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얘기] 결혼이 필요한 삶에 대해

by 타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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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올린 결혼 생활에 대한 온라인 글들을 보면 꼭 달리는 댓글이 있다.


'그래서, 결혼 해요? 하지 마요? '


이제는 반쯤 밈처럼 여겨지는 이 물음에는 꽤 여러 심경이 담겨 있다.


'나도 너처럼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너처럼 실망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결혼'이라는 중대사의 무게는 쉽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간접적으로나마 좋은 선택을 위한 정보를, 조금은 우스개를 담아 얻고 싶은 마음일 터다.


물론 그 아래에는 언제나 스테디셀러처럼 달리는 댓글이 있다.


'만나는 여자(남자)가 있는지부터 먼저 물어봐 줘요... (눈물)'


그렇다면 과연,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을까 그렇지 않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누구를 만나는지에 달려 있다.


결혼이라고 해서 결코 특별하지 않다. 그저 인간관계의 가장 밀접한 형태일 뿐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협업을 할 때 그 일이 잘 풀리고 즐겁기 위해서는 누구와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그 관계의 밀접도가 매우 짙을 따름이다. 생활과 감정과 마음을 모두 공유하는 관계니까.


요즘에는 자유로운 연애를 하며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주변의 40대 지인들을 보면 굉장히 세련된 취미와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도 결혼을 하진 않지만, 짧지 않은 기간 동안의 맺을 인연을 찾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몸도 마음도 20대처럼 에너지 넘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피로한 것이다. 아무리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분이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인연이 있다면 꼭 결혼할 필요가 없을까?


이 물음에 대해 누군가 물어오면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축사를 들려주며 은근슬쩍 몸을 피한다. 아래는 하루키가 자신의 삽화가인 안자이 미즈마루의 딸 결혼식에 보낸 축사 전문이다.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中


결혼식에 어울리는 짧으면서도 아주 멋진 축사다.


과연 그런 것이다. 좋을 때는 아주 좋다. 이 말에 대해선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관계가 긴밀한 만큼 좋음의 고저도 높고 깊은 법이니까.


하지만 모든 이에게 결혼으로 인한 행복도의 평균치가 높아진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좋음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결혼이 더 좋음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좋지 않음에 대해 민감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결혼이 삶의 불안도를 높이게 될 테니까.


그래서 자신의 생활 바운더리가 분명하고, 그 안에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는 결혼을 그다지 권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결혼은 생활을 비롯한 많은 걸 모두 공유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만큼 자기 바운더리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키의 말처럼 별로 좋지 않을 때 그럭저럭 잘 넘어갈 수 있고, 가능하다면 그 순간을 조금씩 발전시켜 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결국 결혼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얼마나 잘 지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금전으로 대표되는 경제적인 것들을 비롯한 나머지 것들은 정말 모두 후순위이고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부부가 서로 관계를 잘 이어 나가면서, 우후죽순 생겨나는 아주 다양한 문제를 나름의 방식대로 잘 헤쳐갈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알아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부부간의 문제가 풀기 어렵다고 해서 서로에게 소홀한 채 각자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일의 효율까지 크게 떨어진다. 마음의 큰 짐을 가지고 무언가를 한다는 건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부부 문제는 얽힌 실타래 같아서 적절한 시기에 풀지 못하면, 어느새 촘촘하게 뒤엉켜 버려서 한 가닥씩 풀어내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알렉산드로스처럼 단칼에 베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지금 만나는 사람과 결혼까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별로 좋지 않을 때 서로의 속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저마다의 비법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으면 참 좋을 듯하다.


그 비법이 언제나 만능인 것은 아니지만, 수풀이 무성한 정글로 떠날 때 꽤 괜찮은 정글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결혼 해요? 하지 마요? 라고 물을 때 이렇게 답하는 편이다.


"좋은 정글도를 하나 준비하세요."


그렇다고 해서 진짜 정글도를 주문해서는 정말 곤란하다.


* 위 포스트는 논객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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