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수정 기자 Apr 26. 2020

김현진, 한 발자국 밀도 있는 걸음을 걷는 배우

[인터뷰②] 김현진, 한 발자국 밀도 있는 걸음을 걷는 배우


[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집니다.


Q. 뮤지컬 ‘데미안’에 나오는 여러 인물이 닮았다고 느끼나.


"싱클레어에 대한 입장은 모두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싱클레어의 이야기는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싱클레어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나와 굉장히 많은 부분이 닮아있구나.’ 예를 들어 두 개의 세계를 어렸을 때 인지하는 거부터 시작해서 데미안이라는 자아 존재를 만나는 거부터 자기 주변 인물들을 만나가는 과정이 저에게는 저의 삶과 닮아있는 거처럼 느껴지더라. 저는 이미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과정들을 어느 정도 거쳐 왔고 거쳐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에서 싱클레어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는 싱클레어라는 인물을 보면서 모든 인물이 싱클레어 안에 있는 하나의 조각들이라고 생각 되더라. ‘결국 이 모든 인물이 나와 닮아있구나. 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우리 안에는 때로 크로머와 같은 부분도 있고, 어떨 때는 데미안처럼 선지자적인 관점으로 우리 자아가 발현 될 때도 있는 그런 부분들이 있지 않나. 사실 인물들이 다 다른 인물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모습들 중에 하나를 겉으로 꺼내서 보여준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Q. 데미안과 싱클레어 연기할 때 보니 굉장히 다른 결이 느껴지더라. 특별히 더 차별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


"싱클레어를 연기 할 때는 성장에 대해 초점을 많이 맞췄다. 처음에 나왔을 때의 싱클레어가 다시 크로머를 만나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저는 ‘돌아간다’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 기억을 꺼내는 게 아니라 어렸을 때의 그 순간으로 싱클레어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싱클레어의 상태부터 마지막에 전쟁터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싱클레어의 상태가 하나하나가 다 성장의 과정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 대본에 이미 그렇게 쓰여 있다.


싱클레어가 하는 말들이 처음과 마지막이 굉장히 질감이 다르다. 그 부분들을 좀 더 싱클레어일 때는 이 인물이 자기와 질문하고 마주치면서, 자기 안에 있었던 수많은 모습들과 만나게 되면서 다른 인물들로 표현 되는게 흥미로웠다. 싱클레어로 이 인물이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데미안으로 연기 할 때는 내가 싱클레어에게 어떤 성장의 과정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크로머로 나타났을 때는 내가 싱클레어가 어떻게 크로머라는 인물로 악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는 모습을 부분들을 보여 줄 것인가, 데미안으로 왔을 때는 어떻게 싱클레어가 자기 알에서 깨어 나오게 되는 그 과정을 보여 줄 것인가, 어떻게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이 아이가 알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품어줄 것인가 등을 고민했다. 저는 알이 밖으로 나오려면 알 안에 있는 존재가 스스로 알을 깨야 하지만 누군가가 알을 품어주지 않으면 알은 깨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저는 그 존재가 데미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한테는 데미안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연출님께서 해주셨던 얘기 중에 "그건 네가 너의 자아를 바라보는 모습인 것 같아. 그걸 굳이 바꾸려들지는 말자."고 하신 말씀이 와 닿았다.


결국은 데미안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내가 내 자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구나. 그게 따뜻할 필요도 없고 차갑고 이성적일 필요도 없다. 사람마다 다 다른 거니까. 저는 알이라는 존재를 생각하고 김현진이라는 사람을 생각했을 때 싱클레어라는 알을 품어주기 위해서는 데미안이 빛,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연기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를 연기할 때는 어떻게 하면 마지막에 싱클레어의 대사를 싱클레어가 잘 할 수 있게 해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싱클레어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넘어 누군가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인도해 줄 수 있을까. 불을 전해줄 수 있는 데미안과 같은 모습이 되어가는 싱클레어를 보여주기 유리할 것인가라는 부분을 가지고 연기한다.


