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찬 바람이 알려준 것, 나를 다시 세운 군시절

by 의지박약사

낙엽이 떨어지고 찬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그날이 떠오른다. 2001년 11월 19일, 머리를 빡빡 밀고 군에 입대한 날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군대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엄격한 규율 아래 단체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태권도를 배워본 적도 없고, 구기 종목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PC방에서 게임만 하며 입대를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대학 친구에게 “나 디아블로 아시아1 서버 랭킹 1위 찍었어”라고 자랑했다. 그러자 친구는 한심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넌 지금 군대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가정에도, 사회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PC방 폐인에 불과한 내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기분은 나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갱생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군 입대를 결심했다.


‘못 쓰게 된 물건이나 소용없게 된 물건을 손질해 다시 쓸 수 있도록 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갱생’은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나처럼 사회성도 떨어지고, 잘하는 것이라고는 게임밖에 없는 어른을 누가 갱생시켜줄 수 있을까? 오직 군대만이 나를 강제로 기존의 삶과 분리시키고, 사회에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 군대는 한마디로 갱생의 상징이었다. 학창 시절 싸움만 일삼던 형이 군대를 다녀온 뒤 철이 들어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몸이 약해 집에만 있던 형이 군대에서 꾸준히 운동해 건강을 회복하고 회사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했을 뿐인데, 마음가짐과 생활 태도에서 부족한 부분이 바로잡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군대에 가기 전, 나는 늘 집안 형편이 비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실을 피하고 사이버 세계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훈련과 단체생활에 적응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남들처럼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생각보다 쉽게 부서지지 않는 몸과 마음, 그리고 간절함이 내게 주어진 소중한 자원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전역 후 새로운 길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을지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하지만 시간을 어떻게 때울지 고민하기보다, 미래를 위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때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추고, 바로잡고 발전시킬 부분이 없는지 돌아보는 갱생의 시간이 필요하다.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제대로 달릴 수도 없다.


그래서 11월의 찬 바람이 불면, 나는 늘 내 삶의 방향을 점검한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잘못된 길이라면 헛수고다. 지금이 군 입대 전 그때처럼 잠시 멈춰야 할 시기인지, 아니면 박차고 달려야 할 시기인지 스스로 묻는다. 군 생활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신감이 흔들릴 때면 이렇게 나를 격려한다.


“그 힘든 시기도 이겨냈으니, 이번에도 분명히 이겨낼 거야. 지금도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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