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얘기] 시절 인연에 대해

by 타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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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시절 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의 인연은 불교적 개념으로, 비단 사람 간에 관계만을 일컫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만물이 인(因)과 연(緣)이 만나 생겨나는 것으로 보므로,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그 시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정도로 풀이해도 좋을 듯하다.


과거에 썼던 일기나 언제 찍었는지 모를 예전의 사진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땐 그게 그렇게 행복했나, 혹은 그게 그렇게 힘들었나 싶은 마음이 든다. 일기 속, 사진 속 우리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곳에서 몇 걸음 물러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이 더 좋아졌든 나빠졌든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오래전에 써놓았던 글을 다시 읽거나, 한때 선망했던 작가의 신작을 볼 때 특히 그런 기분이 든다. 그때의 나는 그런 것들에 빠져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당시의 고민들이나 걱정들, 은은한 열정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특히 좋아했던 작가의 신작이 오래전의 작품관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안타까운 기분도 든다. 이제는 그때처럼 오롯이 그 작가의 세상에 빠져들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순전히 나의 이유로 말이다.


*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대한 애정이 너무 큰 나머지, 그 순간에만 머물러 있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과연 과거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안타깝지만 그건 어려울 듯하다. 누군가가 자신의 과거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고 해도, 그 붙잡은 손은 그 시절의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붙들고 있는 손은, 그로부터 한참 떨어진 지금의 나의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도, 내 주변도 모두 변하게 된다. 이 순리만큼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내 마음은 과거에 머물러 있으려 할지라도, 내 몸과 생각이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간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몸과 생각이 변하면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내가 속해 있던 주변 환경은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모습을 달리한다. 우리가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이렇게 나와 내 주변이 모두 달라져버린다면 그건 과거 속에서 잘 살아간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한때 순수했던 과거에 대한 애정은 집착이라는 알 수 없는 형태로 변질된다.


*


가까운 지인 중에는 10년이 넘도록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밖으로 불러내서 간단히 밥을 먹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 친구는 집에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집에서 최소한의 용돈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정말 낡은 핑계가 되었다.


그 친구와 알게 된 지는 15년도 넘었는데, 우리는 가끔 만날 때마다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만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 재생한다. 그 친구의 시간은 여전히 10년 전 언저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는 요즘 잘 지내냐는 말조차 묻기 미안해져, 서로 안부를 건네기조차 조심스러워져 버렸다.


나 또한 그 친구와 즐겁게 보냈던 예전 시간들이 때로 그립기도 하지만, 시간의 채찍질에 못 이겨 꽤 먼 곳으로 흘러왔다.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과거의 어려움을 이제는 순전히 공감하기 어려워졌다.


각자의 기둥에 매여 있던 아기 코끼리들의 몸집은 더 이상 작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그 기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 아직 새롭게 시작하기에 늦지 않았어, 라는 위로와 조언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의 무게가 축적되다 보니 그 관성을 이기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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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익숙한 것들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작별의 고통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조금은 익숙해졌다 싶다가도 또 다른 작별을 맞이할 때는 비슷한 고통을 느낀다. 갓난쟁이가 엄마 품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갈 때의 상실감을 우리는 살면서 여럿 경험한다.


하지만 이 작별에는 꼭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만약 우리가 시절 인연에 따라 무언가를 경험하고 느낀 것이라면, 하나의 인연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인연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채우기 위해서는 그동안 애지중지했던 것들을 과단성 있게 비워낼 줄도 알아야 하는 모양이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에게 참 많은 것들을 요구하며 키워간다.


※ 본 포스트는 논객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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