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얘기] 길 밖에서 살아간다는 것

by 타입씨

길을 걷다 문득, 현재로선 어찌할 수 없는 벽을 만나거나, 더는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 꼬리가 긴 점 하나를 찍어둔다.


언젠간 다시 돌아와 걷던 길을 가야지. 이 길은 꽤 소중하기도 했고, 지금도 애착이 남아 있으니까,


라는 지난한 마음을 먹지만, 실제로 돌아가기란 참 쉽지 않다. 그런 게 인생이라면 꽤 잔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재난영화 속 아이아빠처럼 꼭 돌아올게, 라고 새끼손가락을 걸어 잠그지만, 세월에 흐려진 다짐은 새벽 강가의 찬바람이 되어 흩어지는 일이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결코 잊지 않고 끝없이 가까워지려 발버둥을 치는 것도 인생의 일면이 아닐까 싶다.


삶이 참 흐렸던 시절이 있었다. 잿빛이 되다 못해, 이렇게 색채를 잃다간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동안 알던 먹구름은 진정한 먹구름이 아니었다. 내 머리 위에는 성간처럼 새까만 무언가가 드리워 있었다. 소중한 모든 걸 잃은 다음이었다.


멍하게 가만히 있진 않았다. 어쩌면 그럴 수 없었던 것 같다. 너무 답답하고 슬픈 나머지,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잔잔한 수면을 있는 그대로 견뎌내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위기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그동안 속해 있던 길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필요에 의해 이곳을 떠나지만, 언젠간 꼭 다시 돌아올 거란 굳은 마음을 남겨둔 채 말이다.


그렇게 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매일같이 그 길을 떠올리고,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지만, 늘 머리와 가슴에만 고스란히 담아둘 따름이다. 몸을 움직일 용기는 여전히 없다.


길 밖에는 길 밖의 룰이 있었다. 길 밖에서 살아가며 길 밖의 룰을 따르다 보면, 어느덧 나는 길 밖 사람이 되어간다. 길 밖 사람은 문자 그대로 길의 밖에 속한 사람이었다. 더 이상 그 길을 걷던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가능한 한, 그 길에 대해 떠올리고 잊지 않으려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나는 걸 보면,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언젠간 치기 어린 용기를 발판 삼아 몸을 움직이는 날도 올까.


오늘따라 그 길을 걷던 모습이 유난히 짙은 그림자로 남아 넋두리하게 된다. 가끔은 그 길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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