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북이 Nov 23. 2023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려고 캠핑가요!

거북이와 토끼가 캠핑을 좋아하는 이유

거북이와 토끼는 캠핑을 좋아한다. 2020년 인가 캠핑 숍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따라다니다가 캠핑이 주는 묘미에 푹 빠져 버렸다. 토끼가 특히 캠핑을 좋아했다. 평일 오피스에서 시달리던 업무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천천히 스며들어 휴식하는 시간이 좋다고 했다.


토끼는 무엇 하나에 꽂히면 진심인데, 그럴 때이면 장비를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한다. 인스타에서 감성캠핑 해시태그를 매일 둘러보더니, 유명 미국 캠핑 브랜드 스프링바 텐트를 6개월이나 넘게 기다려 아이템 획득에 성공했다. 텐트를 시작으로 장비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타프, 아이스박스, 랜턴, 바닥 매트, 도마 칼세트 매일 집으로 도착한 택배를 뜯어보는 것은 거북이 몫이다. 택배 뜯기가 귀찮아 “왜 이렇게 뭘 많이 샀어?”하며 토끼를 타박하기도 했지만, 내심 알아서 착착 준비하는 토끼가 고마웠다.


캠핑 장비가 남부럽지 않게 쌓였을 무렵, 우리는 자신 있게 단 둘이서 캠핑을 떠났다. 둘만 떠난 첫 시작은 좌충우돌 우당탕탕 소란스러웠다. 친구 따라 몸만 따라갔을 때는, 텐트 치고 타프 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내가 하려니 어색하고, 복잡했다. 거북이와 토끼가 함께 텐트를 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2시간.. 텐트 천장에 폴대를 연결하긴 했는데, 지지대를 폴대의 홈에 끼워 텐트를 세우는 게 어려웠다. 텐트가 너무 무거웠다. 한쪽 폴대를 먼저 세우면 꼭 다른 한쪽으로 텐트가 기울어져 넘어졌다.


토끼 l “거북아 양쪽 네 귀퉁이 팩을 박고, 폴대를 세워야 할 것 같아”

거북이 l “아니야 토끼야 그냥 세워도 돼 유튜브에서 봤는데 이게 맞아”


남편으로서 리더십을 보여주고 싶어 과감히 주장을 내세웠다. 항상 주장을 내세울 때면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토끼의 말이 진리인 것임을 알지만, 막상 예기치 않은 어떤 상황이 들이닥치면 나의 말이 진리인 듯 우기곤 한다. 아마도 거북이의 마음속에 청개구리의 심보가 들어앉아 있나 보다.


거북이는 캠핑의 시작단계인 텐트 설치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평일에 오피스에서 밤새워 가며 ‘생’ 고생을 했는데, 캠핑을 와서도 이렇게 일을 해야 한다고?! 그냥 집에 누워서 넷플릭스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넷플릭스는 일하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즐기는 최고의 취미 활동이 된다.  부정적인 생각이 드문드문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이런 잡생각을 깊이 하지 않았다. 캠핑은 계속 거북이와 토끼를 움직이게 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둘 만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아늑한 터전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우리의 터전


터전을 만들고 나서도 바쁘게 움직였다. 요리 준비를 하고, 고기를 굽고, 설거지를 했다. 캠핑은 자연에서의 생존을 위해 사람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한다. 둘은 캠핑에서 발생하는 움직임들에 대해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둘은 생각했다. ‘가끔은 이렇게 생각 없이 움직이기만 하는 것도 가치가 있는 거구나?’ 캠핑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 평일에 갖고 있던 고민에 퍼즈 버튼을 눌러 주었다. 캠핑을 오기 전에는 우리의 갖은 신경이 경제 활동(돈 버는 것)에 지나치게 포커싱이 되어 있었다면, 캠핑을 오고 나서는 인간의 존엄성(’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집중되었다.


자연에서 편안하게 생활할 집을 짓고, 장을 봐온 신선한 음식과 과일을 먹고, 자연이 주는 상쾌한 바람 냄새도 킁킁 맡아본다. 거북이와 토끼는 일련의 과정에서 새삼스레 우리는 ‘잘’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이구나, 우리는  ‘존엄’한 존재이구나는 걸 느끼게 된다


요리를 하고 아무렇게나 툭툭 만든 음식을 맛본다. 도심에서 느껴볼 수 없는 자연에서 먹는 맛이다. 평소보다 신경 덜 쓰고 요리했는데, 더 맛있게 느껴진다. 둘은 동시에 ‘존맛탱’이라는 감탄사를  날린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크게 웃는다.


아무렇게나 툭툭 만들어 내는 음식


글을 여기까지 쓰면서, 우리가 왜 진지한 캠퍼가 되었나 생각해 보았다. 최근 읽고 있는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책에서는 ‘우연의 일치’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밀란 쿤테라의 말에 따르면, 우연의 일치는 사람과 사건 간 우연한 만남들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91)


거북이와 토끼는 우연처럼 캠핑을 만났다. 그리고 캠핑을 우리 인생의 악보 한 구간에 넣었다. 캠핑이 주는 미적 차원을 받아들인다. 존귀한 우리의 존재를 더욱 소중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사랑을 더 돈독하게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캠핑을 떠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보 그 일 그만두는 게 낫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