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nkii Feb 15. 2021

코로나에 대처하는 구 작가. 현 백수의 자세

집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집순이라서...

이 글은 2020년 3월 27일에 작성한 초안을 2020년 4월 28일 수정 및 기고하는 것임을 미리 알립니다.

+ 오늘은 2021년 2월 15일. 작년의 저는 왜 이 글을 채 마무리 짓지 못하였을까요? 다시 한번 찬찬히 글을 읽어보고, 퇴고하려 합니다. 부디 오늘은 업로드할 수 있기를.


언제부터였을까, 밤에 잠을 잘 못 자게 됐다. 막내작가 시절, 퇴근 후 집에서 남은 업무를 하다 보면 새벽 2시는 기본, 오전 4~5시를 훌쩍 넘어서야 쓰러지듯 잠드는 나날이 이어지곤 했다. 이게 습관이 된 건지. 막내를 벗어난 지 꽤 된 지금까지도 3~4시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겨우겨우 잠들기 일쑤였다.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답사나 촬영 전날에도, '집에 가서 일찍 자고 내일 모이자'는 배려가 무색하게도 나는 차라리 그냥 밤을 꼬박 새우고 출발해 차에서 잠을 자기를 택했다. (사실 '일찍'이란 '아침 일찍'에 더 가깝긴 하다)


그런데 백수가 된 요즘은 못해도 오전 여덟 시 경부터 아홉 시 사이, 알람도 채 울리지 않은 시간에 눈을 뜬다. 이런 생활이 가능해진 이유는 첫째, '야근'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애초에 정해진 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데다 집으로 퇴근 후에도 구성안이라던지, 자막이라던지, 각종 리스트업이라던지, 각종 업무는 물론 하다못해 출연자와의 전화 통화까지. 직장을 잃은 후 가장 큰 소득은 '야(夜)근'도 함께 잃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규칙적인 일과가 생겼다는 것. 정해진 일과대로 하루를 알차게 보내다 보면 날이 어둑어둑해짐과 동시에 새록새록 잠이 찾아온다.  그 옛날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러셨을까? 이쯤에서 내 하루 일과를 공유해보려 한다.


먼저 아침. 눈을 뜸과 동시에 그동안 '배려놓은' 몸을 위하여 아침 영양제를 털어먹는다. 나의 작고 소중한 고양이가 인기척을 듣고 달려 나오면 고양이를 위한 밥과 물을 세팅한다.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제 엉덩이를 두들겨라, 머리를 쓰다듬어라 하는 고앵이 주인님의 시중을 들며...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요즘 하루 첫 일과는 영어공부. 대학교 때 필수 교양으로 원어민 수업을 들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혼자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직장을 잃고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진 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급격히 늘었는데 이 시간을 온전히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일에 할애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ㅡ정말 거짓말처럼 눈 뜨고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누워서, 엎드려서, 앉아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다. 이 시간이 아까울뿐더러 눈 건강,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것이 여실히 느껴져 의식적으로 줄이기로 결심했다. 그 시간을 때울 '킬링 콘텐츠' 중 하나가 영어공부다. 하루에 다섯 과를 박살내고, 혼자지만 그 날 배운 내용들을 테스트하는 시간까지 거친 후 나의 영어시간은 종료된다. 

(+2021/2/15 추가: 한 2주 하다 말았다)


그리고 나서의 일과는 아점 챙겨 먹기. 일하는 동안 아침은 사치, 점심과 저녁은 플라스틱 범벅의 배달음식을 뱃속으로 때려 넣기 때문에 백수 기간에는 건강하게 챙겨 먹으려 부단히 노력을 하곤 한다. 특히 요즘은 단순히 끼니를 챙기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놀이에 가깝게 즐기고 있달까? '요.알.못'이지만 감자와 배추를 잔뜩 썰어 넣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두부에 달걀물을 입혀 지져내고, 곰피 미역을 불려 미리 만들어둔 참치 쌈장과 함께 담아낸다. 특별히 기분이 좋은 날엔 양지육수에 고기만두와 김치 만두가 모두 들어간 부르주아 떡만둣국을 끓이기도 한다. 요리가 완성되면 맘에 드는 그릇에 예쁘게 담아 플레이팅 후 사진을 찍어 SNS에 '나의 요리 실력이 이 정도'임을 자랑하기. 그 후 좋아하는 방송을 보며 미식하는 것까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영혼까지 든든한 기분이다. 넘치는 에너지를 집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2021/2/15 오늘은 배민 VIP 쿠폰을 적용해 허니콤보를 시켜먹었다)


인생의 소중한 젊은 날을 더 이상 사치하듯 낭비하기는 싫다. 이 글을 어디에 기고할 것도, 판매할 것도 아니지만 하루의 치부를 기록하듯 계속해서 적어나가보려 한다. 2020년 한 해 나의 목표는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 이러다 보면 어떻게든 그렇게 살게 되겠지. 코로나만 아니면 한강에 나가서 한 바퀴 뛰고나 오고 싶다. 전에 없이 유난히 햇살과 초록이 그리운 날들이다.


