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장날이니까 가는 날입니다.
수촌리 근처에는 2번의 장이 선다. ‘5,0’이 들어가는 날짜에 열리는 발안만세시장과 ‘4,9’가 들어가는 날에 열리는 조암 시장이 그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장날은 꼭 챙겨야 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덕에 두 장날 중 한 번은 꼭, 어떨 땐 두 장날을 모두 가곤 한다.
장날에 가는 마음 가짐과 마트에 가는 마음 가짐은 다르다. 마트에 갈 땐 사야할 물건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만 딱딱 사오려고 노력하지만, 장날엔 일단 살 게 없어도 현금을 두둑히 챙기고, 지갑과 마음을 애초에 무장해제한 상태로 입장한다.
그렇게 시장 입구에서부터 탐스러운 송화버섯을 만나 1kg, 쪼그려 앉아 직접 캐서 다듬은 나물을 파는 할머니께 나물 몇 천원 어치, 제철 딸기가 빨갛게 스티로폼 박스 속에서 쳐다보는 걸 무시하지 못 하고 한 박스, 생각하지도 않았던 수면바지가 따뜻해보여서 두 장... 그렇게 시나브로 사다보면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로 몇 만원 쓰는 것쯤은 우스울 정도로 준비한 현금을 모두 쓰고 오게 된다.
하지만 진짜 시장의 하이라이트는 이것! 매번 같은 장날인 것을 알면서도 엄마와 내가 장날만 되면 신이나서 현금을 준비하는 이유는 시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이 간식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입구에서부터 코를 파고드는 고소한 뻥튀기 냄새와, 모락 모락 김이 나는 뉴슈가 맛 찰옥수수, 지글지글 호떡, 기름에 풍덩 빠져 설탕을 뿌린 꽈배기와 팥도나스까지! (중요! 도넛아니고 도너츠아니고 도나스다.)
이것 저것 너무 많이 사서 더 물건을 들 손이 없는데도 꾸역 꾸역 “호떡 3개랑, 붕어빵 3개요.” “꽈배기랑 도너츠 3개씩요.” “뻥튀기 한 봉지요!” “찰옥수수 3개 주세요! 검정알 섞인걸로요.” 하게 되는 마성의 시장 간식들. 집에 돌아와서 사온 것을 한 보따리 펼쳐놓고 나면 막상 필요했던 것은 한 개도 없고 온갖 주전부리와 생각지도 못했던 음식과 물건들이 가득하지만 마음만은 든든해지고 어서 정리하고 먹을 생각에 계속 신이 나는 장날.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제철 음식을 가장 실감나게 만날 수 있는 곳. 사람냄새 음식냄새 가득한 곳에서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곳. 가는 길이 설레이고 오는 길이 든든한 곳. 어쩌면 장날의 장은 시장이 아니라 축제의 ‘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수촌리에 살며 장날이 내게 추억 속의 장소, 기억으로 남지 않을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인터넷과 마트에 즐비한 ‘상품’들과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 장날의 ‘물건’들. 그것들을 계속 일상적으로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더 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에게 장날은 살 게 없어도 그냥 “장날이니까. 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