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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5. 2021

폭발하는 감정이 선율을 따라 흐를 때

영화 <아네트> 리뷰

“나 자신이 달라지고 변화했을 때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말이다. 22살에 첫 장편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를 선보이며 천재 반열에 오른 그는 단 6편의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인들을 사로잡았다. 독보적인 연출로 자신만의 영화 문법을 만든 프랑스의 거장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칭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 아티스트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베일에 싸인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홀리 모터스>(2012) 이후 9년 만에 신작 <아네트>(2021)를 발표했다. 영화는 본인의 말을 입증하듯 완전히 색다른 언어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예술가들의 도시 LA,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와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이 첫눈에 반하며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다. ‘죽여주는’ 코미디 공연을 하는 헨리와 죽음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안은 다르면서도 같은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다. 두 스타의 만남에 세상이 주목하고, 둘 사이에서 사랑스러운 딸 아네트가 태어난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승승장구하는 안과 달리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헨리는 점점 불안정해지며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위기를 느낀 안은 헨리의 회복을 위해 크루즈 여행을 선택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더 큰 비극이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음악가를 꿈꿨다고 밝힌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아네트>를 통해 뮤지컬 영화에 도전했다. 처음으로 외부의 제안을 먼저 받아 만들어진 영화는 기존의 작업들과 출발점이 다르다. 오로지 음악 때문에 시작했기 때문이다. 20살 때부터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바람이 글램 락 밴드 스파크스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 개성적인 작곡으로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스파크스는 감정에 따라 요동치는 섬세한 멜로디로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일종의 눈으로 보는 음악인 셈이다.

<아네트>는 모든 대사를 노래로 대체하는 뮤지컬 양식을 철저히 따르는 동시에 두 사람의 딸 아네트를 인형으로 표현하는 퍼펫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다. 이렇게 익숙한 장치들로 이루어진 현란한 무대도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지휘를 따르자 낯설게 다가온다. 이렇게 음악과 연출을 통해 극대화된 연극적 체험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완전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물론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고와 비극적 운명이 뒤엉킨 혼돈 속에서 익숙한 상징과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 기존의 영화 언어를 뒤엎으며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면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은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노련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제부터 침묵해 주십시오. 숨 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내레이션과 함께 막이 오르며 <아네트>의 문이 열린다. 선율을 따라 흐르는 서사에 눈과 귀를 맡겨야 온전히 영화를 느낄 수 있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은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장소가 꼭 극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의 의도를 잘 파악하기 위해 막이 내리기 전 영화관을 방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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