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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Apr 26. 2020

김현진, 디테일 장인이 설명하는 뮤지컬 ‘데미안’

[인터뷰③] 김현진, 디테일 장인이 설명하는 뮤지컬 ‘데미안’


김현진.(사진=서정준 포토그래퍼)


[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인터뷰②에 이어집니다.


Q. 뮤지컬 ‘데미안’을 연구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나.


"사실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처음에는 막혔다. 융의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집단 무의식?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그리고 데미안에서 다루고 있는 성경에 대한 해석들을 종교가 있는 나로서는 이걸 어떻게 풀어 나가야하지? 생각이 들었는데 니체의 사상으로 접근하다 보니 쉽게 풀렸다. 데미안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없었는데, 한 가지 어려운 게 있었다. ‘어제의 해석과 오늘의 나의 해석이 같을까?’ 데미안만 했을 때의 내 해석과, 싱클레어로 무대에 섰을 때의 내 해석이 같을까? 그 때 내가 느끼는 것들이 지금과 같을까?


제가 데미안 작품을 하게 되면서 주위 친구들에게도 책을 읽었을 때 어땠냐고 많이 물어봤다. 그 친구들이 학창 시절 때 읽었던 데미안이랑 요즘에 읽었던 데미안이랑 너무 다르다고. 그때는 이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전했다. 그게 저에게도 똑같이 걱정거리였던 거 같다. 제가 오늘은 분명 이런 확신으로 연기했는데 데미안이라는 작품이 끝났을 때 나의 생각이 같을까? 조금은 달라져 있을까? 하는 저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들더라.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제가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데 하나를 딱 정해놓고 올라가야 되는 건 아닌가? 또 한편으로는 제가 공연을 하면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면 어제의 공연이 다르고 오늘의 공연이 다를 수 있듯이 물론 이 작품을 이어나가는 큰 틀은 변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대본이라는 게 나와 있고 연습실에서 저에게 만들어 놓은 틀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깨달아지는 것들, 제가 알게 되는 것들을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해보는 것도 어쩌면 이 데미안이라는 작품이 살아가는 생명력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공연을 올리고 나서 연습을 하는 과정이 체력적으로 힘들고 부담도 됐지만 저한테는 좋은 과정이었다.


싱클레어를 하다 보니 이해가 되는 순간이 있더라.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는 그렇게까지 느끼지 못했다. 다른 페어들이 하는 걸 보고, 제가 무대 위에서 대사를 해보니까 저한테는 희열로 다가오더라. 특히 드레스 리허설 때부터는 희열과 기쁨으로 다가오더라. 크로머에 대한 싱클레어의 관점도 연습실에서는 두려움, 공포만 있었다면 오히려 드레스 리허설을 통해서 무대 위에서 하면서는 호기심, 동경 이런 부분들로 많이 와 닿더라. 그러면서 제가 그 두 개의 세계를 경험했던 저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더라.


 어린 시절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그 때 저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탈은 서리였다. ‘감귤 서리’ (웃음) 그 때 당시 유치원생 즈음인 거 같은데 아마 싱클레어와 비슷한 나이거나 더 어렸을 것이다. 또래 중에 덩치가 큰 아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귤 밭에 몰래 들어가는 걸 되게 좋아했다. 제주도는 귤 밭이 굉장히 넓어서 귤 밭 안에 일하시는 분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오두막들이 있는데 저희에게는 거기가 아지트였다. 경비 아저씨 몰래 숨어 들어가서 감귤들을 따서 오두막에서 먹으면 그게 저희한테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황금빛 사과 대신에 황금빛 귤을 딴 거다.


그런 어렸을 때 기억들이 생각나면서 제가 느꼈을 때 그 친구는 너무 어른 같고 멋있어보였다. 사실 지금 크로머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동네 불량배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인데, 싱클레어의 눈에는 그 아이가 마치 국정원 요원처럼 그런 느낌으로 보였을 거다. 아버지보다 더 큰 존재. 왜냐하면 아버지가 악을 저지르는 걸 보진 못하는데 이 아이는 그걸 서슴없이 ‘난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이런 모습들이 사실 지금 어른이 되었을 때 바라보는 불량배적인 모습이 아니라 악 그 자체로 보였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던 아이들은 그 악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고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 이 작품이 더 입체적으로 재미있게 다가오더라."


김현진 대본./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김현진./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Q. 싱클레어는 크로머한테 왜 호기심을 가질까. 크로머는 정말 악한 친구였을까.