+ 2020/4/28 추가

그리고 오늘은 저 날로부터 한달 하고 하루 후인 4월 28일이다. 브런치 작가의 서랍(임시저장함) 안에 담긴 이 글을 읽으며 '그래, 나 정말 열심히 살았지'하고 회상에 잠긴다. 2주 남짓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다.


수면 시간은 다시 4시로 늦춰졌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부부의 세계', 그리고 여러 유튜브 계정들에 빠졌기 때문이다. 밤만 되면 왜 이렇게 보고 싶은 게, 그리고 먹고 싶은 게 많아지는지. 미식을 즐기며 나만의 작은 상영회를 즐겨댄 통에 덕분에 잠잠했던 역류성 식도염이 다시 도졌다. 다행히 엊그제부터 야식은 끊기로 셀프 결심한 상태.

(+2021/2/15 그랬구나...)


영어 공부는 자체 방학 중인데, 어느새 방학 3주 차에 접어들었다. 방학 숙제도 없는 꿀 방학... 원래 방학 계획은 일주일이었으나, 아마 점점 더 길어질 듯하다.


아점 챙겨 먹기는 점간(점심+간식) 챙겨 먹기로 밀려난 지 오래다. 새벽 4시가 넘어서 겨우 잠들면, 오후 두 시에서 세시 정도나 돼야 겨우 일어나므로... 그 시간에 점심 겸 간식을 간단하게 챙겨 먹고, 저녁이 되면 또 저녁을 먹는 돼지런한 일상이다.


역대 메뉴는 양배추 덮밥, 마 버터 볶음, 톳 두부무침, 연어 베이글, 카레 등이고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배달 음식과 인스턴트 음식도 종종 먹고 있다. 특히 백X에서 나온 감자전 믹스와 직접 담근 파김치(!)의 조합이 가히 훌륭했고, 명예의 전당 메뉴는 페리카나 반반 치킨이었다. 달걀을 삶아 인스턴트 냉면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생산적인 하루'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지.,, 부끄럽지만 어렸을 적부터 집안일을 돕는 살가운 딸은 아니었는데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매일 집에서 얌전히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방은 얼마나 자주 더러워지는지. 방이 엉망이라서 그런지 몸도 자꾸 늘어지게 된다. 


그뿐인가, 요리를 한번 하고 나면 몇 개의 설거지거리가 나오는지. 


29년 평생을 집순이로 살아왔는데, 집에서 잘 지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집이 답답하니 밖에 나가고 싶은데 또 코로나는 무지 무서워서 어제는 우편함 다녀오는 길에 마주친 no 마스크 차림의 옆집 아주머니 앞에서 마스크 위를 소매로 덮으며 경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죄송하긴 하지만 모두를 위해 마스크를 하고 다녀주세요...) 


앞으로 세상은 BC와 AC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한다. Befor Corona와 After Corona, 코로나가 세상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나도 나지만 한 번도 동기들 얼굴을 못 봤다는 20학번 새내기들과, 밖에서 맘껏 뛰어놀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짠하다. 정말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집에서 딸기청을 만들까 말까'하는 고민보다는 '친구를 꼬셔 딸기축제에 다녀올까 말까'를 고민하고 싶다. '오늘은 집에서 뭘 하지'보다 '오늘은 집에 가서 뭘 하지'를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에 익숙하지 못해서, 집 생활에 익숙하지 못해서. 백수는 힘들다...


+2021/2/15

이 요망한 코로나. 해를 넘긴 지금까지 활개를 치고 다닐 줄이야. 말은 저렇게 해도 K-방역의 힘으로 금방 물리칠 수 있을 줄 알았다. 저 시기의 백수 기간을 짧게 마무리짓고 새 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할 때, 팀원들 모두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코로나가 좀 사그라들면..."을 입에 달고 살았더랬지. 하지만 눈치 없는 코로나 놈은 날이 갈수록 활개를 쳤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새로운 백수 시즌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전성기 활동 중이다. 이제는 마스크가 아주 그냥 내 얼굴의 일부 같다. 안경 쓰는 걸 까먹어도 마스크 쓰는 걸 까먹는 날은 없을 정도로...그나마 백신의 개발로 최소한 다음 백수 시즌부터는 조금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보는 중이다. 온갖 부작용을 다 감수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내 차례가 온다면 기꺼이 맞으리라. (만약에) 변이로 인해 한달에 한번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두 팔과 두 다리, 엉덩이 양쪽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엄청 아파서 실신할 지경이라도 해도 맞겠다. 제발 내년엔 마스크 없는 No스크 세상이 오기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코로나 최전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온 세상 복 다 받으세요. 

작가의 이전글 작가를 '쓰게' 만드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