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격동에 놓여 있을 땐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다. 나의 존재를 쉼 없이 추동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여러 진원들 덕택이다. 여우와 고양이를 만난 피노키오처럼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우리는 때로 이런 점을 역이용해서, 스스로에게서 적극적으로 멀어지기 위해 변화의 격동 속으로 거뜬히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굉장히 담대하게, 치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수백 광년 떨어진 별을 탐사하기 위해 냉동인간을 자처하는 우주인처럼. 물론, 그만한 대의명분은 없을지도 모른다. 세간에서는 이러한 탐사를 '회피'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거대한 변화라 할지라도 언젠간 반드시 '적응'이라는 녀석에 의해 갈무리되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우리는 좋든 싫든, 그간 얼려두었던 나와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또 한 번 담대하게, 치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인간이란 정말 나약하고 여린 존재지만, 특정 영역에서는 이토록 지나치게 과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정말 모순적이다.
그렇게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멀리 비행해 왔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한없이 달라진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참 멀리도 날아왔구나, 정말 긴 비행이었어, 라는 탄성이 나지막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날아왔든, 오늘의 나는 끝내 과거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 모양이다. 오늘의 나는 흘러간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일종의 지층이기도 하니까.
흥미로운 건, 도중에 어떠한 퇴적물이 얼마나 큰 열과 압력이 가해졌다고 한들, 그 이전까지의 누적에는 큰 영향을 주기 힘들다는 점이다.
푸르른 수목과 짙은 녹음이 우거진 산에도, 한때 거대한 고래가 살던 바다의 깊은 흔적이 남듯 말이다.
물론, 새로운 별에 도착한 우주인은 새로운 별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씩은 지나간 퇴적층을 지긋이 바라보게 되는 듯하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미처 얼어붙기 전의 소중했던 기억들을 찬찬히 되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참으로 나약하고 여린 존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살아가다 보면 이처럼 문득, 괜스레, 정말 아무것도 없었지만, 꿈과 희망만은 가득했던 순간들을 이따금씩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하루하루,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나이 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