"결국 다름을 인식하게 되고, 그리고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욕망이란 게 있지 않나. 그래서 자신의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쌓여있던 욕망들을 표현하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크로머의 모습처럼 보였을 거다. 싱클레어에게는 내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 내가 우리 가족,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 얻을 수 없는 걸 나에게 줄 수 있는 존재. 사실 동경과 그런 부분이 있는 거다. 왜 꼭 나쁜 애들은 나쁜 짓 혼자 안 하고 착한 아이들을 끌어들이지 않나. 근데 착한 애들은 꼭 그 유혹에 넘어간다. 그게 인간 안에 있는 본성적인 부분 같다.


크로머도 자신만의 데미안을 만나고 싱클레어처럼 변화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나는 크로머는 싱클레어가 어렸을 때 만났던 모습이기 때문에 저는 크로머가 동네 불량배처럼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매력적이고 진짜 따를 수밖에 없는 루시퍼적인 어떤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싱클레어였어도 저 인물을 따랐을 거 같아’처럼 저 정도의 매력적인 악을 싱클레어는 처음 발견한 거니까. 그래서 싱클레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크로머를 표현하고 싶어서 오히려 악 그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했었던 거 같다."


Q. 김현진이 크로머를 연기할 때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더라. 단순히 멋있어 보이려는 거 같지는 않았다. 어떤 의미로 라이터를 사용했나.


"사실 미리 생각했던 디테일은 아니었다. 저에게는 불이라는 매체가 이어지더라. 왜냐하면 피스토리우스는 불을 숭배하고, 빛, 별 이런 이야기들이 작품 내에 많이 들어오는데, 그래서 불의 성질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됐다. 그래서 크로머가 라이터를 가지고 왔을 때. (물론 무대 사정상 불을 직접 피지는 못하지만) 그 불이라는 존재를 받았을 때, 그리고 대본에 보면 데미안이 “불을 봐” 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나. 싱클레어에게 있어서 크로머가 불처럼 강렬하게 다가왔을 거 같다. 이번에 ‘슈퍼맨이 돌아왔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깜짝 놀랐던 게 아이들이 불을 무서워하지 않더라. 왜냐하면 뜨겁다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불은 그냥 밝고 자기를 끄는 어떤 힘이 있는 존재로 느끼더라. 그러고 나서 불이 뜨겁다는 걸 느꼈을 때 불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더라. 저는 그게 하나의 상징이라고 봤다.


크로머가 하나의 불이고 싱클레어에게는 그 불이 마치 어린 아이가 불을 처음 봤을 때 뜨거운지 모르고 두려워하지 않고 동경하는 것처럼 크로머에 대해서 ‘멋있다. 저 불 너무 멋있는데?’정도이며 그리고 아이들이 불장난 많이 하지 않나. 뭔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상징으로서 크로머와 불을 이어보면 어떨까는 생각이 들어서 라이터라는 소품을 사용했다.


나중에 그 불이 또 어떻게 다가 오냐면 데미안이 나타났을 때 무대가 가장 밝아진다. 불은 빛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뜨겁고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 되었던 불이 데미안을 통해서 다른 따뜻함으로 다가오고. 그리고 피스토리우스와 만났을 때는 길을 인도해주는 불빛들로 데미안이 표현해주기도 한다. 벗어나지 못하는 어떤 정체되어있는 한 현상이며 불은 매개체가 없으면 이어져가지 않는다. 그 자리에 머물고 그 자리에서 꺼진다. 피스토리우스의 상태를 나타내는 불이 마치 그렇게 느껴지더라. 이 불들이 또 다른 곳으로 계속 옮겨 갔을 때 길들이 만들어지고 불들이 더 나타나면서 세상이 밝아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 불들이 나중에 모이는 거처럼. god의 ‘촛불 하나’처럼.(웃음) 마지막에 에바 부인에서 나오는 의미들이 그런 이미지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더라. 그렇게 연결시켜보면 어떨까 싶어서 시도해봤는데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김현진.(사진=서정준 포토그래퍼)


Q. 소품 중에서 의자가 신경이 쓰이더라. 의자를 세우고, 쓰러뜨리고, 밀치고 나가고. 어떤 의미가 있나.


"오브제들 중에 저에게 있어 제일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의자들이었다. 제가 데미안 할 때 마지막에 페어마다 다르지만, 어떤 페어에서는 대사를 하면서 제가 쓰러트렸던 의자를 가리키는 장면이 있다. 이 의자를 데미안은 쓰러트리고 싱클레어는 자꾸 세운다. 데미안은 다른 관점, 주어져 있었던 어떠한 개념들을 자꾸 부수어 주려고 하고 싱클레어는 지키려고 한다. 그런데 이 둘이 의자를 가지고 난장판을 피웠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의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저는 그게 데미안이 이야기하는 본질인 것 같다. 우리가 이 의자를 세우느냐 넘어뜨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본질이 무엇이냐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가 끊임없이 이야기해도 본질에 닿지 않는 이야기들은 결국 날아가 버리는 이야기들뿐이야’ 라는 의미로 의자를 사용한다.


