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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dNoTe Mar 15. 2022

다시 찾은 올레길 19코스

제주올레길 19코스 : 조천 - 김녕 올레 (2020.04.19)

제주도에 도착한 17일도 비가 왔는데 이틀 뒤인 오늘도 비가 왔다. 숙소인 '서우봉비치호텔'의 위치가 나쁘지 않아 연박을 신청했고, 호텔 조식을 먹으며 올레길을 걸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올레길 걷기에 지장이 있는 강수량은 아니라 판단하고 11:05분 호텔을 나섰다. 어제 타고 온 201번 버스를 그대로 타고 돌아가 올레길 19코스의 시작점인 '조천만세동산'으로 이동했다.

11:15분에 도착한 조천만세동산.

버스에서 내리자 적지 않은 비가 우리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바람도 생각보다 강하다. 방수가 되는 레인재킷과 트레킹 복장이라곤 하지만 하루 종일 비를 맞게 된다면 방수, 방풍을 버티는 것도 한계가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 역시 방수 처리되어있는 카메라가 아니어서 걱정이 된다. 비가 오는 날인 만큼 전날보다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코스를 시작한다. 다행히 시작점 스탬프는 어제 찍어두었다.


2020.04.19 11:17분 19코스 조천 - 김녕 올레 시작.

2015년(좌)에는 전날 비로 인해 날씨가 흐렸고, 2020년(우)에는 비가 왔다.

'조천만세동산'은 제주 3대 항일운동 중 하나인 '조천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제주 항일운동의 시작점이자 순국선열들의 혼이 녹아있는 곳이라 하겠다.

조천만세운동
제주항일기념관. 코로나19 인해 휴관 중이다. 2015년(좌) 2020년(우)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제주항일기념관'. 2월 26일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임시 휴관 중에 있다. 2015년에는 건물 화장실을 이용했었는데 지금은 임시 휴관이라 개방 중이지 않았다.

포인트마다 적절한 화장실이 필요한 올레꾼들 입장에선 아쉬울 따름이다.

비 오는 날의 진득함. 멋들어진 나무를 보며 감탄한다.
제주올레 길을 이끄는 간세와 리본.

간세와 리본을 따라 조천만세동산과 제주항일기념관을 벗어나면 본격적인 올레길 19코스가 시작된다. 하지만 더욱 강해진 비바람은 다음 포인트인 '관곶'으로 가는 길을 순탄히 만들어 주지 않는다. 비에 젖은 멍멍이와 축축한 돌담, 물이 괴어있는 길을 지나 팔각정에서 한숨 돌리며 연이어진 해안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제주에서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깝다는 관곶에 도착한다. 정작 관곶의 근처에는 가지 않았는지 마땅한 사진은 없다.

관곶으로 가는 길.
관곶을 지나 신흥리 백사장으로...

관곶 주변의 녹슨 자전거와 오래된 쉐보레 차량, 하얀 등대를 뒤로하고 바닷바람에 맞서 부지런히 올레길을 걸어본다. 하지만 비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들고 있는 우산은 점점 춤을 추기 시작한다. 배낭은 등 뒤로, 왼손에는 우산, 오른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비바람에 맞서 사진을 찍다 보니 춤추는 우산이 카메라 프레임 속으로 끊임없이 들어온다. 비바람도 갈수록 강해져 틈틈이 나오는 팔각정과 버스정류장에서 비바람을 피해야 했다.

함덕해수욕장 편의점 창 너머로 서우봉 일부가 보인다.

'신흥리백사장'을 지나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쌓아 둔 '신흥리 방사탑'이 나올 때쯤 카메라 렌즈에 김 서림이 생기기 시작한다. 틈틈이 렌즈를 닦아보지만 소용이 없다. 신흥리 마을로 들어가 다시 바다를 만나면 함덕 어촌계가 나오고 저 멀리 '함덕해수욕장(함덕서우봉해변)'이 보였다. 정주항을 지나면 숙박시설과 편의점이 나오는데 유작가는 편의점에서 우비를 사야겠다고 했다. 좋은 우비로 1개만 사서 혼자 입으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고 싼 우비 2개를 구입했다. 어차피 난 입지도 않을 것이라 다음에 비 오면 입으라 말하고 배낭에 넣었다. 우비를 구입하고 몇 걸음 가지 않아 함덕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잠시 비를 피해 쉬기로 했다.

제주 한정 메뉴를 먹으며 창밖을 보고 있으니 3명의 올레꾼이 비바람을 뚫고 서우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스타벅스의 제주도 지역 한정 메뉴 '제주 청보리 라테', '제주 쑥쑥 라테'를 마시며 비바람이 잦아들기를 바랐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15:30분경 다시 출발하기로 한다. 당시 메모를 보면 고민 끝에 출발했다고 한다. 아마 여기까지 진행하고 내일 이어 시작할지, 아니면 코스 끝까지 진행할지 고민했던 거 같다. 유작가는 편의점에서 구입한 우비를 다시 입고 길을 나섰다.

서우봉지킴이 간판 뒤 주인 없는 개가 굳건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함덕해수욕장과 잔디공원을 지나 걷다 보면 서우봉 입구가 나온다. '서우봉'은 함덕 해수욕장 옆에 봉긋이 솟아 있는 오름으로 살찐 물소가 뭍으로 기어 올라오는 형상이라고 하여 예부터 덕산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중간 팔각정에서 바라본 함덕 해수욕장. 2015년(좌) 2020년(우)

109.4m의 높이를 가지고 있는 서우봉의 오르막길은 거의 콘크리트 외길의 오르막이다.

