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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포근 Mar 12. 2020

선생님이 글을 쓴다는 것

습관적 기록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습관에 가까운 일이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나는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던 나는 독서실의 답답한 공기를 피해 독서실 옆 카페에 친구와 죽치고 앉아있곤 했고, 달디 단 허니브레드와 카페모카를 시켜놓고 노트에 글을 끄적이며 공부를 했다.


물론 그 때 끄적였던 것들은 '글'이라고 하기는 다소 민망한 면이 있다. 끽해야 교과서나 문제지에 나오는 말들을 그럴듯하게 옮겨놓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꽤나 진지했다. 복잡하고 난해하게 쓰여있는 문장들을 나의 언어로 바꾸어 담아내는 작업. 그러고 나면 머리와 마음에 그 문장들이 더 깊게 새겨지곤 했었다.


그 안에 나의 생각과 감정은 없었고 그런 것들은 돌아볼 시간조차 내게 주어지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고마운 것은 그 때 커피를 마시며 글을 끄적였던 것이 습관이 되어 나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된 후 나는 마땅한 취미를 찾아 헤맸다. 연애와 음주가무로 새내기 시절을 바쁘게 보내고 난 뒤 헌내기가  된 나는 과분하다 싶을 만큼 많은 자유시간을 얻게 되었다. 때마침 끝난 새내기의 열정적이었던 연애. 나는 붙들고 해체하고 꺼내고 봉합해야하만하는 감정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카페에 가는 것에 취미를 붙인 것이 바로 그때였다. 자취방에서 빠른 걸음으로 딱 십분. 가방에 든 것은 노트 하나, 펜 하나가 전부였다. 음료는 늘 따뜻한 카페라떼. 과하게 쓰지도 물리게 달지도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노트에는 늘 날짜와 시간, 장소부터 썼다. 2014년 5월 6일 화요일 오후 13시 30분, OO카페에서. 뭐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여과없는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쏟아냈다.


독자라고는 나 하나뿐일 이 글. 매정하기 짝이 없는 마지막에 대한 분노가, 지우려다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을 마주하는 아픔이, 결국 쌍방의 문제였음을 받아들이는 씁쓸함이, 이쯤에는 끄떡 없다며 훌훌 털고 일어나려는 스물 한 살의 발버둥이 빼곡하게 담겨있는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는 안심이,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풋풋한 자신감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안쓰러운 결심이, 마침내 새로운 사람이 보이는 것 같을 때의 설렘이 부지런히 녹아있는 글이었다.


치열하게 나 자신과 내 안에 오고 가는 사랑에 집중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때의 글. 카페에 앉으면 습관처럼 노트와 펜을 꺼내던 몇 년 간의 대학시절. 그것이 나를 교과서가 아닌 나에 대해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교사가 되고도 꼬박 2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불가해하고 불가측한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역동적인 글을 쓴다. 신규 발령을 받고 주말마다 그 주의 기록을 일기 쓰듯 써내려가던 것을 시작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을, 수업과 학급 운영을 하기 위해 시도했던 나의 어설픈 방법들을, 그리고 아이들로 인해 느끼는 생경한 행복과 좌절을 담아내려고 습관처럼 끙끙댄다.


여전히 주말 아침이면 오픈 시간이 가장 빠른 카페를 찾아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노트를 편다. 여전히 생각을 쏟아내기 전에는 2020년 3월 12일 오후 5시 35분, ㅁㅁ카페.

어떤 때는 이것만 쓰고도 쓸말이 없어 시덥지 않게 오늘의 날씨나 오늘의 메뉴 같은 것을 적고 노트를 덮어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습관처럼

카페에 가고

노트를 펴고

날짜를 쓴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같은 아이들의 마음에 헤집고 들어가 그 안에 표류한다. 그리고 그 안에 때론 휩쓸리고 때론 운좋게 중심을 잡으며 아슬아슬한 일 년간의 항해를 한다.


때로는 무관심한 채로, 때로는 과도하게 몰입한 채로,

어떨 땐 모자르게, 어떨 땐 넘치게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은, 쓰려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다운 글감이 되고 무관심 하면 모든 것이 스쳐지나가는 일이 된다.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아름다운 글의 영감과 원천으로 보고 싶어서 나는 습관처럼 주말이면 글을 쓴다.


선생님이 글을 쓴다는 것은.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기 위한 습관이다. 내지는 그렇게 하겠다는 교사의 습관적인 다짐같은 것이다. 아이들을 살피는 일,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나를 살피는 일, 지쳐버릴지도 모르는 미래의 나를 다독이는 일. 그것이 선생님이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말도

카페를 찾아

노트를 꺼내고

펜을 들어

사랑을 담담하게 써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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