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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애 Feb 17. 2022

이야기가 있는 음식

지치고 힘들 땐 '네'게 기대 <내 영혼을 위한 콩 스프 外> 

모든 음식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삶의 즐겁고, 슬프고, 힘든 모든 순간, 음식도 늘 그 곳에 함께 있었기에.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결국, 나의 모든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있는 음식

내 영혼을 위한 콩 스프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있다. (저자 - 잭 캔필드)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삶의 지침을 주는 이른바 자기 계발서 같은 책인데, 이 책의 제목에 닭고기 수프가 들어간 이유는 미국을 포함한 서양권에서 닭고기 수프는 엄마가 아이들이 아프거나 힘들어할 때 해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닭고기 수프라고 하니 우리로 따지면 삼계탕 같은 것이려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힘들 땐 닭, (역시 'Everybody like chicken'은 진리인 것인가) 따뜻한 국물이 치트 키인가보다.


가끔은 그 어떤 말과 약으로도 치료받지 못 한 부분을 음식에서 해결 받을 때가 있다. 또 가끔은 어떤 특정 음식이 유난히 먹고 싶고 그리워질 때가 있다. 또 가끔은 그런 음식들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게도. 여기 수촌리에도.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같은 치트키 몇 개가 있다.



첫 번째, 콩탕.


하루 전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 콩탕. 전 날부터 불린 콩을 곱게 믹서에 갈고, 역시나 전 날부터 찬 물에 담가 짠 기를 뺀 묵은지를 들기름에 들들 볶아서 만든다. 


비지찌개처럼 맵고 밥을 부르는 맛이 아니라 그냥 심심하게, 따뜻하게 걸쭉하게 갈린 콩을 떠먹는 음식.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지쳐 내가 눈에 띄게 바닥으로 가라앉으면 엄마는 말없이 콩을 불리고 묵은지를 찬물에 담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무 말 없이 밥상에 콩탕이 오른다. 


따끈한 콩탕 한 숟가락을 먹으며 부엌을 둘러보면 손 큰 엄마가 한 솥 가득 끓여 놓은 콩탕이 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과 맛, 온도로 내 영혼은 충분히 채워진다.



두 번째, 누룽지와 김, 그리고 짠 무.

나는 얼마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종종 응급실에 가거나 입원을 할 때가 있다. 이번 설에도 몸이 좋지 않아 응급실에 2일 정도 입원을 하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가 함께 상주하기 어려웠다. 혼자 병실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 새벽부터 엄마가 전화를 해서 '뭐 먹고 싶냐'라고 물었다. 그때 아침으로 자주 먹는 우리 집 누룽지와 짭조름한 조미김, 엄마 손 맛 가득 짠무가 있는 밥상이 생각났다.


"김, 짠무. 누룽지 먹고 싶어. 김 기름 발라 소금 쳐서 구운 거. 짭조름한 거. 가는 길에 도시락 김 사갈게." 

하고 말했더니, 엄마는 파는 도시락 김은 쓰레기도 많이 나오고 맛이 없다며 파래김에 집 들기름 발라 구워놓을 테니 그냥 오라고 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돌아오니, 김과 짠무가 김치통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 장 한 장 기름을 바르고 프라이팬에 살살 뒤집어가며 구워 소금을 뿌리고 바스러지지 않게 조심히 잘라서 한 통 가득 채워졌을 김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작년 김장 때 소금물에 담가 두었던 무를 꺼내 채 썰고, 찬물에 담가 짠기를 빼고, 또 망에 넣어 짜내서 물기를 쫙 뺀 후 손 맛 가득 담아 무쳐냈을 짠무 한 통.


김이 모락모락 나는 누룽지 때문이었는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인지. 눈앞이 흐린 상태로 구수한 누룽지에 짭조름한 두 치트키를 턱턱 얹어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귀한 밥상을 끼니로 먹으며 살고 있구나. 힘이 나지 않을 이유가 없네. 그러니, 감사히 잘 먹고 힘을 내자.'


이렇게 적고 보니,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우리 마음속 각자의 닭고기 수프는 그 음식의 맛, 영양소가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영혼이 나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그 수프가 그립지 않은 나날들만 가득하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당신에게도 지금 머릿속에 수프 하나쯤은, 수프를 끓여주었거나 끓여줄 영혼이 따뜻한 사람 하나쯤은 떠오르길 바라며.


-짓는애의 수촌리 이야기, 그 네 번째 이야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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