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보기] 좋은 소설이 우리에게 하고픈 말

by 타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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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고도의 경쟁 사회에 살아가는 탓에 문제에 대한 즉시적인 해답만을 원하기 때문일까.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실용서 위주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던 중, 2024년 말 한강 작가가 영예로운 노벨문학상을 거머쥐며 조금은 달라진 풍경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삶과 내면을 다룬 소설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


비록 일시적인 현상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는 대단히 크다. 이제는 다소 낡은 낱말이 되었지만, '순수소설'이라는 아픈 손가락이 미약하게나마 다시 움직이게 된 것 같다.


순수소설이니 장르소설이니 하는 구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최소한으로만 가져와 보려 한다.


흔히 장르소설이나 대중소설과 대비되는 순수소설은 음악으로 치면 EDM보다는 협주곡, 미술로 치면 미디어 아트보다는 회화에 가깝다. 입맛을 자극하는 배달음식이라기보다 할머니가 해주는 집밥 느낌이랄까.


꼭꼭 씹어 먹어야 풍미가 느껴질 뿐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에 주안을 두는 탓에 독자에게 꽤 많은 인내력을 요구한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의 여정을 끝까지 쫓아가야 겨우 의도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 장을 모두 넘긴 뒤에도 독자가 원하는 바를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순수소설로 평가받는 황순원의 『소나기』를 단순히 소년 소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간단히 한 남자의 시골 일탈 이야기로 결론짓는 건 뭔가 찜찜한 이유다.


순수소설이 가진 매력 중 하나가 바로, 같은 이야기를 읽고도 저마다 다양한 감상을 내놓을 수 있는 점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야기의 기본 뼈대가 가리키는 바가 분명할지라도 말이다.


누군가는 『소나기』를 읽으며 농촌(소년)에 찾아온 도시(소녀)라는 측면에서 모더니즘을 발견할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무진기행』을 읽으며 늘 진정한 사랑을 꿈꾸지만 매번 현실을 택하게 되는 어제 오늘의 시대상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소나기』는 인물의 짧은 대화와 행동 묘사 속에, 『무진기행』는 '무진'이라는 안개 같은 오묘한 배경 속에 큰 줄기를 스리슬쩍 감춰두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좋은 소설들을 교과서로 먼저 접하는 탓에 언제나 답 찾기에 연연해 하지만, 어쩌면 오독(誤讀)이야말로 작품과 나 자신을 오롯이 마주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지도 않을까.


어쩌면 작가는 자기 작품이 여느 수학공식처럼, 하나의 해석으로만 읽히는 걸 그다지 바라지 않았을 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 속 그림자와 나약함을 조명하는 한강 작가의 감수성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가뭄의 단비 같다.


스스로를 옥죄는 세상을 살아가며 겉으로 보이는 밝음과 강인함에 천착한 나머지, 알게 모르게 어두워지고 시들어가는 내면을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채식주의자』를 단순히 길거리에서 피하고 싶은 이상한 여자의 이야기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흘러간 사건에 대한 정치적 의식 정도로 여기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사회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판단할 때, 점의 관점에서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점이 가진 간결함과 명료함만을 숭배한다면, 때로는 정말 중요하면서도 가치 있는 것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


우리네 삶은 점뿐 아니라, 선과 면도 보란 듯이 존재하는 매우 입체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얼핏 보면 나와 무척 동떨어진 곳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 본 포스트는 논객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