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왜 정면으로 오지 않는가

by 박수연


추격의 역설


행복은 묘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정면으로 쫓아가면 도망가고,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슬며시 옆구리를 찌른다. 마치 고양이처럼.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진짜 행복을 알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행복을 정면으로, 너무나 정직하게, 너무나 집요하게 쫓는다.


"나는 행복해야 해." "나는 더 많이 가져야 해." "나는 인정받아야 해." 이 문장들은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문장들을 되뇌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진짜 기쁨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왜일까?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이다.


거울과 창문


우리는 종종 타인을 거울로 착각한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비추는지, 나를 어떻게 칭찬하는지, 나를 어떻게 인정하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타인은 거울이 아니라 창문이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모든 창문을 거울로 바꾼다. 친구의 고민을 들으면서도 "나도 그런 적 있어"로 대화를 가로채고, 누군가의 성취를 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조차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만을 확인한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창문이 거울이 되면, 그는 점점 더 좁은 방 안에 갇히게 된다.


거울로 가득한 방은 넓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좁은 공간이다. 사방이 자신의 모습뿐이니까.


웃음의 물리학


진짜 웃음은 공명이다. 누군가와 함께 웃을 때, 우리는 잠시 '나'라는 울타리를 넘어선다. 웃음은 자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의 웃음과 함께 있을 때의 웃음은 질적으로 다르다. 혼자서는 킥킥거릴 수 있지만, 배꼽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웃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일 때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의 웃음에는 메아리가 없다. 그들의 기쁨은 울림이 아니라 반향이다. 진짜 행복이 교향곡이라면, 그들이 듣는 것은 녹음된 독주곡이다. 완벽할 수는 있어도, 살아있지 않다. 재미있는 건, 가장 큰 웃음은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을때 나온다는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어리석음을, 모순을 웃어넘길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보다 큰 관점을 갖게 된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니까.


비우기의 기쁨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자신을 비울 때 가장 충만해진다. 좋은 책을 읽을 때,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누군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잠시 '나'를 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자신보다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된다.


이것이 몰입의 비밀이다. 진정한 몰입 속에서 '나'는 사라진다. 화가는 그림 속으로, 음악가는 선율 속으로,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 속으로 녹아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들은 가장 행복하다. '나'를 잊었기에.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역설적으로 자신을 비울 수 없다. 모든 순간이 '나'의 렌즈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음악이 나에게 무엇을 줄까?"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만들까?" "이 경험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질문이 많을수록, 경험은 얕아진다.


행복의 문법


자기 중심적인 사람의 세계에서 모든 문장은 '나'로 시작한다. 나는 원한다, 나는 느낀다, 나는 필요하다. 하지만 진짜 행복의 문법은 다르다. "우리는 함께했다", "당신이 있어 좋았다", "그것이 아름다웠다". 주어가 유연하고, 동사가 관계를 향하고, 목적어가 순간에 머문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나'라는 주어에 갇힌 사람은 '나'라는 세계에 갇힌다. 그리고 그 세계는, 아무리 호화로워도, 결국 독방일 뿐이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자기를 채우는 것에 집중한다. 더 많은 인정, 더 많은 사랑, 더 많은 성취. 하지만 진짜 행복은 채우기가 아니라 흐르기다.


강물이 자기 자신을 채우려고만 하면 썩은 웅덩이가 된다. 흘러가야 맑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풍요를 경험한다. 시간을, 관심을, 공감을, 사랑을. 주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텅 빈 그릇이 아니라 넘치는 샘물임을 깨닫는다.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풍요의 증거다.


사랑의 방향


그렇다면 자기 사랑은 나쁜 것일까? 아니다. 문제는 사랑의 방향이 아니라 사랑의 굴절이다. 자신을 사랑하되 자신에게 갇히지 않는 것, 자신을 돌보되 자신만을 위하지 않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건강한 자기애는 샘물과 같다. 자신을 채우지만 동시에 흘러넘친다. 병적인 자기애는 댐과 같다. 모든 것을 가두고 정체시킨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증명할 것도, 방어할 것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로 충분하니, 타인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결국 남는 것


삶의 끝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건 무엇일까? 자신이 얻은 것일까, 함께한 사람들일까? 자신이 성취한 것일까, 나눈 순간들일까? 진짜 행복은 정복이 아니라 연결이다. 소유가 아니라 공유다. 채우기가 아니라 흐르기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성공도, 명예도, 부도. 하지만 그들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따스함이다. 혼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함께이기에 가능한, 그 울림 말이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다. 방향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언제나 자신을 넘어선 곳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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