서우봉 일몰지 서우낙조. 날씨 좋은 날 일몰 시간에 다시 가보고 싶다.

올레길은 서우봉의 정상에 가지 않고 해안 쪽의 오름 둘레를 걸으며 북촌리 방향으로 하산하면 각진 건물의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나온다.

북촌리 해동포구와 작은 마을을 지나면 나오는 너븐숭이 4·3 기념관.

북촌리는 4·3 항쟁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마을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학살과 한날한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무덤을 쌓을 시간도 없었던 제주의 아픈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 기념관 역시 임시 휴관이었다.

서우봉과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뒤로하고 북촌포구를 향해 걷다 보면 다려도(달여도)를 만날 수 있다.

'다려도(달여도)'는 북촌리 앞바다에 떠 있는 무인도로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섬의 모양이 물개를 닮아있다고 하며,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섬이다.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일부 북촌 주민들이 숨기도 했던 섬.

등명대와 북촌포구의 해녀 동상.

민간에서 1915년에 만든 제주 최초의 등대 '등명대(석유등)'를 지나 해녀 동상이 반겨주는 '북촌포구'에 도착했다. 북촌포구를 벗어나 일주 동로를 건너면 비슷한 디자인의 집이 몇 채 나오고 편의점을 하나 볼 수 있다.

올레길 19코스 마지막 편의점?

올레길 19코스 마지막 편의점이라는 입간판을 보며 '정말 마지막 편의점인가?' 의구심을 감추지 못한 채 40여 분 큰 도로와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이고 '동복리마을운동장'이 나온다.

반가운 풍력발전기. 비 오는 운동장은 쓸쓸하고 축축했다.

동복리마을운동장 중간 스탬프는 13.5km 지점으로 코스를 시작한 지 6시간 20여 분 만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지 않았고 비를 비해 자주 쉬었던 것이 원인이다.

19코스 동복리마을운동장 중간 스탬프 간세에서 도장을 찍는다. 2015년(좌) 2020년(우)

17:38분 도장을 찍고 스탬프 간세 옆 정자에서 에너지바를 먹으며 비를 잠시 피한다. 에너지바는 어디서 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우비 살 때 샀던 걸까? 간세 머리가 향하는 곳으로 걸어가면 나타나는 '벌러진 동산'.

풍력발전기를 바로 아래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일 것이다.

벌러진동산은 두 마을로 갈라지는 곳, 혹은 가운데가 벌러진 곳이라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비 맞은 고사리와 나무숲을 지나면 어느덧 풍력발전 단지에 들어와 있다. 렌즈의 김 서림은 더욱 심해져 렌즈를 닦은 직후 찍어도 뿌옇다. 벌러진동산을 빠져나와 걷다 보니 길에 괴어 있는 물 때문에 걷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풍력발전 단지를 지났을 무렵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내린 비는 그대로 괴어있다.

잘 안 보이겠지만 물바다라 할 수 있다. 김 서림은 점점 심해지고 있어 사진을 계속 찍어야 할지 고민된다.

15km 지점을 지나 숲길과 밭길을 걸으며 리본과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김녕리'에 들어오게 된다. 김녕리의 일주 동로를 통과할 때 편의점이 하나 보이는데 이 집이 '진짜 올레 19코스 마지막 편의점이 아닌가?' 생각을 하며 좀 더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뜰팡'.

날개 달린 간세 뜰팡.

제주올레 후원회원들이 '2014년 제주올레 걷기축제'에서 만든 정원. 심장 모양의 날개가 달린 간세는 제주올레 후원회원을 상징한다. 김녕리 마을에 들어서면 얼마 가지 않아 목적지인 '김녕서포구'에 도착한다.

종착지인 김녕 서포구. 2015(좌) 2020(우) 돌담벽의 변화가 보인다.

19:13분 19코스 완주.

스탬프를 찍고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는 사이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버렸다.

버스를 타고 숙소인 서우봉비치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꽤 늦은 시각인 20:00분. 하루 종일 비와 바닷바람을 맞고 다닌 탓에 우리는 몹시 피곤했다. 하지만 샤워를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 근처 셀프 빨래방에서 세탁을 돌렸고, 세탁을 하는 사이 저녁을 먹고 건조기까지 돌린 후에야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호텔 방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23:0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 올레길을 걸어보며 느낀 바는 다음과 같다. 

비를 맞으며 걷기 때문에 주변을 여유롭게 보기 힘든 점. 

비를 피해 혹은 체온이 떨어져 정자나 버스정류장, 카페, 편의점에서 쉬다 보면 코스 시간이 늘어나는 점. 

스탬프를 찍을 때 올레 패스포트가 젖거나, 번지거나 할 수 있다는 점.

하지만 비 오는 날 특유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걸어 다닌 결과 좌우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물집 부위는 씻고 잘 말린 후 소독만 해주었다.


비 오는 날은 되도록 걷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코스 2개째에 물집이라니...


총 길이 : 19.4km

소요시간 : 11:17 ~ 19:13 대략 8시간 소요 (공식 6-7시간) 

난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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