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손이 멈췄다. “이순재 배우 별세”. 깜짝 놀랐다. 혹시 가짜뉴스가 아닌가 싶어 순간 의심했지만 진짜 사실이었다. ‘야동순재’, ‘직진순재’로 불리며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던 대배우의 생이 막을 내렸다는 그 뉴스는 이상하게 신혼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신혼집은 원주에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원주댁이 되었고, 나는 새신랑으로 불릴 때였다. 그때만 해도 아내도, 나도 풋풋했다. 나 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되어 늠름한 첫째 아들 따식이도 그 때는 완전 작고 귀엽고 상큼발랄했다. 퇴근하면 따식이가 아빠를 격하게 반겨주었고, 내가 안아주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곤 했다. 따식이는 에너지가 넘쳐서 좀처럼 자려고 하지 않았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운건지 무서운건지, 아니면 등에 센서가 달려있는건지 바닥에 눕히기만 하면 눈을 떴다. 그래서 나는 오랜시간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우리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갓난 아이가 있어 여유도 없어서 감히 해외여행은 상상도 못 했다. 평소 아내가 결혼 전에 유럽여행을 다녀온 이야기인지 자랑인지를 종종 했었기 때문에 유럽이 궁금했던 차이기도 했다. 바로 그 때 <꽃보다 할배>가 나왔다. 방영 전부터 아내와 나는 기대감이 커서, 퇴근 후에 꼭 같이 보자고 약속했다. 신혼집에는 TV가 없었기 때문에 아내가 먼저 노트북으로 다운로드받아놓고, 밤이 되면 아이를 안고 <꽃보다 할배>를 보았다.
이서진은 처음에 써니와 함께 가는 여행인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할배들 아니 배우 선배님 네 분을 모시고 유럽으로 떠나는 효도 관광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지은 씁쓸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츤데레 이서진의 좌충우돌 여행기가 재밌다는 생각으로만 보았다. 하지만 어느 날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네 명의 원로배우가 유럽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설렘이 생겼다.
특히 이순재 선생님을 보며 많이 배웠다. 80살이 다 되어서도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웠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제일 나이가 많은데도 출연진과 스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모든 불편한 상황을 다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는 늘 청춘의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탐구했으며, 직접 보고 듣고 만지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나아갔다.
사람들은 웃으며 그를 ‘직진순재’라 놀렸지만, 마음 속으로는 존경심이 일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보며 ‘어떻게 그 오랜 세월동안 무대에서, 드라마에서, 예능에서 한결같은 묵직함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질문했다. 아마도 그가 매일 자신의 기준에 따라 컨디션을 관리하고, 대본 한 줄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매사에 진심이었기 때문에 90세까지 현역으로 사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순재선생님의 별세는 슬프지만, 육아로 힘들었던 우리 부부에게 여행 같은 설렘을 주시고, 인생 전체가 현역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며 ‘어떻게 나이들어야 하는가’를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90년의 생애동안 보여준 모범과 품격, 에너지와 열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남을 것이다.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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