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시간 속에 있다

by 박수연






추석이 되면 우리는 고향으로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향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집이아니라, 그 집에서 함께 웃던 여름 오후이기 때문이다. 도착한 그곳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대문은 다른 색이고, 마당의 감나무는 지붕을 넘었고, 골목은 말끔하게 포장되었다. 집은 그대로인데, 무언가 다르다.


우리가 찾는 것은 그 골목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수박을 썰어주시던 저녁, 고추잠자리가 날던 햇살, 부엌에서 들려오던 냄비 뚜껑 소리. 우리는 그 시간을 찾아온 것이다. 추석은 신비롭다. 우리는 차를 몰고 길을 달리지만, 사실은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할머니가 살아계시던 그때로, 아버지가 건강하셨던 그 시절로.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도착한다. "왔니?"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 속에서, 전 부치는 냄새를 맡는 순간, 마루에 앉아 햇살을 받는 그 찰나. 시간의 문이 열린다. 어머니의 손이 송편을 빚는 모습은 할머니의 손과 꼭 닮았고, 내가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삼촌이 내게 그랬던 것과 똑같다. 우리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과거와 만난다.


물론 우리는 안다. 진짜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할머니가 부르시던 내 이름, 온 가족이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자던 밤. 그 시간은 흘러갔고, 다시 오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 시간은 우리 안에 살아 있다. 손끝에, 입맛에, 눈빛에. 할머니가 나를 쓰다듬던 손의 온기가 어머니 손에서 반복되고, 어머니의 그 손길이 이제 내 손에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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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향은 우리를 통해 흐른다. 물처럼, 노래처럼.


그러니 추석에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한 귀향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찾아가는 동시에, 새로운 고향을 만든다. 지금 이 순간, 오늘 차려놓은 이 차례상, 오늘 둘러앉은 이 식탁.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고향이 된다. 오늘 조카가 맛본 송편의 달콤함, 오늘 밤 함께 본 저 보름달, 오늘 할머니가 쥐어주신 따뜻한 손. 이것들이 언젠가 그 아이의 고향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고향을 잃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고향을 물려받았고, 또 물려준다. 세대에서 세대로, 시간에서 시간으로, 사랑에서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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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아래서 우리는 깨닫는다. 이 명절은 과거를 기억하는 날만이 아니라, 현재를 축복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날이기도 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지금 함께 웃고 있는 어머니도, 자라나는 조카도, 모두 한 자리에 있다. 시간을 넘어서.


할머니가 기르시던 깨가 송편 속에 들어가고, 할아버지의 밭에서 난 토란이 국이 되고, 어머니의 손맛이 전으로 구워진다. 우리는 시간을 먹는다. 사랑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보름달은 할머니도 보셨고, 어머니도 보셨고, 이제 조카도 본다. 같은 달. 다른 시간.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든 시간이 하나다.


결국 이것이다. 고향은 장소도 시간도 아니다. 고향은 사람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우리를 사랑해준 사람들. 그들이 있던 시간과 공간이 고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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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추석에 우리는 돌아간다. 사람에게로. 살아계신 분들에게는 직접 달려가고,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마음으로 찾아간다. 고향은 없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한, 고향은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누군가의 고향이 되어간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 옆에 앉아 손을 잡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고향에 있다.

지금, 여기,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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