싱클레어로 연기할 때 의자가 가장 와 닿는 부분은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에게 가려고 할 때 의자들이 지키려고 했었던 관습들, 말 그대로 알이며, 그것이 깨고 나가야 하는 알이라고 표현된다. 그 부분을 연습실에서도 많이 공유했던 부분이고 안무 감독님과 연출님이 너무 좋은 아이디어를 주셔서 장면을 만들었다. 저는 거기서 의자를 제 의지를 가지고 정확하게 치운다. 에바 부인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의자를 넘어야 하고, 이 의자를 그냥 걸어서 넘어가는 수준이 아닌 알을 깨는 방법, 알을 깨는 확신으로 저는 그 의자들을 밀어 넣는다. 그런 의미로 의자라는 오브제를 사용하고 있다."


Q. 피스토리우스 제단을 쌓을 때 소품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해봤나.


"제 나름대로 부여한 의미가 있었다. 거기에 있는 오브제들이 저는 피스토리우스가 새로운 신을 찾기 위해 탐구했던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술로 디오니소스적인 새로운 신을 탐구하려고 했었고,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아가페적인 신을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신문을 통해 뭔가 새로운 신을 탐구하려고 했다. 그런 것들이 진리에 대한 목마름일수도 있다. 꽃, 아름다움 이런 것들을 오브제로 부여하긴 했는데, 이게 공연 하다 보니까 그 순서대로 정확히 꺼내는 게 쉽지 않더라. 피스토리우스가 지금까지 새로운 신을 찾기 위해서 탐구했던 것들로 모아놨던 물건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나열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스토리우스에게 굉장히 즐거운 순간이다. 그동안 내가 탐구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신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모은 물건들이 싱클레어의 노래를 통해서 마치 그것들이 새로운 신의 얼굴의 한 조각인 거처럼 느껴질 것이다. 피스토리우스는 ‘내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게 헛된 수고가 아니었구나, 그래 이게 새로운 성물이야! 새로운 신의 얼굴이야!’ 하면서 기쁨으로 만들 수 있는 순간인 거 같다. 피스토리우스에게 있어서 가장 천진난만해질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싶다."


김현진.(사진=서정준 포토그래퍼)


Q. 데미안이 등장하면서 전등을 키고, 피스토리우스는 전등을 들고 나온다. 두 전등의 의미도 다를 거 같은데.


"데미안이 아브락삭스에 대해 노래하며 켜는 불빛들은 싱클레어를 인도하는 불빛이다. 다음의 깨달음으로 가는 이정표이자 안내문이다. 하지만 피스토리우스가 들고 나오는 전등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탐구의 불빛이다. 무언가를 찾기 위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욕망의 빛이다. 그 장면을 연기하면서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오브제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피스토리우스로 등장했을 때 등불을 들어 데미안이 키고 간 전등들을 먼저 바라본다. 탐구의 불빛이 인도의 불빛을 만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데미안이란 존재를 통해 이곳까지 도달한 싱클레어를 만남으로서. 그러나 피스토리우스가 탐구의 불빛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싱클레어를 만난 그 시점으로 그곳이었다. 피스토리우스는 그곳에서 자신 안의 두려움과 여전히 과거 속에 묶여있는 자신으로 인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싱클레어를 만난 후 그가 다시 손으로 건네주는 등불을 들고 길을 떠난다.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한 더 먼 길을 말이다."


Q. 저번에 인터뷰할 때도 느꼈지만 늘 준비된 듯 자판기마냥 대답이 나온다.


"인터뷰하기 전날 혹은 며칠 전부터 예상 질문과 답변들을 머리 속으로 많이 생각해 준비해오는 편이다. 입시를 준비할 때 면접을 잘 보는 방법으로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던 방법인데, 그러면 스스로 생각도 정리가 잘 되고 좀 더 편안하게 말 할 수 있게 되더라. 그 이유는 인터뷰어인 기자님들이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서 공연을 보시고 질문들을 준비하시는 만큼, 저도 준비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그렇지 못할 경우들도 있는데, 그럴 땐 나도 중언부언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런 부분은 알아서 편집해주시지 않나.(웃음) 다시 한 번 부족한 말솜씨를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하다."



다음은 인터뷰④에서 이어집니다.


https://www.anewsa.com/detail.php?number=20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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