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의 힘'을 읽고
나는 외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집 안에서는 큰 노력 없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었는데,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나왔을 때는 당연히 와야 할 관심이 나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많은 불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타인의 주목 받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유별난 무언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늘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생 때를 회상해 보면 그것은 군대 가기 전엔 술이었고, 제대한 이후에는 유학이었다.
신입생 때 누구보다 술자리에 많이 참여했다. 젊음의 패기로 선배 형과 누나들이 부어주는 술잔을 원샷으로 마시고, 귀엽고 깜찍한 ‘베스킨라빈스’ 게임을 열심히 참여하며 재롱을 부렸다. 그런 나를 선배들은 한때 재미있다며 많이 데리고들 다녔다. 술독에 빠져 지냈던 1년, 나는 초라한 학점 1.9를 받아들여야 했다. 성적표는 꼬깃꼬깃 접어둔 채 집에는 비밀로 했고, 혼자서 1학년 때는 다 노는 거라며 정신 승리를 가져갔다. 제대하고 나서는 조금 정신이 들었다. 이제 공부 좀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이 가지 않았던 해외 교환학생을 준비했다. ‘영어 공부는 서울이다’는 말도 안 되는 신념으로 해외에 나가기 위한 관문을 얻기 위해 서울로 먼저 유학을 떠났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영어 한 글자 보지 않았던 내가 공부가 잘될 턱이 없었다.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고, 멋쟁이 시골 쥐처럼 보이기 위해 매일 옷차림에 신경 썼다. 그래도 무거운 엉덩이 탓에 교환학생을 가기 위한 토플 최소 점수를 받고 미국 뉴저지에 교환학생을 가서 1년의 과정을 수료했다. 교환학생 수료는 내 영광스러운 뱃지로 남게 되어 온 곳에 자랑하는 셀프 자랑거리가 되었고, 영어로 진행되는 글로벌 클래스에서 뛰어나지 않은 영어를 억지로 쓰면서 남들의 주목받으려 했다.
이처럼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쓰던 나는 점차 승부욕이 강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무엇을 해도 남들보다 잘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보다는 저 사람 보다 잘해야지 무시 받지 말아야지 하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늘 생각의 중심이 내면에 있기 보다 밖에(타인) 있었다. 내 인생을 남과 비교하며 살았고, 늘 불안 속에 자신을 시험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작년에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기 위해 부족한 마케팅 예산에서 수익을 최대한 남기려 노력했다. 영상, 이미지 콘텐츠 제작비 지출비용을 낮추기 위해 신규 거래처를 발굴하고 그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일을 말끔히 처리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말 악착같이 회사를 위해 일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심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경영진의 연말 평가에서는 좋은 인상을 안겨주지 못했다. 경영진의 평가는 아래와 같았다.
“맡은 일을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잘 수행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의 생각의 틀에 갖혀있다. 광고주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부족하다”
이것이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한 몹쓸 승부욕에 대한 결과 값이었다. 경영진의 평가를 즉석에서 들었던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처럼 회사 수익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었나?’ 따지고 싶은 마음이 산덩이 처럼 불어 났지만 간신히 그 마음을 가라 앉히고 회의장을 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일에 대해 갖고 있던 의욕을 점차 잃게 되었다. ‘열심히 해봤자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 왜 열심히해?’ 적당히 욕먹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하자. 이전에는 매일 써야 할 에너지의 80 프로를 일에 소비 했다면, 그날 이후 부터는 50-60 프로를 사용했다. 워라벨을 지키기 위해 퇴근시간이 빨라졌고, 퇴근 이후의 시간은 주짓수를 하거나 집에와서 아내와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 보내는 것은 괜찮았다. 이게 내가 바랬던 삶이지 하며 만족했다.
(다음 글에서 계속 됩니다)
https://brunch.co.kr/@2adb098ba48d47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