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시원 샤워실 기억으로 소환된 이야기

인생 조각 모음

by 거북이

등골 브레이커

어린 시절 나는 물질적인 부족함을 단 한번 느끼지 못하며 자랐다. 집 안에서 어렵게 얻은 유일한 자식이었던 나에게 부모님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한때 하는 것 없이 집 안의 돈만 거덜 내는 자식을 일컫는 말로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그 단어가 그 시절 나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았었나 생각한다.


조선시대 양반 자식 도련님처럼 내가 집안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 성실한 부모님 덕분이었다. 부모님은 유명 프랜차이즈 일명 ‘빠바’로 일컫는 빵집의 자영업 사장님이었는데, 매일 오전 6시 출근해서 00시에 퇴근하는 치열한 삶을 사셨다. 부모님은 무려 이런 삶을 10년 이상이나 지속하며, 미국으로 나를 교환학생을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다.


알라딘의 슈퍼 히어로 지니처럼 부모님은 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희생하셨고, 나는 그런 부모님께 소원을 외치느라 바빴다. 부모님의 존귀한 노동에 대한 가치와 사랑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았겠지만 모른 척했던 것 일 수도 있겠다. 그래야 내 마음이 부모님의 희생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 편이 편했으리라 본다.


고시원 샤워실의 기억

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눈 깜짝할 사이 직장에 소속된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스물 일곱 여름 상경해 흑석동 고시원 단칸방 생활을 했다 (당시 부모님이 반대하는 일을 도전하는 입장이어서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월세 20만 원짜리 쪽방, 방이 좁아 침대에서 다리를 쭉 펼 수 조차 없었다. 고시원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잠을 청하는 공간이었다. 생존에 성공한 후 잠에서 깨어나 천장을 바라보면 처음으로 보이는 시야는 침대 위 행거에 걸린 옷가지. 졸린 눈 비비고 샤워를 하러 갔을 때는 누군가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 옆 사로에서 똥을 누기도 했다. 아직도 그때의 퍽퍽한 내 삶의 고통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인턴이었던 나의 월급은 90만 원이었다. 열정 가득했던 나는 열정 페이를 받으며 사무실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주구장창 두드렸다. 그토록 원했던 일을 좁은 문 뚫고 시작했기에, 초기에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일-직장-일 그리고 새벽근무-회식-새벽근무. 직장에서 인정받고자 노력했으나, 성공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실력과 일머리가 부족한 나에게 세상은 가혹하게 나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회사에서 맨날 깨지니 그 높았던 자존심과 자존감은 어느새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키보드가 나에게 성공을 가져다줄 거라 믿었다. ‘show me the money’, ‘show me the success’. 스타 크래프트 치트키를 치듯 기적이 다가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는데 키보드는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

이렇게 회사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3달 정도 하니,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은 풀이 꺾여 있었고, 의지 없이 시간만을 축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에서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발생하는 작은 사건들.. 그런 사건들에 곤두서 마음에 하나둘씩 증오를 쌓아 두었다. 어느새 인가 나는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며 회사 욕, 신세 한탄을 하는 그냥 그저 그런 어중간한 직장인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원했던 으른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드라마에서 보는 성공한 직장인, 벤츠 한대쯤 뽑아 멋있게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 상사 동료직원에게 인정받는 스마트함, 그게 바로 내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인생이 퍼즐이라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조각을 잘못 맞췄던 걸까?


다람쥐 쳇바퀴처럼 목적성 없이 굴러가는 삶.. 현재는 결혼도 하고, 연봉도 상승하며 상황이 많이 나아지긴 했다.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나를 좋은 방향으로 안내하고 있는가? 그건 단연코 아니다. 눈앞의 현생의 과제에 치이면서 살아가면 나는 또 케이지 안에 갇혀 쳇바퀴를 어김없이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삶이 주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과정을 즐기기 위해, 나는 그간 살아온 나의 태도와 가치관을 뜯어보고 분석하여, Turtle O.S. 1.0 버전을 Turtle O.S. 2.0 버전으로 업데이트하기로 결심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