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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May 10. 2020

[인터뷰③] 이해준이 바라보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이해준./아시아뉴스통신=최지혜 기자

[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인터뷰②에 이어서.


Q. 라흐마니노프는 언제쯤 달 박사에게 마음을 열었을까.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를 계속 자극한다. 나가라는 데도 여기 살겠다고 하고 라흐마니노프 방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사람이 너무 경우가 없으면 어이가 없지 않나.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끼니까 그래서 라흐마니노프는 계속 참다가, 결국에는 달 박사가 꺼내고 싶었던 건 라흐마니노프 안에 있었던 마음을 듣기 위한 자극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가 아무거나 다 해보라고 기도를 하든 주문 외우든 찬물을 끼얹든 전기 쇼크 해보라고 얘기를 하는데, 사실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것도 다 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말을 했던 의사도 있었을 거고 실제로 해봤을 거라고 생각이 드니 라흐마니노프가 너무 불쌍하더라.


달 박사가 무리인 걸 알지만 “당신과 그냥 함께 연주를 해보고 싶었다”고 하는 부분에서 한 번 마음을 나눴지 않나. 달 박사가 당신의 어려운 곡을 자기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내가 만든 곡들이 어려웠지’라는 현실 자각도 있고 ‘쉬운 곡은 뭐였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못 치던 피아노를 쳐보기도 하고. 피아노 안 치겠다고 하던 사람이 바로 치는 게 귀엽기도 하고 맞추려는 마음이 감사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마음이 있었다. 라흐마니노프가 마음이 조금씩 열리다가 그걸 놓치지 않고 달 박사가 차이코프스키 선생님을 바로 물어봐서 라흐마니노프가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가게끔 만든다. 한 마디로 달 박사에게 라흐마니노프가 당했다. 실제로도 달 박사 역할의 배우들의 연륜에서 나오는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이끌려서 마음을 터놓게 되는 게 있다.


달 박사는 밀당을 잘했을 거 같다. 짜증난다. (웃음) 라흐마니노프에게 마음을 열 수 있게 하는 달 박사 자체가 가진 매력이 있는 거 같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왔다면 바로 알지 않았을까? 진심이 있어서 통했던 거 같다."


이해준./아시아뉴스통신=최지혜 기자


Q. 쯔베레프와 차이코프스키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9살 때부터 쯔베레프에게 교육을 받았다. 찾아본 바로는 정말 엄격하게 가르쳤다고 하더라. 그 수준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피아노를 치게 하는 게 아니라 인성교육과 여러 가지 예의와 자세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데 어린 나이에 얼마나 버거웠을까, 아마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나를 누가 가르쳐주고 잘 될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을 어른이 돼서 알 수 있지만 어렸을 때는 압박감이고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기본적으로 쯔베레프는 칭찬도 안 해준다. 강압적인 방식 자체가 결국에는 나를 성장시켜 줄 수 있었다는 걸 과거를 회상하면서 알았지만 그 전까지는 되게 무서웠을 거 같다.


칭찬받고 싶었을 때도 칭찬해 주지 않고 계속 더 치라고 했던 것이 결국엔 제일 큰 가르침이었다는 걸 성인이 되어 깨달았지만 쯔베레프는 죽었다. 반면에 차이코프스키는 우쭈쭈해주는 따뜻한 선생님이다. 두 선생님에 대한 변화의 포인트를 극대화하다보니 라흐마니노프에게 진정으로 음악에 날개를 달아주신 분은 엄격함이 있었고, 차이코프스키는 훨훨 날아갈 수 있게 해준 따뜻한 선생님이자 라흐마니노프를 날아오를 수 있게 해준 사람이다."


이해준./아시아뉴스통신=최지혜 기자


Q. 라흐마니노프가 달 박사가 악수를 청할 때 관계 맺는 게 싫어서 악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라흐마니노프에게 악수는 인사 이외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거 같은데 설명해 달라.


