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단순해진다.

by 의지박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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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켜고, 약국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고, 저녁엔 정리하고, 밤엔 가족과 시간을 보내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프고 나니 일상이 무너졌다. 늦게 일어나고, 약국에서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와 바로 잠들었다. 남도, 가족도, 일도 신경 쓰기 어렵다. 오직 내 몸 하나 챙기는 것만으로 하루가 꽉 찬다. 아프다는 것은 삶을 강제로 단순하게 만든다.


이번 달은 유독 마음까지 아팠다. 추석 이후로 쌓인 피로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감기까지 겹쳤고, 나처럼 추위에 약한 사람에게 겨울 초입의 차가움은 더 크게 느껴진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일상이 이제는 조금씩 겁이 난다. 삶의 높이는 그대로인데, 나만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문득 돌아보면 나는 그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삶’을 살아왔다. 유퀴즈에 나온 개그우먼 박미선이 유방암 투병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그동안 딱 두 달 쉬었어요. 첫째 낳고 한 달, 둘째 낳고 한 달. 그게 제 자랑이었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찔렀다.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쉬는 시간조차 죄책감을 느낀다. 일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먹거나, 영상을 보거나, 글을 읽거나… 늘 무언가를 소비하고, 반응하고, 성과를 내며 살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살면 살수록 더 불안해진다. 목표는 더 높아지고,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지고, 개선해야 할 점이 끝없이 보인다. 떠올려 보면 결혼 전이나 신혼 시절에는 가난했지만 지금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책임도 적었지만, 무엇보다 ‘욕심’이 적었다. 나는 그저 주어진 삶과 직업, 가족, 주변 사람들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당장 죽어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감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서고 싶었고, 가족을 더 안정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자랐다. 약사로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도 생겼다. 원래도 빈틈없이 지내는 편이었지만, 지난 8년은 정말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부모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고, 장난감 대신 용돈을 달라고 한다. 예전엔 아이들 사진을 매일 찍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 앨범을 봐도 아이들 모습이 잘 없다.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그렇게 긴장이 서서히 풀리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외줄타기하듯 살았지?’ 마흔 중반이 되니 체력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하루 중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아진다. 이젠 루틴을 정하고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이 일상을 안정시키는 유일한 방법 같다. 그리고 내려놓아야 할 것은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이제는 일을 위해 가족을 떠나는 삶이 아니라, 가족을 누리기 위해 일하고 싶다.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하려면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하고,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도 필요하다.


아픔이 내게 준 처방전은 단순함이다. 단순해지기 위해 후회하지 말자. 누굴 원망하지 말자.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자. 남과 비교하지 말자.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자. 조금 단순하게 살아도 괜찮다. 세상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도,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해도 괜찮다. 네가 정한 기준으로 묵묵히 버티며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인생이다. 네가 버텨주었기에, 그 고난의 물결이 갈라지고, 네 뒤에 서 있던 가족들이 평안할 수 있었다. 이제는 삶을 조금 더 단순하게 그리고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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