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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kii Mar 31. 2020

직업은 있는데 직장은 없는 나, 비정상인가요?

어느 예능작가의 백수 일지

20대 초반,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덜컥 휴학계를 던지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

20대 후반,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n년차 방송작가.

그리고 2020년 3월 27일. 나는 3주째 집에서 팽팽 노는 백수가 되어있다.


기획부터 함께 한 팀에서 퇴사 통보를 받고 존경하는 선후배 작가님들과 뿔뿔이 흩어진 지가 어느새 3주. (프리랜서다 보니 이런 XXX 같은 경우가 왕왕 있으나 잦지는 않다.) 백수가 된 직후 며칠 동안은 친구들도 만나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자'며 각종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다녔다. 이렇게 된 거 '당분간 여행이라도 다니며 놀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여행은커녕, 하루가 갈수록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이 심각해지는 게 아닌가. 평소 병적인 건강염려증을 가진 나답게 얌전히 집에서 칩거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침 계약 만료로 이사를 앞둔 상황에서 백수가 되었으니ㅡ 빡빡한 스케줄로 도무지 진척이 없던 이사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어서 좋았고, 하루 종일 사랑하는 내 고양이와 살을 부딪히며 팽팽 놀 수 있어서 좋았다. 이사 당일에도 출근 걱정, 재택 업무 걱정 없이 온전히 이사에만 신경을 쓸 수 있다는 점과 이사로 스트레스받은 고양이가 집에 새 적응할 때까지 얼마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나날이었다.


그러던 와중 바로 어젯밤, 그동안 잠잠하던 불안 증세가 조명등 아래를 뒹굴던 내 몸뚱이를 덮쳤다. "작가님들, 일자리가 너무 없네요ㅠㅠ" 내 또래 작가들이 모여있는 익명 오픈 카톡방의 밀린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가던 중이었다. 등어리가 싸했다.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의 씨가 말랐단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99.9%의 확률로 프리랜서로 고용되는 형태이다 보니, 이직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헤드헌팅 업체나 구직 플랫폼 또한 전무하다. 특히 일명 '괜찮은' 자리는 방송작가들의 단체 카톡방, 혹은 개인 대 개인의 소개로 알음알음 이루어지기 때문에 평소에도 워낙 구직이 어렵긴 하다. 그런데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커다란 변수까지 생겼으니... 순간 머리가 아찔했다. 곧바로 주위 친한 작가들에게 메시지로 '나 그만 놀고 돈 벌고 싶음'을 어필하다 못해 대놓고 선포하다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부스스 눈을 떠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본 결론은! 아직 믿는 구석이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자는 것. 여기서 믿는 구석이란...? 업종 종특(?) 상 업무는 3월 초에 모두 끝이 났지만 2월에 일한 바우처가 3월 말일에, 3월에 일한 바우처가 4월 말일에 입금이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아직은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는 것. 퇴직금은커녕, 실업급여 적용도 안 되는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새 직장을 찾아 벌이를 시작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휴식과 여유를 즐기며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를 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부스스 눈을 뜨자마자 나에게 달려오는 고양이들(우리 고앵이+옆 방 고앵이2)을 보고 생각했다. '쉰㉢r는 건... 조은 ㉠┫ⓞF...☆'


아무튼, 백수는 당분간 쉬며 일상글을 연재해보려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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