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2를 읽으며
"각자를 자각해야 각각이 되는 거야. 가족이자 각각이어야 오래 갈 수 있는 거고."
위 문장은 『불편한 편의점2』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 인물은 덧붙여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각자로서의 감각을 잃지 말라고. 혈육이지만 서로의 분별을 잊지 말자고.'
이는 비단 가족관계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서도 각자→자각→각각으로의 과정은 필요하다. '우리'라는 틀 안에서도 각자도생해야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한배를 탄 몸이니 대세를 따라야 한다는 말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었다. 그들의 의견이 곧 나의 의견이 되고, 나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다면 '나'라는 존재는 점점 소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던 소설이 의도치 않게 영감을 선사해 준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해나갈 때면 잠깐이지만 힘이 난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한차례 더 짙어지면서 말이다. 회사에 다녔을 때는 나의 색이 점점 흐려지다가도, 글을 쓰거나 읽을 때면,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곤 하니까.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회사에서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에게 실망한 적이 많았다. 내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욕구가 커져만 갔고, 그럴수록 나의 목소리와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튀어봤자 좋을 것 없는 조직 문화에 익숙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하루의 반 이상을 그렇게 보낼수록, 나의 존재를 각인시킬 고유의 것들로 그 외의 시간을 채우길 바랐다.
각자의 의미를 자각한 단계였지만, 회사에서는 각각의 존재로 있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묶음이 아닌 낱개로 포장됨으로써 오로지 나로 인지되는 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직함이 아닌 스스로 정의 내린 이름이 더 값지게 느껴지듯, 나는 나로서 내게 인정받길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정욕구를 채워주는 주체를 상대방이 아닌 나로 설정한다면, 상대에 대한 기대감도, 서운함도 덜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
바라면 바랄수록,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관계도 그러하고, 본인에게도 그렇고.
그러한 의미에서 각각의 존재로 성장해가는 성숙한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