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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14. 2021

한 끗이 아쉬운 가족과 SF의 만남

영화 <로봇, 소리> 리뷰

인터넷에선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각국 드라마의 특징이라는 제목의 이 게시물은 내용은 이렇다. 미국 드라마의 경우 병원에서 환자를 고치고 법정에서 재판을 한다. 일본 드라마의 경우 병원에서 교훈을 주고 법정에서도 교훈을 준다. 한국 드라마의 경우는? 병원에서도 법정에서도 연애를 한다. 농담 삼아하는 이야기 속에 뼈가 있다. 한국 영화도 그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주제가 남녀 간의 연애에서 가족 간의 사랑으로 바뀐다.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한국 영화 속에는 꼭 가족 이야기가 들어있다. 아쉬운 건 그렇게 좋은 가족 이야기가 그저 다른 장르 속에 장치로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이호재 감독의 <로봇, 소리>(2016)는 달랐다. SF와 판타지를 넘나들지만 대담히 내놓은 주제는 가족의 사랑이다.
 
물론 가족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크게 두 줄기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한다. 가족 그리고 로봇. 줄거리는 간단하다.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한 로봇을 이용해 자기 딸을 찾는다는 게 이야기의 핵심이다. 아버지 해관(이성민 분)은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아버지 상이다. 딸 유주(채수빈 분)를 사랑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관계가 서먹해지고 아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그런 아버지가 돼 버린다. 하는 행동과 속 마음이 다른 아버지의 모습은 한국 사회 내에서 많은 미디어들을 통해 재생산되었다.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아버지가 그랬고 영화에선 <국제시장>(2014)이 그 이미지를 굳히는 데 한 몫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지만 정작 자식들과의 관계를 서먹한 그런 아버지. 미디어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위축된 가장으로 그리며 항상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에 비해 면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신적으로 믿음으로 이어지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소통의 단절을 나타낸다. 이는 유주를 찾으며 만나는 유주의 지인들을 통해 유주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유주의 친구, 남자 친구, 심지어 유주의 엄마이자 해관의 아내인 현숙(전혜진 )까지 유주의 꿈을 알았지만 오직 해관 혼자 유주의 꿈을 알지도 못했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유주의 꿈을 무시하고 오로지  생각만을 이야기했다. 특히 영화 시작에 몽타주 기법으로 이어지는 유주의 성장과정은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어린 딸이 없어질까 전전긍긍하던 해관은 유주가 커갈수록 엇갈리고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해관은 10  딸을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유주는 그에게서 멀어져 있던 것이다.
 
영화는 해관의 모습을 통해 잘못된 아버지의 사랑 표현법을 지적한다.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고집하지 않고 조금  유주에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유주가 실종될 일은 없었을 텐데. 이에 대해 영화 속에서 아내 현숙이 이야기한다. 자식들은 우리 소유가 아니라고. 우리의 사랑 방식이 되려 자식에게는 구속이   있다고 말이다. 아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간단한 진실을 해관은 몇 날 며칠을 친구 구철(김해원 ) 로봇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깨닫는다.

가족으로 뻗어나간 이야기 줄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로봇으로 뻗어져 나간 줄기다. 해관은 유주를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외딴섬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로봇(심은경 목소리 ) 만난다. 미군이 비밀리에 만든 위성에 장착되어 있던 도청 로봇은 사고로 대한민국 바다에 추락한다. ‘그녀를 찾아야 한다라는 사명 아래 로봇 스스로 위성을 추락시킨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번째로 행한 자의적 행위였다. 이후 미국에선 인공지능 로봇을 만든 박사와 요원을 파견해 중요한 정보를 가진 로봇을 되찾으려 하고 한국에선 국정원 직원 진호(이희준 ) 항공우주 연구소 직원 지연(이하늬 )  일에 투입된다. 그리고 해관이 애타게 로봇과 함께 딸을 찾는 동안 이들 역시 로봇을 찾아 추적한다.
 
인공지능 로봇은 해관과 함께 지내며 감정을 갖게 된다. 그저 임무를 수행하던 로봇의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인간과 같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줄기를 모두 잡으려는  무리였는지 딸을 찾는 이야기가 로봇을 찾는 이야기와 엉성하게 만나 다소 황당한 결말로 치달아 버렸다. 로봇을 딸을 찾아 헤매는 해관이 진정으로 딸을 이해하고  잘못된 사랑 방식을 깨닫는  과정의 수단으로만 남기기 싫었던 걸까. 차라리  줄기를 포기하고 집중했으면 조금  완결성 있는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 지점이다. 결국 영화 끝에 남는  해관과 로봇이 보여주는 알콩달콩한 관계뿐. 심지어 해관은 로봇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목이 <로봇, 소리>. 다소 빈약한 결말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알차게 담은 영화 <로봇, 소리>. 가족과 함께  영화를 고민하고 있다면 주저 없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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