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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ul 04. 2021

10년의 여행을 갈무리하는 완벽한 방법

영화 <트립 투 그리스> 리뷰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장편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10년 동안 겪은 모험과 귀향 과정을 다룬다. 트로이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오디세우스는 전쟁이 일어났던 아소스를 떠나 고향인 이타카로 향하기까지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간다. 그리고 여기 공교롭게도 10년 간의 여행을 막 마치려는 두 사람이 있다. 영국의 인텔리전트 듀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트립 투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10년 동안 이어져 온 시리즈를 이제 <트립 투 그리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영국 유명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옵저버’ 매거진의 제안으로 그리스 여행을 떠난다. 터키 아소스부터 그리스 아테네, 이타카로 이어지는 여행은 [오디세이] 속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지중해와 미슐랭 레스토랑에서의 환상적인 만찬을 배경으로 두 사람은 인생과 예술, 사랑에 대한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여행의 즐거움도 잠시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연결되는 현실 세계는 두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신화와 영웅 그리고 현실이 얽힌 여행에서 두 사람은 오디세우스처럼 귀향을 준비한다.


201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트립 투 이탈리아>가 첫 선을 보인 후 전 시리즈가 극장 개봉을 하며 ‘영국판 알쓸신잡’이라는 애칭과 함께 씨네필들의 사랑을 받아온 '트립' 시리즈가 마지막 여행으로 돌아왔다. 기존 시리즈와 동일하게 대본 없이 진행된 촬영에서 두 배우가 자유롭게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본인 역을 맡은 두 사람은 중년 남자의 고뇌부터 예술, 인생에 대한 진솔한 대화로 현실감을 살린다. 빈틈없는 수다에 때때로 유머와 익살스러운 성대모사가 끼어들며 극에 웃음과 활력을 더한다. 특히 10년 간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의 관록과 여유로움이 '트립' 시리즈와 함께 성장한 캐릭터의 내외면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물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 건 즉흥적인 대사를 영화의 흐름에 맞게 편집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노련한 연출력이다. 더불어 실제로  운영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현지 상황에 녹아든 두 사람의 모습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를 거침없이 무너뜨린다. 이처럼 관객이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경험이 '트립' 시리즈의 매력이기도 하다.  

[오디세이]를 따라 떠난 그리스 여행이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국적인 풍경과 최고급 레스토랑을 보며 도시에 깃든 신화와 영웅들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에도 늘 현실이 스티브와 롭 곁에 바짝 붙어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전하고, 롭의 아내는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타카를 찾는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담담히 여행의 끝을 맞이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고향으로 복귀한 오디세우스처럼 10년 간 이어진 모험을 마친 두 사람은 이제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 현실과 마주하며 삶을 이어간다. 이렇게 <트립 투 그리스>는 피날레를 장식하며 멋들어지게 마무리하며 '트립' 시리즈의 끝을 알린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며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점점 높아졌다. 그러나 하늘길이 막힌 지금은 해외여행을 계획하기 쉽지 않다. 백신이 나온 것도 잠시 변이 바이러스의 위협이 각 나라의 빗장문을 꽁꽁 잠그는 중이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 곁을 찾아온 <트립 투 그리스>는 스크린 너머로 그리스의 눈부신 풍경을 보여주는 동시에 맛과 향이 느껴질 것만 같은 미식 체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앞선 시리즈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즐길 수 있는 친절함은 덤이다. 아니 오히려 '트립' 시리즈 전체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이 선사하는 현대판 [오디세이], <트립 투 그리스>가 극장을 찾은 모두에게 선사할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 경험을 꼭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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