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쓰기가 참 어려웠다. 누군가가 신체를 옭아 매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게 참 그렇다. 언제나 내 마음 같지 않다. 뭔가 대단한 걸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음속 자그마한 추 하나가, 어떨 때는 몇십 킬로짜리 모래주머니처럼 느껴진다. 글쓰기란 마음을 재료로 삼는 탓이다.
마음 하나로 뭐든 써 내려갈 수 있지만, 마음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마음이라는 녀석에 좌고우면하게 된다니, 글쓰기란 건 참 업으로 삼기 힘든 일이다.
한때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선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할지 따져본 적이 있다. 떠오르는 것들을 한데 모아두고 하나씩 지워가는 식이었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두 가지가 '자유로움'과 '루틴'이었다. 자유가 아닌 자유로움으로 쓴 이유는 실제 나의 상태보다 마음의 모양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던 듯하다.
결승전에서 꽤 오랜 시간 고민했는데, 두 가지 중에서 도무지 어느 하나를 고르기 못해 모두를 채택했다. 이른바 공동 우승 같은 거랄까.
주최, 주관이 모두 '내 마음'인 대회이다 보니 아무래도 제멋대로다. 물론 여기에 대해 이의 제기하는 자도 없다. 이래서 독재를 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때마다 나타나는 모양이다.
근래의 문제도 여기서 기인했다. 자유로움과 루틴의 공동 부재. 엄마도 아빠도 없는 아주 고독한 상태였던 듯하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는 이렇다.
다름 아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몇 개월간 나는 또 한 번 탈피의 시간을 보냈다. 딱딱한 견갑을 벗어던지고,익숙하고 안정적이었던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말랑거리고 물컹한 몸으로 다시 세상을 마주하게 됐다.
신앙을 갖게 됐고 가정을 이루게 됐으며 일의 외연을 확장했다.
언제나 느끼지만 이 탈피의 감각은 매번 낯설고 불안정하다.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을 늘 갖게 되고,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알몸의 연약함이 본능적으로 느껴져서 아주 원초적인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제 막 분홍빛 새 몸을 갖게 된 바닷가재를 떠올려 봐도 좋을 듯하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자꾸만 이것저것으로 가리려 했던 것 같다. 주변을 의식한 나머지 마음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유로움과 동떨어진 생활이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루틴과도 멀어졌다.
글쓰기 참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외피가 어느 정도 아문 탓인지 다시금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게 됐다. 다음 탈피 때는 번복하지 말아야지, 또 마음을 먹지만 언제나 그렇듯 잘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탈피는 늘 쉽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말랑함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발버둥이랄까. 순간은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느껴지는 은은한 만족감이 있다.
삶에서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탈피의 순리를 적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익숙함을 벗어던지고 낯섦을 받아들이는 데 꽤 도움이 된다. 탈피하는 한 우리는 정체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일평생 탈피를 숙명으로 살아가는 바닷가재들이 괜스레 존경스러워지는 요즈음이다.
※ 본 포스트는 논객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