에바 부인을 연기할 때는 어떻게 하면 싱클레어라는 인물에게 마지막 깨달음처럼 느껴질 수 있는 궁극의 단계에 돌아온 것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집중했다."



Q. 뮤지컬 ‘데미안’을 이해했던 방식이 더 남달랐다고 하던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우선적으로 제게 조금 더 익숙하고 지식이 있었던 니체와 연관 지어서 이해한 후, 다시 차근차근 헤르만 헤세와 칼 융의 철학관에 대해 공부했다. 우리가 연습 초반에 배우들과 창작진 모두 함께 들었던 수업에서, 헤세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과 어릴 적 인도에서 경험한 동양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배웠다.


제가 공부하고 이해한 바에 따르면 융의 분석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한 다음 무의식을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자신의 스승이던 프로이트와 다르게 무의식은 억압된 것이 아니라, 어떤 가능성, 잠재력, 창의적인 에너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무의식은 꿈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또 살짝 TMI를 첨부 하자면, 니체의 사상에 대해 공부 했던 저번 학기와 같이 또 다른 학기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 수업을 들었었다. 당시엔 이런 공부가 나중에 나의 연기와 배우생활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궁금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그 수업덕분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비교하며 융의 분석심리학을 조금이나마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었으니까. 그저 학생으로서 학교만 다닐 땐, 따분하게만 느껴졌던 철학, 교양 수업 들을 더 열심히 듣지 않은 것이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된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런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는 ‘개별화’ 혹은 ‘개성화’ 라는 작업이다. 알의 껍질과 같은 의식의 중심인 가면과 같은 자아(페르소나)가, 나의 정신 전체의 중심인 ‘자기’를 향해, 그림자와 같은 개인 무의식을 넘어,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으로 누적되어 인류 모두에게 잠재되어있는 집단무의식을 넘어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융은 바로 이 개별화, 개성화가 삶의 목표라고 주장했다.


쉽지 않은 탐구의 과정이었지만 이러한 공부가 저에겐 정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처음에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 생각되던 대사들이 조금씩 분명하게 다가오기 시작 한 것이다.


먼저 울타리라는 오브제. 울타리라는 개념이 ‘의식’과 ‘개인무의식’, 그리고 ‘집단무의식’과 ‘자기’의 경계라고 이해가 되었다. 한 인간이 개별화의 과정에서 다음의 단계로 넘어가려면, 이 두 단계의 경계를 허물어야 하는데 그것이 울타리로 표현 되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데미안이 카인을 이야기를 예로 들며 말 했던 허용된 동산을 둘러싸고 있던 울타리, 싱클레어가 크로머도 자신을 둘러싼 하나의 울타리임을 인식하고 부수어버렸던 그 울타리, 또 나중에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헤치고 나아갔던 무대 위에서 의자로 표현된 울타리 까지 이해가 되더라.


