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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Apr 26. 2020

[인터뷰④] 김현진 “‘데미안’같은 존재는 나 자신”


김현진.(사진=서정준 포토그래퍼)


[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인터뷰③에 이어집니다.


Q. 살면서 데미안 같은 존재를 만났나.

"되게 많았다. 그런 부분에 있어 감사하다. 어렸을 때는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님이시기도 하고, 가끔은 제 동생일 때도 있다. 살면서 만나 온 제 친구들, 너무 많은 좋은 선생님들. 사실 모든 인연들이 저한테는 데미안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최고를 뽑으라면 못 뽑을 것 같다. 그 순간순간 만났던 데미안들이 저에게는 저를 지금까지 만들어 온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데미안을 하나로 얘기해야 한다면 ‘김현진’이라고 얘기할 거 같다. 결국 그 데미안도 김현진. 왜냐하면 데미안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저는 정의를 내렸다. 그 질문들이 사실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질문해서 우리가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 스스로 의심하기도 한다. 이게 맞는 걸까 이게 옳은 걸까? 저는 ‘회의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 표현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회의한다’라는 표현 때문인 거 같다. 사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맹목적으로 믿는다고 우리가 받아들이기 쉬운데 저는 올바른 자세는 그 믿음이 과연 올바른지 스스로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게 스스로 되물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좌충우돌’ 이런 표현들을 되게 좋아한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답을 내리게 해주는 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만나 온 모든 수많은 데미안들도 있지만 결국 나 스스로 질문하게 하는 내 안에 있던 어느 무의식, 어떤 존재 그것이 정말 데미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Q. ‘데미안’은 성장소설인데 김현진의 성장소설을 쓴다고 하면 제목은.


"이거 벌써 밝히면 안 되는데 (웃음) 저는 사실 계속 쓰고 있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쓴 저의 자서전이 있다. 그 자서전의 제목이 ‘어느 뮤지컬 배우의 이야기’다. 그 때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저의 꿈을 향해 가는 이야기였고,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서 쓰는 자서전일 테고 나중에 언젠가는 뮤지컬 배우였던 사람으로서 마무리가 되는 자서전일거다. 제가 살아 온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표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지금도 한 장 한 장 쓰고 있다."


김현진.(사진=서정준 포토그래퍼)


Q. 성장소설에 들어갈 굵직한 이야기들을 떠올려 본다면.


"최초의 기억은 키우던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서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는 순간 13층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렸다. 그 기억이 너무 충격이다. 내가 애지중지 키웠던 올챙이가 개구리가 됐는데 자유를 향해서 날아가 버렸다. 두 번째 기억은 앞서 말씀드린 제주도 감귤서리와 헌금하라고 돈 줬는데 그걸로 맛있는 거 사 먹은 기억이 있다. 또 엄마 지갑에 손대서 활 장난감 사러 갔던 일과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3학년 정도에 같은 반 여자아이와 네잎클로버를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동안 같이 찾았던 기억이 있는데 풋사랑 같았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이사 온 날 등등 기억이 너무 많다. 첫 오디션, 첫 무대 이런 것들을 아마 성장소설 쓸 때 넣지 않을까."


Q.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새가 나오듯이 내가 알을 깨고 나왔다고 느낌을 받은 적은 언제인가.


"제 특이한 잠버릇 중 하나가, 잘 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버릇인데,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면서 나를 온전히 감싸주었던 이불을 걷을 때 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웃음) 진지한 답변을 덧붙이자면, 가장 최근엔 몇 년 전 혼자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전 혼자가 참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거의 항상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혼자 밥을 먹느니 차라리 굶는 쪽을 택하는 편이었고, 학창시절 쉬는 시간에 매점이나 화장실을 갈 때도 꼭 누군가를 끌고 가야 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등교나 하교, 학원을 갈 때도 친구와 만나서 같이 가곤 했고. 그런데 그런 제가 말도 잘 안통하고 가본 적도 없는 유럽을 혼자 훌쩍 떠난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정말 딱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 미쳤나봐.’ 물론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는, 미리 여행 온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다닌 일정들이 대부분 있었지만, 파리는 정말 오롯이 혼자 여행하는 등 나름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졌었다. 그때 스스로 나를 둘러쌓고 있던 어떤 울타리 하나를 벗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현진.(사진=서정준 포토그래퍼)


Q. 싱클레어가 전쟁에 참여하고 전쟁 속에서 죽어갈 때 비로소 자기의 얼굴이 드러난다고 하던데 김현진은 죽음에 가까웠을 때 어떤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가.


