 혼자 해내야 할 연습 양이 많아져 점점 무서워지면서 다시 심장이 아팠다. 지금도 무대에 오를 때 가끔 심장이 아프다”며 작품을 선택한 계기와 마음가짐을 전했다.
김려원은 무대에서 폭발적인 성량과 단단한 연기를 보여주다 보니 그가 심장이 아플 정도로 떤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에 그는 “오지게 떤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제가 무대에서 떠는 모습을 안 보이니 다들 거짓말하지 말라 하고, 늘 심장을 붙잡고 떨린다고 말하다 보니 이제 제가 이 정도로 떠는 걸 많이 안다. 그러다 ‘더 라스트맨’의 캐스팅 소식이 떴을 때 (이)영미 언니가 "너 떨린다고 하는 거 다 거짓말이지? 1인극을 어떻게 하니?"라고 묻길래 "저 정말 심장이 아플 정도로 떨려요"라고 답했더니 "아 그래?"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저는 걱정 인형 수준으로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뮤지컬 ‘헤드윅’에서도 이츠학으로 뒤에서 헤드윅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하는 거지? 저런 사람들이 배우를 해야 하는데, 나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현재 ‘헤드윅’ 지방 공연을 하면서도 배우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다 보니 다시 ‘헤드윅’의 무대도 떨리기 시작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려원은 ‘생존자’ 캐릭터를 잡는 데 2주가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는 “저는 공감에 키워드를 가지고 가려고 했다. 많은 분이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사회 초년생들이나 취업준비생들의 힘든 부분을 생각하며 ‘생존자’를 회사 생활을 해본 적 있으나 비정규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자기 고향에서는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으며, 동네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딸인데 서울에 와서 직접 부딪히니 생각한 대로 되지 않고 사람들의 모진 말에 상처받고, 여태 느끼지 못했던 충격과 공포감이 쌓여서 방공호에 들어오는 선택을 하게 된다. 내가 상처 준 지도 모르게 한 말들에서 어떤 사람은 상처를 받고 깊게 느낄 수 있지 않나. 제가 연기하는 ‘생존자’는 어떤 큰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를 받고 방공호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 하면서 겪을 수 있는 것들에 상처받은 게 쌓여서 갇히게 된다. 저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무서워질 때도 있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숨고 싶을 때가 있는데, 모두가 느꼈을 감정을 극대화해서 표현하면 어떨까 고민했다”며 캐릭터를 설명했다.
“저는 ‘생존자’가 사랑 속에서 자라다가 독립해서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고 책임감이 생겼을 때 나와 마주한 사람들이 좀비로 보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어쩌면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은 거라고 하잖아요. 실제로 안 좋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붙잡고 크게 후회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날 죽이려고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그 사람들이 적으로 느껴지고 좀비처럼 서로가 물어뜯었을 것 같아요.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면 스스로 더 강해지고 나빠지고 독해졌을 수 있는데, 좀비처럼 보이는 망상에 깊이 들어가면서 방공호에 들어와 세상과 단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더 라스트맨’은 무대가 가운데 있고 양쪽으로 TV 화면처럼 여러 모니터가 있어서 ‘생존자’의 카메라 속 모습을 볼 수 있다. 방공호 속에서 1년의 세월을 보내며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생존자’로 네 명의 배우는 촬영을 녹화하고 있는지 아닌지 각자의 노선을 달리 가져간다. 김려원은 “저는 상상으로 이뤄진 좀비들이 실제라고 믿고 있다 보니 촬영을 했을 것 같다. 좀비가 널린 급박한 생활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서 다른 생존자를 위해서 촬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더 라스트맨’의 웹뮤지컬부터 참여한 배우 주민진이 자신의 ‘생존자’를 기본 맛 샌드위치 같고 다른 배우들은 토핑을 넣고 빼면서 다른 맛을 내고 있다고 말한 바에 대해 김려원은 “저는 그럼 딸기잼 샌드위치 같다”며 미소 지었다. 이어 “저의 존버(곰인형)는 하얀색이니까 하얀 식빵에 딸기잼이 들어있을 것 같다. 치즈나 버터는 넣을 수 없고 누구나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담백한 맛이다. 정동화 오빠는 전사를 많이 넣은 것으로 보아 속에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 있을 것 같고, 주민진 오빠는 터프한 호밀빵 샌드위치 같다. 정민 오빠는 아기 같은 느낌이 드는데 곰돌이 모양으로 잘린 식빵에 엄마가 해준 감자 샐러드를 넣은 귀여운 샌드위치의 느낌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네 명의 배우가 각자 디자인한 곰인형 존버가 무대에 등장하는데, 김려원은 자신만의 존버에 대해 “제 마음이 흔들릴 때 찾게 되는 것, 가장 순수했을 때 내가 찾았던 것, 안정감을 찾았던 것을 생각하다 보니 순수함을 표현하고 싶어서 하얀색으로 디자인했다. 그리고 아픔을 표현하고 싶어서 눈을 짝짝이로 표시했고,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생각하다 보니 뽀얗고 예쁜 하트 심장을 그려 넣었다. 머리 위의 새싹은 나 자신을 연약하고 보살펴 줘야 하는 존재로 생각해서 디자인하게 됐다. 그래서 노래 가사도 다른 배우들은 ‘갈색 솜털’이라고 하는데 저는 ‘하얀 솜털’로 바꿔 부른다”고 설명했다.
