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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03. 2021

상처난 자리는 사랑으로 아문다

영화 <디판> 리뷰

2015년 9월 2일 아침,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 사람들을 울렸다. 터키 남서부 물라주 보드룸의 해안가, 파도에 밀려 모습을 드러낸 건 3살 배기 어린아이의 싸늘한 주검.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 에일란 쿠르디의 죽음은 세계가 손을 놓고 있던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올해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유럽으로 몰리고 있는 난민은 70만 명을 넘어섰다. 유럽은 난민 수용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난민 문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디판>이 난민 이슈를 둘러싼 문제들을 예민하게 다룬다.
 
스리랑카 내전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시바다산(제수타산 안토니타산)은 프랑스에 망명하기로 결정한다. ‘디판’이라는 남자의 신분증을 산 그는 프랑스 시민권을 얻기 위해 생전 본 적도 없는 여자 알리니(칼리스와리 스리니바산)와 소녀 일라얄(클로딘 비나시탐비)을 가족으로 만든다. 프랑스 외곽의 아파트 촌에 도착한 그들. 새로운 삶을 꿈꾸며 디판과 알리니는 돈을 벌고 일라얄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갱들에 의해 관리받는 무법지대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전 중인 스리랑카만큼이나 불안정한 일상이 그들을 옥죄어 온다.
 

지옥과 같은 스리랑카를 떠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한 망명. 그러나 난민 이주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그들이 버린 고국과 다름없는 지옥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외곽의 아파트 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언어도 다르고 돈도 없는 난민들에게 도시의 삶은 한낱 백일몽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난민 이주 문제가 수용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결국 그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지옥을 선사하는 꼴. 게다가 이주한 곳에서 받는 차별 역시 난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외부적인 문제뿐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도 안고 있는 디판과 그의 가족. 시민권을 받기 위해 결합한 세 사람은 서로에게 완전한 타인일 뿐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제대로 모른 채 그저 이익을 취하려 모인 그들에게 아빠나 엄마, 딸과 같은 단어들은 낯설기만 하다. 일라얄은 제 편 하나 없는 학교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디판과 알리니는 그런 그녀를 다그치기만 하고 디판은 알리니를 일터로 내몰며 제 몫을 하라고 소리친다. 그저 이해타산적인 이유 위에 쌓은 관계는 금방이라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디판>의 주인공 디판은 이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이는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주인공에 주는 결핍의 특징이다. <예언자>의 말리크나 <러스트 앤 본>의 알리가 그러했듯 영화 속 주인공들은 무언가 결여된 상태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닥뜨리게 된다. 결핍으로부터 오는 문제들은 주인공들을 벼랑에 내몰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힘 역시 주인공의 내면에 존재한다. 또다시 전쟁과 같은 삶을 이어나가는 디판. 갱들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게 되는 원동력은 가족을 지키려 하는 그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어설픈 가족 놀이를 시작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세 사람.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힘겨운 삶 속에서 의지할 곳이 서로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아픔을 보듬으며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총소리가 난무하고 갱들의 위협이 판치는 아파트 촌에서 오롯이 서로에게 기대 또 다른 형태에 가족이 되어 가는 디판, 알리니, 그리고 일리얄. <디판>의 현실은 그들에게 냉담하지만 마침내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현실을 이겨낼 사랑이라는 힘을 찾았고, 이제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려는 그들의 발걸음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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