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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kii Apr 28. 2020

작가를 '쓰게' 만드는 것

첫 기고 한 달 만에 다시 브런치를 찾다.

운 좋게도, 한 번의 시도만에 브런치 작가로서 연재 기회를 얻게 된 나. 그러나 첫 기고 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제서야 겨우 두 번째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부끄럽게도 다름 아닌 '닉네임' 때문이었다.


한 달 전 브런치 계정을 만들던 그 날,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뭔가에 홀렸던 건지. 나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세상 어디에서도 써본 적 없던 'achukong'이라는 단어를 닉네임으로 설정하게 된다ㅡ희미하게나마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아마 우리 고양이 이름인 '어쭈(achu)'와 내 별명 땅콩의 'kong'의 합성어였던 것 같다. 도대체 왜 이게 거기서 튀어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이게 뭔가" 싶었던 나는 뒤늦게 다른 계정을 만들어보려 시도하기도 하고 소개문에 '(닉네임 잘못 설정함 바꿔줘요)'라는 소심한 표현도 추가해봤지만 어떻게 해도 이미 설정한 닉네임은 바꿀 수 없었다. 닉네임 변경은 한 달 후에나 가능하다는 브런치의 정책 때문에!


"그래, 닉네임은 한 달 뒤에 바꾸면 되지."라고 혼자 위안도 해봤지만 언제 한 달이 지나나 싶고, 맘에 안 드는 닉네임 때문에 친구들에게 브런치 홍보를 하기도 싫었다ㅡ그래서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사실은 우리 집 고양이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하하. (+앗, 추가. 하우스 메이트언니도 대충 알고 있다!)


아무튼, 언제 한 달이 지나나 싶었던 마음이 무색하게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오늘 아점으로 어젯밤 만들어 놓은 카레를 데우다가 무심코 '아, 참!' 싶어 확인해보니 어제가 딱 한 달 째였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나는, 그동안 단 한 편의 글도 완성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 번, 소일거리인 웹 예능 자막 아르바이트 업무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한 이유,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든 것은 온전히 '닉네임' 때문만은 아닐 테다. 그동안 일에 질렸던 터라 보상심리로 피우게 되는 게으름 때문일까? 또 사실은 어쩌면 글로 쓸 만한 에피소드가 없어서일까?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책장」이라는 책에서, 시인 김경주가 이런 말을 남긴다.


"…. 내 주변의 많은 작가들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책상에 앉지 않으려고 하지. 일단 앉으면 (꾸역꾸역) 쓰긴 하지만 그전까지 무슨 알리바이이든 만들어보고 여기저기 살에 갖다 붙여서 마감을 피해보려는 심사가 생긴단 말이야. …"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은 뭐가 있을까ㅡ 게으름의 반대인 성실함?


일주일 전에 신점을 보러 다녀왔다. 일명 '방송국 놈들'에게 입소문이 났다는 곳이라 한참 전에 예약해두었던 곳인데, 점을 봐주시는 분이 마스크를 내려 내 얼굴을 확인한 후 가장 먼저 한다는 말이 그거였다.


"ㅇㅇ 씨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네요."


이어서, 방송국 놈들을 자주 상대했던 바이브 때문인지 내가 작가일 줄 알았다는 그는 나에게 "신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예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기를 가지고 있다고 듣긴 했지만 "평소에 꿈을 많이 꾸지 않냐, 촉이 좋지 않냐"는 질문은 가히 소름이 돋을 만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나는 주변의 태몽도 많이 꿨고, 예지몽이라고 불릴 만한 꿈도 많이 꾸는 편이다. 그가 말하길 이 꿈들은  내가 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봐주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시는 거라고. 그분들 덕분에 20대에 단명살이 있는 내가 살아있는 것이니 종교가 있다면 기도를 많이 하라고. 그리고 그는 나에게 "신기를 누르기 위해서는 기도도 많이 해야 하지만 글을 많이 써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글 쓰는 일에 질려 작가가 된 후에는 일기나 다이어리도 쓰지 않는 나인데? 겨우 SNS에 '존맛탱', '존예' 등의 초미니멀 감탄사만 끄적이는 나인데?


어쨌든 점괘야 원래 재미로 보는 것이며, 믿거나 말 거나 라지만 그 날부터 꼭 감사 인사하듯 할아버지, 할머니께 가벼운 마음으로 기도'는' 시작했다. 우리 고앵이의 손과 입을 빌려 "할아버지 할무니 건강하고 행복한 부자 되게 해 주세요"라는 소소한(?) 부탁을 드리기도 한다. 그런데 글은 왜 이렇게 쓰기까지가 힘든지...


오늘은 기도 끝에 덧붙여 볼 계획이다. "계속해서 글을 쓰게 해 주세요." 이렇게라도 어디서 온 지 모를 신기를 꽉꽉 눌러 줘야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남은 20대를 무사히 보내고, 30대엔 꼭 부자가 돼야지.


나에게는 매일 글을 쓰게 하는 성실함은 없을지 몰라도, 대신 '꼭' 글을 쓰게 하는 점괘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닉네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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