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녀와 야수>(2014) 리뷰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수많은 공주님들의 이야기. 만화 영화 제작사 디즈니는 디즈니 프린세스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여자아이들에게 공주님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바닷속에서 노래하는 인어공주나 마녀의 저주에 빠진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독 사과를 먹고 쓰러진 백설공주나 귀족의 딸이었던 신데렐라까지. 온통 공주뿐인 동화 틈에서 유일하게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난 용기 있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벨, 엉뚱한 발명가 아버지 밑에서 아름답고 현명하게 자라난 그녀의 이야기 <미녀와 야수>(1991). 어린이들을 위해 각색된 사랑스러운 벨과 무섭게 생겼지만 다정한 야수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원작에 충실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크리스토프 갱스 감독의 <미녀와 야수>(2014)는 디즈니와 그 기본이 되는 원작을 뛰어넘어 가장 ‘미녀와 야수’ 이야기의 원형과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디즈니 <미녀와 야수>가 원작으로 하고 있는 건 18세기 프랑스 소설가 잔 마리 르 프랭스 드 보몽의 <미녀와 야수>. 동화 <미녀와 야수>는 그녀가 영국의 [어린이 매거진]에 기고한 동화 중 하나로 사람들에게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원작의 축약본에 불과하다. 진짜 소설의 원작은 18세기 여류작가 마담 드 빌뇌브의 [젊은 미국 여인과 해양 이야기]로 우리가 알고 있는 <미녀와 야수>는 이 소설의 1부 격에 해당한다. 빌뇌브 부인이 에로스와 프시케의 신화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탄생시킨 이 신비로운 로맨스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유한 상인의 여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소녀 벨(레아 세이두 분). 욕심 많은 다른 형제자매들과 달리 순수한 마음을 가진 벨은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앙드레 뒤솔리에 분)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가져다줄 것을 부탁한다. 집에 돌아오던 중 위험에 처한 아버지는 야수(뱅상 카셀 분)의 도움을 받고 막내 벨을 내어주기로 약속하는데. 만류하는 가족들 틈에서 용감하게 약속을 지키러 떠나는 벨. 마법에 걸려 야수가 되어버린 왕자와 벨, 그리고 성의 보물들을 노리는 욕심 많은 인간들이 빚어내는 이야기, <미녀와 야수>. 마법에 빠져버린 한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에 사랑의 힘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만들었다.
이미 장 콕토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던 <미녀와 야수>(1946). 크리스토프 갱스 감독은 아마 이미 널리 알려진 원작들과 수많은 각색들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터였다. 원작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혹은 장 콕토 감독의 영화와 다르게 본인의 스타일로 재해석된 <미녀와 야수>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를 가미한 감독. 그렇게 해서 두 지점에서 그는 눈에 띄게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냈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에서 식기들 및 가구들로 변한 사람들을 등장시킨 것과 달리 원작은 좀 더 모든 것이 마법으로 이루어진다. 장 콕토 감독은 팔과 손만을 은밀하게 드러내며 신비로움을 더 했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각색한 지점은 왕자가 야수로 변한 이유를 설정한 것. 원작 동화나 소설에서 왕자는 못된 마녀의 저주에 걸려 야수로 변했다. 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 장 콕토 감독의 영화에서는 마법을 믿지 않는 부모님 때문에 왕자가 야수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크리스토프 갱스 감독이 더한 건 바로 왕자 본인의 과오. 사냥 도중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한 왕자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지나치게 사냥에 욕심을 낸 나머지 금빛 사슴의 형상을 한 그녀를 못 알아본 채 화살로 쏘게 된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야수가 되는 벌을 받는다. 다른 그 어떤 원작보다도 이야기의 흐름 자체나 표현에 조금 더 마법 같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려고 한 감독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광대한 스크린 위에서 그려진 영화는 화려한 영상미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음악의 조화로 위압감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만 더 발달한 CG 기술과 색감을 의식한 탓일까 영화는 지나친 CG 사용으로 눈을 다소 피로하게 한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신비로운 화면과 이야기를 의도한 것과 달리 마음씨는 착하지만 고집 센 소녀로 그려지는 벨과 평면적인 주변인들의 밋밋한 모습은 기대에 못 미쳤다.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던 가슴 뛰는 이야기들의 매력을 잃은 듯한 영화. 원작이 주는 부담감이 만들어낸 가슴 아픈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아름다운 미모의 레아 세이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듯한 배경 표현이 아직 남아 있는 영화 <미녀와 야수>. 조금 더 기대를 낮추고 본다면 새로운 <미녀와 야수>를 만나는 데 어색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