"“악수를 하면 관계가 생기니까”라는 말을 먼저 했던 라흐마니노프가 달 박사의 따듯한 마음으로 치료받고 2번 교향곡을 성공적으로 발표한 뒤 그 곡을 달 박사에게 헌정하면서 콘서트장에서 다시 그를 만난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용기 있게 악수를 먼저 청하면서 ‘이제 당신과 관계를 맺고 영원한 벗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의미로 손을 먼저 뻗는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악수에 대한 기억은 9살 때 쯔베레프 선생님과의 첫 만남 때 인사를 하고 용기 있게 손을 내밀었는데 선생님이 “난 악수를 안 해, 스쳐 지나갈 사람들하곤 악수를 안 해”라고 하셨다. 결국 쯔베레프 선생님의 엄격한 교육방식을 받으면서 라흐마니노프도 성장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의 강압적인 교육방식과 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고 반항심도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때의 교육이 있었기에 성장했지만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미안함, 어린 시절 가정환경 등 여러 가지 트라우마가 쌓여서 그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구랑도 관계를 맺기 싫어하고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서 3년 동안 과거에서만 살고 있는 인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반면 특히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악수라는 행동 자체가 쉽지 않고, 악수를 떠나 누구에게 선뜻 마음 열고 다가가기 힘든데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따듯하게 열고 먼저 배려하고 다가가 가보자는 생각을 한다."


이해준./아시아뉴스통신=최지혜 기자


Q. 라흐마니노프가 협주곡 1번을 내고 슬럼프에 빠지는데 똑같은 공감대는 없더라도 배우로서 그 마음은 이해가 될 거 같다.


"라흐마니노프의 첫 대사가 “나는 보여줘야 돼, 당장 들려줘야 돼”다.


배우들도 그런 거 같다. 어떤 작품에 대해서 평가를 받고 늘 잘해야만 하고, 특히 요즘엔 잘하는 배우들도 많고, 이 직업 자체가 너무 많은 사람이 하길 원하고, 아무나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 스스로 자책도 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지 않나. 물론 관객들이 이런 부분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절대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당연히 보여드려야 한다.


가끔 주위에서 토닥여줬을 때 저한테는 이 일을 함에 있어 동력이 된다. 물론 잘한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또 다른 부담감이 계속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제가 무너져 내릴 땐 스스로 힐링하고 다잡을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취미가 되었든 무언가 도전하는 게 되었든 말이다.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해준./아시아뉴스통신=최지혜 기자


Q. 대사 중에 마음에 드는 대사 하나를 꼽으면.


"대사는 딱 대본 처음에 읽었을 때 두 개가 있었는데 둘 중 하나 꼽으라면 좀 그렇다. 둘 다 얘기하겠다.


“무엇을 보았을까, 아니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깊고 넓고 복잡하니까” 뭘 보려고 하면 보지 못한다는 말일 수도 있고,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된다는 말이 제가 인생을 살면서 가져가야 할 말인 거 같다. 또 라흐마니노프로 들었을 때는 “당신이 새로운 곡을 쓰건 쓰지 않건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할 거다”인데 두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많이 운다. 그래서 별명이 물만두다."


Q.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악몽을 꾸었다고 하던데.


"누나 이야기하는 독백이 6,7페이지가 넘어가는데 저한테 미션이라고 생각이 들고 엄청 어려웠다. 노래 생각하면 피아노가 생각나고 악몽을 많이 꿨다. 피아노를 쳐야 하는데 손이 안 움직이거나 피아노가 부서지는 꿈도 꿨다."


이해준./아시아뉴스통신=최지혜 기자


Q. 작품을 하면서 인간 이해준으로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라흐마니노프처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결국엔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더라. 너무 나를 자책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흘러가는 패턴 안에서 스스로 뭘 할 수 있는지 찾으면서 배우 생활을 묵묵히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준이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며, 피아노 음계도 잘 몰랐던 배우가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 성장했다는 자체가 작품에 대한 감동과 함께 왔다. ‘잘생긴 배우’인 줄 알았는데 엄청난 노력을 하는 성장하는 이해준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오래도록 무대에서 볼 수 있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친다.


한편,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6월 7일까지 서울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된다.


https://www.anewsa.com/detail.php?number=2096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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