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약사로서 일한지 17년이 넘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약사로서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 그래서 공부하고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흔 중반이 되니 예전처럼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평일 밤이나 주말에 따로 공부할 시간을 빼기도 힘들다. 어느 날은 너무 답답해서 모든 의무를 다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몰입을 위해서 내게 아침부터 밤까지 오직 공부와 운동만 할 수 있는 온전한 하루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아내가 약국 문 닫고 혼자서 제주도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등 떠밀면 나는 바보같이 아무것도 못 한다. 제주도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몰입의 필요성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렌트카 안에서 함께 떠들며 웃는 가족들의 얼굴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비로소 나는 내 속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성공이 아니라 가족의 행복을 진정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계속 실력과 몰입을 이야기했던 이유는 바로 불안 때문이었다.
최근 연예계에서 나락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는 걸 보면서 나는 그들을 쉽사리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무너지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갈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구나 무너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만큼 유명해지고 성공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또 쓸데없는 잡념에 빠졌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올라가는 일도 어렵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약국에 있다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고 잘 나가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이 무너지고, 관계가 틀어지고, 마음이 꺾여버리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 아마도 단 하나의 사건으로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금이 점점 벌어져 둑이 터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종종 묻게 된다. 왜 어떤 사람은 끝없이 올라가는데, 어떤 사람은 가볍게 밀어도 그대로 무너져 내릴까 그 차이가 궁금한 것이다. 어쩌면 성공의 본질은 실력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성공을 인생의 목적지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점점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고 있다. 끊임없이 더 큰 성공을 목적으로 사는 인생은 결국 허망해진다. 참된 성공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 얻고 끝나는 정점의 영광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리는 반복적인 하루를 유지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겉으로 대단하게 보이는 인간도, 사실은 놀랄 만큼 취약한 존재다. 명예가 있어도, 돈이 있어도, 가족이 있어도 마음의 균열 하나가 삶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저렇게 안 될 거야”라고 자신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늘 내가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 감사한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다. 자주 흔들린다. 어지러워서 쓰러지고 싶을 때도 있다. 특히 몸이 아프고 너무 피곤할 때, 억울한 상황이 생겨 감정이 과열될 때,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다.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형국이다. 경험상 그런 위기상황에서는 바로 반응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될 수 있으면 사람도 만나지 않고, 중요한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한 번의 폭발이, 한 번의 실수가 공든 탑을 망가뜨리는 장면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거창한 성공을 바라기보다,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반드시 해야할 일은 일단 오늘을 잘 마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침에 느꼈던 배고픔과 답답함을 모두 다 해소할 수 없을지라도 오늘 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버텨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해도, 실력이 대단히 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마음의 균열을 키우지 않고 또 하나의 하루를 무사히 건너왔다는 사실이다. 그런 하루가 쌓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나에게 닿을 거라 믿는다.
방금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내게 “잘했어, 오늘도 잘 살아냈다. 이제 곧 주말이야”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배터리가 충전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 힘으로 내일은 공부도 하고, 강의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