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실패가 아니라 배우는 과정이다.

by 의지박약사

처음에는 누구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랑도 그렇다. 누군가를 향한 진실한 마음, 아낌없는 헌신도 처음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랑을 받는 것도, 사랑을 주는 것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누구나 그 과정에서 가슴 시린 상처를 입는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한다. 사랑은 생각보다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하는 과목이다.


반드시 사랑을 베풀어야만 하는 상황은 없다. 무조건적으로 희생해야만 하는 존재도 없다. 반대로 반드시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도 없으며, 손해와 상실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사람도 없다. 만약 이 전제를 무시한다면 머지않아 심각한 갈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랑의 대상, 사랑의 목적, 사랑의 방향이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갈등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심각하다는 데 있다. 상처 입은 마음, 배신감, 지난 날의 악몽 같은 기억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트라우마가 되어 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 트라우마는 마치 나르시시스트처럼 나를 위하는 척, 나의 편인 척,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척하면서 서서히 나를 파괴한다. 나를 지키려면 이 관계를 끊어내는 것 말고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보인다.


나는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야, 나는 손해와 피해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쉽게 관계를 끊어버린다. 부모자식간에도, 형제자식간에도 예외는 없다. 엄마가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아들을 방치하고, 언니가 더 이상 이용할 가치가 없는 동생을 끊어내고, 아들이 못난 아비를 버린다. 이들에게는 '관계 단절' 또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라면 그들의 애정방식을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나는 사랑을 베풀어야만 하는 사람이야, 내가 희생하고 수고하는 게 마음 편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쉽게 관계를 포기하지 못한다. 이들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을의 자리로 내려가 갑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들어주기 위해 애쓴다. 갑의 요구사항은 하나씩 하나씩 늘어난다. 갈수록 짐은 더 무거워지고, 치러야 할 값은 더 비싸진다.


그러나 갑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을은 갑의 욕망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슈퍼맨이 되려고 노력하고, 갑은 을을 가스라이팅하여 노예처럼 부리며 착취하는 상명하복 구조를 완성시키려 작업한다. 비상식적임에도 불구하고 을은 갑을 끝까지 지지하며, 갑의 사랑고백을 진심으로 믿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과 꼭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성장하며 수많은 관계 속에서 갑의 역할이 되어보기도 하고, 을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 친구와 친해지고, 절교하면서 우정을 배운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면서 사랑을 배운다. 엄마의 말에 반항하다가, 엄마가 되어 속썩이는 자녀를 키우면서 모성애를 배운다. 아빠를 미워하다가도, 아빠의 장례식에서 아빠를 그리워하며 아빠의 소중함을 배운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보면 자연스레 좋은 부모노릇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부모가 그 자리를 지켜주신 것만으로도 큰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마치 어려운 수학 이론과 같다. 선생님 설명을 듣고, 문제 풀이과정을 볼 때에는 이해가 된다. 마치 다 깨우친 것 같다. 혼자서도 충분히 풀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연습 문제 앞에 서는 순간 앞이 캄캄해진다. 어떤 공식을 가져와서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30분, 1시간, 2시간동안 이 문제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싶지는 않다. 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고민하고 싶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틀리고 싶지 않다. 손해 보고 싶지 않다. 차라리 공부 안 하고 못 하는 게 낫겠다 싶다. 공부했는데도 문제를 틀리면 바보 소리를 들을테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부부간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부부 중 한 명이 절대적인 갑이나 을이 된다면 그 관계는 정상적인 부부라고 볼 수 없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차라리 계약에 가깝다. 그리고 부부는 서로를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양가의 부모, 형제, 자녀, 조카까지 사랑해야 한다. 수학의 3차방정식, 미분과 적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게다가 이 문제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부가 함께 정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정답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고, 두렵고 떨리지만 믿음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만약 모든 게 완벽하다면 당신이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나의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고 사랑을 배워야 한다. 상대방을 용서하고 그의 약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지점에서 또 다시 실패할 것이다.


뼈 아픈 충격과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출혈이 커서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사랑을 주는 것도 사랑을 받는 것도 배움과 쇄신이 필요함을 떠올려야 한다. 사랑이 귀하고 소중한만큼 비싼 대가를 치러내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상처에서 새 살이 차오르는 기쁨을 맞이할 것이다. 거칠고 차가운 옛사랑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보드랍고 따뜻한 새사랑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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