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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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이라는 타이틀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름 석 글자를 내세워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늘만 있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목적이 있어 내일을 그릴 줄 아는 삶. 내 소중한 삶에 대한 예우를 지켜야만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야말로 ‘잘’ 살아가기 위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에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메타인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마인드 소프트웨어 Turtle 2.0 버전으로 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01.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의존적인 삶
회사에서 하루를 바삐 보내다 보면, 회사의 목표달성을 위해 삶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목표 달성이 자연적으로 나의 성장과 성공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이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0년 남짓 살아가는 인생에서 내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회사는 찰나의 순간을 보내는 공간일 뿐이다. 이 말은 즉 회사는 나의 인생을 책임지는 공간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다. 나는 언젠가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이때까지 나의 인생이 지나치게 회사에 의존적이라면, 울타리 밖으로 나오게 된 미래의 나는 삶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헤매고 방황하기 쉬운 환경에 처할 것이다.
물론 회사의 목표는 공동의 이윤 창출을 위해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에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과정을 즐기기 위해 그리고 삶이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다가오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목표와 방향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9년 스포츠 마케팅 커리어를 내려놓고, 지금 다니고 있는 광고회사로 이직한 이유는 넓은 범위(산업)에서 ‘브랜딩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거창한 목표와 열정을 가지고 입사했고, 회사의 보탬이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올해 년수로 4년째를 보내고 있는 동안 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 당시 제안서 마감을 위해 한 달 평균 2-3번을 밤을 새웠고, 잦은 새벽근무로 몸과 마음을 갈아 넣고 마시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지?’ 말끔히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브랜딩 기획자가 되어야겠다는 그때의 포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까? 나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목적성을 잃은 채 나사를 풀고 조이기 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포부와 열정이 넘치던 나는 왜 그저 그런 직장인이 되어 소중한 하루를 허비하고 있었을까? 회사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 회사의 목표만을 바라보았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스스로를 악순환의 소용돌이 속에 집어 놓고 있었다. 회사의 목표 앞에서 나의 목표가 지워지지 않도록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했었다. 하나의 제안서를 끝내고 또 쉴 틈 없이 다른 기획을 준비해야 했을 때, 회사의 목표인 ‘사업 수주’와 나의 목표인 ‘브랜드로 사람들을 이어주는 기획자’를 함께 떠올리고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촉박한 마음에 회사의 목표만을 지향했다. 그 결과로 나는 나의 삶에 있어서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하루에 절반 이상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주체성을 갖고 싶다면, 회사라는 그늘에서 나의 지향점과 목적을 가리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02.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무관심
나는 일 외적인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주식, 코인 열풍이 불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세상의 흐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그들이 호응하는 것을 외면한 채 외길을 가고자 했다. 직업에 대한 이상만을 추구하려 했던 과거의 시간에서 나는 현실의 많은 기회의 문을 닫고 지냈다. 20대 때 쥐똥 만한 월급에서 월세를 빼고 남는 돈을 악착같이 모으려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았고,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투잡을 뛰려 하지 않았다.
세상의 흐름에 대해 공부하려 하지 않았던 나의 무책임함과 게으름에 대해 늦게나마 반성하는 중이다. 월급을 받는 대로 펑펑 써대며 얄궂은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월급의 일부라도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투자하는 편이 나았다. 연반인이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유튜버를 보며 부러워하기보다 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보는 편이 나았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면, 나의 영역 좁은 칸막이 문을 열고 다른 차원의 세계로 향할 수 있다. 세상의 흐름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한민국 돈의 역사’라는 책에서는 이런 구문이 나온다.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은행 예금 같은 무위험 자산에 올인한 반면, 부유한 이들은 주식이나 부동산 그리고 비상장 기업에 대한 지분 등 이른바 위험 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것이다." 내 기준에서 부자들을 정의하자면 어떤 사람인가? 자신의 한계를 가정하지 않고, 닫힌 문을 열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사람들이다. 혹자는 부자들은 돈은 많지만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가 적어도 자수성가한 부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거라 본다. 그들은 세상을 더 크게 바라보는 사람들, 주어진 기회를 잘 캐치하고 자신을 주저 없이 던지는 사람이기에 더 행복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얼마 전 아내의 대학 동기의 부부와 함께 포천으로 캠핑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아내 친구의 남편은 대학 때 쇼핑 몰을 창업해 현재는 무신사 인기 랭킹 안에 들어오는 브랜드의 오너가 되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는 20대 때 이커머스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일찍 파악하고, 티셔츠에 로고를 넣어 제품을 판매하는 단계부터 시작해 사업을 차근차근 확장시켰다고 한다. 티셔츠 하나 가지고 사업에 뛰어든 그의 뚝심과 용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든 것이었다. 캠핑하는 동안 나는 그와 그의 가족에게서 평안함과 여유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나도 태어난 김에 사는 것보다 그렇게 여유를 가지며 삶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걱정 근심이 앞을 가로막아 좁은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산 정상에서 그것이 너무 높다면 오름에서 그것마저 높다면 언덕에서 나의 현재와 미래를 관망하는 여유로운 삶 말이다.
오늘도 소파에서 한창 게으름을 부리다, 정신을 차려 책상에 앉았다. 세상을 내편으로 만들기 위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책을 펼쳐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