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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04. 2021

한 번에 하나가 주는 여유

영화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 리뷰

 이촌향도 현상은 이제 옛 말이 되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3년 3만 명이었던 귀촌 인구는 4만 5천 명을 웃돌며 무려 37%나 증가했다. 그중 4분의 1은 단순히 전원생활 등을 목적으로 농촌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아닌 현지에서 농사를 직접 지으며 사는 귀농 인구다. 최근에는 귀농뿐 아니라 귀어도 생겨나는 추세다. 그러나 마음먹는다고 누구나 귀촌할 수 있는 있는 것도 아닌 것이 현실. 모리 준이치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은 귀농생활의 고즈넉함과 약간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본 토호쿠 산간 지방에 위치한 작은 마을 코모리에 이치코(하시모토 아이)가 살고 있다. 도시 생활을 떠나 다시 고향인 코모리 마을로 돌아온 이치코는 집에 머물며 직접 농작물을 기르고 식재료를 수확하고 요리를 하며 하루하루 식사를 채워나간다. 요리 하나에 이야기 하나. 삶의 지혜와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이치코의 요리에는 그녀의 정성 어린 자급자족 생활이 향기롭게 배어 나온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과 봄을 맞이하는 이치코. 가을 받았던 낯선 편지의 주인공인 어머니의 이야기와 도시에서의 삶까지. 귀농을 마주하는 이치코의 마음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귀농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역시 젊은 이들의 귀농 증가를 겪고 있는 중.. '아베노믹스 정책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겠다'는 일본 정부의 야심찬 계획과 달리 젊은이들은 벌써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듯하다. 경제 성장을 외치는 정부 속에서 나타나는 낯선 풍경. 더욱이 농촌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한창 일 할 나이의 젊은이들이기에 일본에서는 이를 기현상으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의 농촌 문제 전문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젊은이들의 '지방 회귀'"라고 진단하는데. 무엇이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향하게 만들었을까?
<리틀 포레스트>의 이치코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농촌의 삶은 바쁘다. 코모리 마을의 남자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아낙네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들은 거기에 육아까지 담당하고 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삶 속에서는 한 번에 하나의 일을 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삶의 여유가 생겨난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내야 하는 도시의 사람들과 달리 조금 더 느리고 그래서 더 할 일이 많더라도 마음 한 켠에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도시인들이 잃어버린 여유를 코모리 사람들은 누구보다 바쁜 삶 속에서 간직하고 있었다.

이뿐 아니라 <삼시세끼>, <윤식당>, <맛있는 녀석들>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먹거리 열풍을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카모메 식당>, <고독한 미식가>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일본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것. <리틀 포레스트>는 ‘사는 것’과 ‘먹는 것’, 이 두 가지 트렌드를 모두 겸비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존재다. 특히 지난 3월 개봉한 <해피해피 와이너리> 역시 전원생활과 먹거리를 함께 담아 스크린 위에 펼쳐 놓았었는데. 와인 양조를 위한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던 <해피해피 와이너리>와 달리 <리틀 포레서트>는 든든한 세 끼 식사를 소개하며 온 가족이 함께 보고 실천하기에도 좋은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요리 하나에 곁들여진 가장 좋은 재료는 이치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리틀 포레스트 1: 여름과 가을> 마지막에 날아온 엄마의 편지에 대한 의문을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에서 조금씩 풀어나가며 엄마에게 쌓여 있던 오해와 미움들이 서서히 풀려가는 모습은 요리와 시간 이 두 가지가 어우러져 이루어낸 치유다. 엄마를 이해하고 코모리 마을에서의 삶에 익숙해지는 이치코. 이제 그녀의 곁에는 키코와 유우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한다. 더 이상 같이 있어도 혼자인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 코모리 마을의 시계는 다른 어느 곳보다 느리게 흘러가지만 그만큼 삶을 조금 더 오랫동안 풍족하게 채워줄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준다.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킨포크’는 이제 ‘킨포크 라이프’로 굳혀져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톱니바퀴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천천히 살아가는 소박한 삶. 그 소중함을 알게 된 사람들은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물론 TV를 통해 보게 되는 연예인의 귀농 생활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 법.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을 통해 미리 느껴보자. 결심과 실천은 그 후에도 늦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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