객석에서 볼 때 무대 오른쪽은 실제로 있는 ‘생존자’의 방이고, 왼쪽은 ‘생존자’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판타지 공간이다. 무대에 수많은 박스 중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건 판타지,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은 현실로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김려원은 “제가 하고 싶었던 것에 가까운 것들이 판타지 박스에 있다. 우리가 회사에 들어가면 휴가가 언제고 그때 어디에 놀러 갈지 기대에 부푼 것처럼 여행에 관련한 여권, 카메라, 원피스, 샌들이 판타지 박스에 들어있다”고 언급했다. 판타지 공간에 있는 존버에 대해서는 “상상에서 온 친구이지만 상상에서 왔다고 말을 하고 싶지 않네요?”라며 애착을 드러냈다. 이어 “존버는 어릴 때 애착을 가진 인형이 가슴 속 깊이 어딘가에 잊혀 있다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생존자’가 말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으니 존버에게 말한다고 생각하고, 존버가 하는 "집으로 가자"는 말이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느낀다”고 밝혔다.
‘더 라스트맨’은 한 번만 볼 수가 없는 극이다. 네 명의 배우가 각자 생각하는 ‘생존자’를 만들고, 그렇다 보니 공통적인 대사 외에 자신들이 만든 대사가 나온다. 게다가 엔딩에 대해서도 그날그날이 다르다고 한다. 김려원은 ‘생존자’가 문을 열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지, 그냥 나가기 싫은 건지에 대해 “연출님께서 매일 매일 달라도 된다고 하셔서 그날 공연과 생각나는 마음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다. 제가 사다리 쪽으로 깊이 들어가서 끝나는 날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상상 속에서 행복하게 있겠다는 마음이 드는 날이고, 문 앞에서 엔딩을 맞이하면 좀비들에게 맞서고 싶은 마음인 거다”라고 답했다. 또한 그만이 하는 대사로 “감자는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싹을 틔어 독성물질을 생성한다, 커피는 지 손으로 안 타 먹고 왜 남한테 타달라고 할까, 좀비들은 왜 야행성이 될까요? 사람은 야행성이 아닌데” 등을 꼽았다. 이어 “‘생존자’ 자신을 식물이나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공호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여자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커피 심부름도 해봤을 거다. 좀비들이 야행성이라고 하는 건 야근하거나 밤늦게 회식하며 술 취해서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상처를 주기도 하지 않나. 자기들이 좀비처럼 돼서 왜 그럴까 하는 마음이 내포되어서 그런 대사를 한다. 엄마에 대해서도 다르게 표현하는데 아무래도 엄마들이 아들과 딸을 대할 때 태도에 차이가 있을 것이고, 오빠들은 "잔소리에 묻어나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저와 동화 오빠는 "그 목소리 속에 묻어나는 사랑"처럼 각자 다른 대사들이 있다”고 전했다.
‘생존자’가 방공호에서 나가면 하고 싶은 위시리스트 3가지를 말하듯, 코로나19의 상황이 풀리면 하고 싶은 것으로 김려원은 “마스크를 벗고 바깥공기를 실컷 맡고 싶다. 그리고 두세 달에 한 번씩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 편히 만나서 얼굴 보고 싶다. 지금은 시간제한이 있다 보니 공연이 끝나고 나면 갈 수 있는 식당이 없는데 24시간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때가 그립다. 일상적이고 원래 했던 것들을 마음 편히 하고 싶다”고 소박하지만 절실한 위시리스트를 말했다.
김려원은 ‘더 라스트맨’을 아직 보러 오지 않은 분에게 “1인극이 아니었으면 저희 공연 참 좋고,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나온다고 말할 텐데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아마도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일 것 같고, 1인극을 본다는 건 배우도 그렇지만 보는 사람도 특별한 경험이다. 한 사람이 이 시간을 채울 때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그 사람의 감정을 오롯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니까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 있는 일인지 확인하러 극장에 찾아주시길 바란다”고 겸손하게 마음을 전했다.
한편,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2022년 2월 13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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