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2023년 가장 핫 하다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WE 전시 관람을 위해 리움미술관에 방문했다.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로 열리는 이 전시에 카텔란의 작품 38점이 서울을 방문했다. 갤러리 입장 30분 전부터 로비에서는 무료 오디오 도슨트를 들을 수 있는 휴대폰을 대여해 준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카텔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이번 전시를 위해 리움 미술관을 찾았을 때, 럭셔리한 대리석 기둥과 바닥의 로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미술관 곳곳을 제 식대로 변경했다. 미술관 입구, 로비 기둥에 노숙자 두 명 ‘동훈과 준호’를 눕혔고, 번들거리는 기둥은 전시 포스터로 덮어버렸다. 로비 표지판 위에는 박제된 비둘기 수십 마리를 앉혔다. 카텔란은 허례허식이 드러나는 장식과 소수의 사람이 잘난 척을 위해 찾는 미술관 이미지를 싫어한다. 그러면서 미술관은 소수의 예술가 특권층이 찾는 공간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카텔란에게 미술관은 모두가 방문하여 사유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예술가는 미술관을 적극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드디어 관람 예약시간 5시가 되고 입장을 시작했다. 입장을 기다리던 중 세 발 자전거를 타고 미술관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꼬마 아이를 만났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이 아이는 사실 전시품 찰리이다. 찰리가 등장하자마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순식간에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찰리는 이런 주목을 즐기는 듯 관객 주변을 맴돌며 앞으로 가기도 뒤로 가기도 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카텔란의 분신인 이 작품이 움직이면서 '나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I SEE YOU'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엇 이 전시 정말 특이한데?'
카텔란의 작품들은 B1, 1, 2층 총 3층에 걸쳐 배치되어있다. 층별로 박제된 동물, 조각, 사진 등 카텔란의 주요 작품을 만나게 되어 이동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지금부터 나와 함께 수박 겉핥기식으로 카텔란의 주요 작품들을 만나보자.
B1 그, 2001, Färgfabriken, Stockholm, Sweden
어린아이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남성이 관객과 등을 돌린 채 무릎을 꿇고 있다. 저 남성은 무엇을 잘못했길래 무릎을 꿇고 있을까? 가까이 가서 남성의 얼굴을 보니 시대의 악마로 불리는 아돌프 히틀러다. 해리포터에서 이름도 언급해서는 안 될 악인 볼드모트처럼, 히틀러는 인류에 사악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그를 작품으로 만든다? 어떤 비판이든 감수하겠다는 예술가의 배짱과 무엇이든 예술의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창의성 엿볼 수 있다.
무릎은 사람의 자존심,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사과와 복종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쟁의 패색이 짙어가자 약혼자와 함께 권총으로 자살을 선택한 히틀러가 과연 자신의 만행을 뉘우친 적이 있었을까? 자신의 시체가 광장에 걸려서 수치스러운 일을 당할까 봐 측근에게 시체를 연합군에게 넘어가지 않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 히틀러, 죽어서도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은 그가 조각이 되어서라도 무릎을 꿇고 있으니, 살아서 고백받지 못한 만행에 대한 사과를 내가 대신 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 통쾌함이 느껴진다.
B1 Untitled, 2002, Museum Boymans Van Beuningen, Rotterdam, Netherlands
지하 1층 중앙으로 이동하면, 바닥 속에 숨어 있는 카텔란을 만날 수 있다. 고개만 빼꼼 들어 박물관을 몰래 엿본 카텔란의 '무제 2002' 작품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을까?
놀랍지만 카텔란은 미술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예술가이다. 예술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는 요리사, 시체 닦이, 정원사, 꽃배달, 엽서 팔기 등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고 한다. 언급한 직업들 모두 하나 같이 카텔란을 고단하게 했고, 인내심이 부족한 그는 한 직업에 매달려 전문성을 키우는 것 대신 편안한 직업을 찾아보기로 다짐한다. 좀 더 편안한 일이 없을까? 고민 끝에 선택한 직업이 예술가다. 그 길로 카텔란은 예술을 독학했다. 몸 편해지기 위해 예술가가 된 카텔란을 우리는 게으른 예술가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한 때 부유한 예술가 9위를 차지하기도 한 성공의 아이콘이 되었다.
'무제 2002'는 독학으로 성공한 예술가가 현실 미술 제도권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같기도 하다. '예술은 배운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너네는 배웠는데 왜 나보다 못해?' 하고 당당히 얘기한다.
그나저나 이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리움의 멀쩡한 바닥을 뚫었는데... 카텔란 작품을 모셔오기 위해서는 미술관의 상당한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2F Comedian, Art Basel, Miami Beach
2019년 아트바젤 아트 페어에서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바나나가 탄생한다. 벽에 덕 테이프를 붙인 이 바나나는 12만 달러, 한화 약 1억 7천만 원에 판매되었다. 그리고 행위 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는 배가 고프다며 1억 원짜리 바나나를 시원하게 먹어치워 버린다. 이름하여 '헝그리 아티스트'. 카텔란의 작품은 이것을 계기로 인터넷상에서 수많은 밈을 이끌었다. 아기, 고양이가 벽에 고정되어 있는 사진, 다비드 상 주요 부위가 바나나로 가려져 있는 사진 등은 인스타그램 @cattelanbanna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코미디언이라 이름 붙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무 생각 없이 바나나를 벽에 붙였는데 사람들은 바나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바나나 앞에서 심각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아!' 그리고 예술가의 이 엽기적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세계 최고 아트 페어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이 작품, 카텔란은 이 현상을 조용히 지켜보며 큰 웃음 짓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