그리고 얼굴에 대한 부분들도 더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가면과 같은 얼굴, 페르소나였던 얼굴의 뒤편 그림자들이 싱클레어의 여정이 더욱 진행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가 자신의 마음 속 데미안의 얼굴을 그리며 표현했던 말들 ‘무서울 정도로 뜨겁고 서늘한, 의지로 가득찬, 무언가 비밀을 아는 듯 한 얼굴’ 그리고 또 ‘수천 년의 시간을 초월한 다른 시대의 표식이 새겨진 얼굴. 고대의 돌이나 나무처럼.’ 그리고 쓰러진 말의 얼굴이 어느새 ‘나’인 싱클레어의 얼굴로 바뀌어 져 있는 것, 그리고 피스토리우스에게 설명해 주었던 꿈 속 그 얼굴까지. 그 얼굴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페르소나로 가려져 있던 ‘진정한’ 얼굴이었으며, ‘자기’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융의 분석심리학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깨달은 여러 가지들은 나로 하여금 우리가 이 데미안 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그건 바로 ‘나를 둘러싼 수많은 울타리를 넘어 진정한 내 얼굴, 자기 자신을 찾아 가는 여행.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전 더더욱 데미안을 연기 할 때 싱클레어가 여러 울타리의 존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물들이 되려고 노력했고 싱클레어를 연기할 때는 한 인간이 울타리들을 넘어서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또 아주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칼 융과 헤세에게 영향을 미쳤던 한 이론인 ‘영지주의’ 를 공부하며, 데미안을 ‘데미우르고스’ 라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작품 내에서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신성이 충만한 존재 ‘플레로마’ 인 자신의 어머니 에바 부인에게로 이끄는 선한 신의 측면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에, 어둡고 물질적인 측면을 나타냈던 크로머와 분명히 구분지어 조금 더 싱클레어의 여정에 ‘조력자’인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Q. ‘데미안’에서 아브락사스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작에서도 새장 속의 새를 본인의 해석으로 풀던데, 아브락사스는 데미안과 싱클레어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먼저 아브락삭스라는 존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앞서 이야기 했던 ‘영지주의’에 대해 이해해야 하더라. 그런데 재미있게도 어느 시대에 어떤 학파가 주장했던 영지주의냐에 따라 아브락삭스의 정의들이 조금씩 달랐다. 기본적인 정의는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최고의 신 모나드와 그의 충만한 상태였던 플레로마의 욕구로 탄생된 불완전한 데미우르고스를 모두 지니고 있는 신이다. 사실 나도 지식으로는 알고 있는 이 부분을 이야기 하면서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와 닿지는 않는데, 조금 쉬운 칼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대립하는 것들이 하나로 결합된 존재이며, 기독교의 신 혹은 사탄보다 더 높은 차원이 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데미안과 싱클레어에게 아브락사스라는 존재가 무엇일까라고 질문한다면 오히려 좀 더 쉽고 명료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바로 칼 융이 분석심리학에서 주장했던, 우리 삶의 목표 ‘자기’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자아’ 그것이 바로 아브락삭스의 모습이 아닐까. 알에서 깨어나려 하나의 세계와 투쟁 하는 새, 그리고 마침내 그 알에서 깨어나 신에게 날아가는 새, 그건 바로 싱클레어의 자아이며 또 싱클레어와 같은 삶의 과정들을 거쳐 갈 우리의 자아로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파랑새’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행복을 찾아 떠났지만 행복은 결국 집 안에 있었다는 이야기로 아브락사스라는 신을 찾아 떠났지만, 그 새는 결국 깨달음을 얻은 나 자신이었던 것이니까."



Q. 제일 많이 내뱉는 대사가 “나는 너를 알아. 너는 나를 알아”린데 ‘안다’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와는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더라. 그렇다면 안다는 뭘까? 그런데 그 말을 처음에 싱클레어가 먼저 꺼낸다. ”나 (싱클레어는) 너를 알아.“ 데미안이라는 존재가 ”그래 너는 나를 알아.“ 여기서 재미있는 건 ‘이 둘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함께였구나. 오래 전부터 하나였구나.’라는 느낌이 두 대사에서 강렬하게 들더라.


안다는 표현은 발전해나가는 과정인 거 같다. 수미상관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안다는 표현을 보면 아주 어렸을 때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처음 만났을 때 ‘안다’ 와 마지막 순간이자 공연에서는 맨 처음 순간에서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안다’라고 하는 ‘안다’는 완전히 다른 ‘안다’이다.


처음에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안다’는 정도는 누군가 새로 전학을 왔는데 이런 아이야 정도의 안다 정도라면 마지막 ‘안다’는 이 모든 존재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의 ‘안다’로 느껴지더라. 결국은 안다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안다는 걸 하나로 정의내리기 보다 관객 분들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매우 다른 안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부분도 공연을 보는 데에 있어서 하나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다음은 인터뷰③에서 이어집니다.



https://www.anewsa.com/detail.php?number=2093050


매거진의 이전글 김현진, 뮤지컬 ‘데미안’의 캐릭터 프리, 새로운 도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