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늘 널 사랑했다. 생일축하해. 아들.

by 의지박약사

첫째 아들과 나 사이에 원치 않았던 오해가 생긴 적이 있다. 내가 약국을 개업하고 오랜 시간 바깥에 머물게 되면서 우리 사이는 점점 소원해졌다. 주말에도 나는 첫째 아들을 혼내고, 둘째는 어리다는 이유로 잘못을 해도 봐주곤 했다. 첫째는 그 외에도 힘들고 억울한 상황을 가정, 교회, 학교에서 자주 겪었다.


내가 아빠가 되었을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해 본 적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빠는 무심했고, 미숙했다. 아빠의 바람은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아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었다. 나는 자녀의 행복이란 부모가 계획하고 투자하고 노력해도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는 첫째 아들을 늘 한결같이 사랑했다. 정말 단 한 번도 둘째를 편애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둘째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첫째 아들에게 직접 “아빠가 둘째를 더 예뻐하니 너는 참 불쌍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황당했다.


어떻게 저 사람들은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아들 두 명 모두를 동일하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들을 향한 내 마음의 그릇은 나 자신을 위한 그것보다 더 크고 깊었다. 어느 한 명에게 사랑을 콸콸 쏟는다고 해서 다른 쪽은 졸졸 흘러내리지 않았다. 단지 두 아들의 나이와 성격이 달랐고, 내 사랑의 표현 방식이 달랐고, 두 아들의 리액션이 달라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첫째 아들이 아빠가 자신을 덜 사랑한다고 믿고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괴로웠다. 아이의 자신 없는 모습, 남과 비교하며 불평하는 모습을 볼 때면 꼭 나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당장 내가 아이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답답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현재 벌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언제 해결될지 예상할 수 없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아이의 환경을 바꾸고, 사랑의 표현을 더 자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아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챙겨 주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아 주기, 겨울에는 손난로를 챙겨 주기 정도였다. 불행하게도 저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집에 오면 아이가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근무 시간을 한 시간 줄였다. 덕분에 나는 저녁에 아이를 한 번 더 안고 잠들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씩 내게 보너스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특별 미션도 생겼다. 중학교 입학 초기, 실내화를 깜빡한 아이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실내화를 안 가져와서 다시 집으로 가고 있어. 지각이야.” 나는 출근길에 실내화 가방을 들고 내려가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이와 만났다. 나는 “가방 벗어서 아빠 줘”라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절대 가방을 맡기지 않을 아이였지만, 그날은 시간이 촉박해서 선뜻 가방을 벗어주었다. 나는 내 백팩을 멘 채로 아이의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양손에 들고 학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10분, 거리는 1km, 신호등은 1개였다. 나는 정말 단 한 번도 걷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오르막길 위에 있는 교문까지 달렸다. 수많은 학생을 제치고 교문 앞에 도착하니 아직 5분가량 여유가 있었다. 그제서야 아들의 얼굴은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그 미소를 보자 내 마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다. 이제는 아들도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더 이상 불평하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나는 아들의 생일날마다 작은 글씨로 편지지를 가득 채운 장문의 편지를 써 주었다. 주제는 매년 같았다. 사랑이었다. “조건이 아니라 너의 존재 자체로 널 사랑해.” 그리고 감사였다. “네가 내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이렇게 나는 매년 아들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내일은 아들의 열세 번째 생일이다. 내 생일도 아닌데 벌써부터 설레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13년 전 그날 저녁이 떠오른다. 그날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 아들이 너무 작고 예뻐서, 씩씩하게 태어난 아들이 자랑스러워서,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와 준 것이 고맙고 미안해서 나는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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