"인터뷰 도중 갑자기 죽음에 대해 생각하려니 울컥한다. 하지만 요즘, 싱클레어의 대사처럼 길의 도처에 고통과 슬픔과 죽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정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쩌면 그렇게 가깝고 얕은지. 누군가가 예전에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내일 네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너에겐 매일매일이 이 세상에서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거야.“ 그 생각처럼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또 하루하루를 가치있고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모르겠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조금 다른 길로 샜다. 다시 질문으로 들어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 세상의 여행을 모두 마치고 다시 제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날 제가 사랑했던, 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제가 있었기에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웠던, 이 땅에 온 순간부터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하늘에 속했던 사람’으로 말이다."


Q. 작년에 ‘쓰릴미’로 인터뷰를 하고 금방 ‘데미안’으로 만났는데 성장한 느낌이 든다. ‘데미안’이 그런 작품인 거 같은데, 본인에게 어떤 작품인가.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 나는 어디로 가고 있고, 어느 길로 가야할지. 신앙이 있으니 그런 전제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해주는 작품인 거 같다. 서른 즈음에 ‘데미안’이란 작품을 만난 게 저에게는 인생의 2막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김현진.(사진=서정준 포토그래퍼)


Q. 마지막으로 질문이다. 김현진과 인터뷰는 늘 길다. 살면서 재미있게 본 책, 드라마. 영화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책이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정말 내가 가장 사랑했던 책인 해리포터보다 더 집중해서 앉은 자리에서 울고 또 가끔 미소 지으며 한 번에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그때 그 책을 다 이해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때 그 책을 읽으며 인간과 존재의 노력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노인은 에바 부인이 이야기 하는 별을 사랑했던 한 사람과 닮은 부분이 참 많다. 문득 다시 한 번 ‘노인과 바다’를 읽고 싶어진다.


영화는 해리포터 시리즈와 마블의 빅팬이긴 하지만, 내 인생 영화는 미미 레더 감독의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다. 만약 이 영화가 생소하시다면, 지금 그냥 넷플릭스든 어디서든 검색해서 보시기를 추천한다. 말이 필요 없는 영화다. 그리고 기독교적 색체가 강한 영화이긴 하지만, 교회를 다니시지 않는 분들도 편하게 보실 수 있을 만한 영화인데 '믿음의 승부 (Facing The Giant)'라는 영화도 내 인생 영화로 추천해 드린다.


드라마는 언젠가는 제가 나온 드라마를 추천해드리고 싶다.(웃음) 그러고 보니 인생 드라마들은 대부분 김명민 선배님이 나오신다. '불멸의 이순신'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내가 그냥 김명민 배우님 팬이라서 그런 가보다. 수험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방 사수를 할 정도였으니까.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극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황진이' '태조 왕건' '육룡이 나르샤' '왕이 된 남자' 등등. 큰일이다. 사극 드라마들은 정주행으로 다시 보기 하려면 시간이 2~3배로 드는데, 지금 이 드라마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김현진.(제공=조나단 포토그래퍼)


김현진과의 긴 인터뷰를 끝내고 “우리 당분간은 만나지 말자”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했다. 전 작품 인터뷰에 이어서 ‘데미안’까지 심도 높은 질문과 대답을 이어가다 보니 우리가 다음 작품에 만나서 또 할 말이 남아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또 다음 작품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을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게 김현진의 매력 아닐까. 전 작 인터뷰를 끝내고 “다음 작품에 우리 공부 많이 해서 소논문 정도 뽑아보자”고 말을 했던 게 떠오르며,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한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


2020년에는 밀도 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싶다던 김현진이 뮤지컬 ‘데미안’으로 깊은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의 다음 발걸음에도 함께 하고 싶어지며, 인터뷰를 마친다.


한편, 뮤지컬 ‘데미안’은 4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된다.


https://www.anewsa.com/detail.php?number=209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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