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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May 30. 2024

의도치 않은 휴식처!

빌라바에서의 저녁

지금 느끼는 아쉬움이지만 내가 스페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갔으면 얼마나 많은 것을 더 즐기고 느꼈을 수 있었을까?


생각도 개념도 삶의 방식도 다른 그 나라 땅을 관통하며 뜨거운 태양과 함께 나는 그들에게 녹아들었다.

팜플로나라는 큰 대도시 전의 의도치 않은 작은 마을 빌라바는 나에게 앞으로의 길의 초석을 다지고 옷매무새를 다 잡는 휴식 같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9월 23일  팜플로나 출발전 쓴 메모


빌라바에서의 휴식

2023년 9월 22일 빌라바


숙소에는 수비리 가는 새벽길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 줬던 캐나다 노부부가 처음 보였다.

두 분은 카미노길의 피로를 풀기 위해 남편분께서 부인분의 발 마사지를 하고 계셨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새벽 일찍 보통 길을 떠나 점심즈음 숙소에 도착해서 일찍 휴식을 취하는 게 보통이다.


나는 숙소에 얼굴을 익힌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괜스레 안심이 되었다.

나는 수비리 가는 길에 있었던 식중독 이야기 썰을 그분들에게 풀어놨다. 종알 종알 떠드는 나의 이야기를 그분들은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며 듣고 계셨다.


순례자들은 몸이 피곤하고 고되지만

이미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분들은 길이 험하고 힘들어서 일부 구간을 버스를 타고 이동하실 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빌라바 이후에 이 노부부를 마주친 적이 없다.


남녀공용 대형 도미토리 공간을 지나 맨 구석에 위치한 여성 전용 도미토리로 이동했다.

사실 숙소 천장이 뚫려 있어서 방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십 유로밖에 안 하는 저렴한 숙소 가격과 벽이 갖춰져 있어 구분돼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게 있었다.

내 방에는 스웨덴 할머니가 내 옆침대를 사용했고, 뒤늦게 제일 늦은 시간에 들어온 포르투갈 순례자 이렇게 세 명이 한방을 함께 사용했다.


들어올 때 두 번째로 본 사람들은 남아공 부자였다.

론세스바예스에서 보고 두 번째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론세스에서도 그랬지만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도 이분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대화가 쉼 없었다는 게 신기했다.

잠잘 때 코골이가 심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이긴 했지만 그것 빼고 나에게 무례하다거나 다수의 순례자들에게 예의 없이 굴지는 않았기 때문에 크게 나와 부딪힐 일은 없었다.

단지 목소리가 크고 두 분의 코골이가 심하다는 정도이다. 게다가 나에게 늘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나는 짐을 풀자마자 꿉꿉하게 땀에 젖은 몸을 씻어내고 싶었다.

먹은 것도 없는 상태이니 기운이 없이 기진 맥진했다.

속을 다 비우고 걷는다는 게 장단점이 있는데 몸을 비운만큼 한 가지 목표에만 더 집중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오롯이 도착 지점에 간다는 것이 명료했다.

속 시끄러운 고민과 골치들 트라우마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천장이 뚫린 구조의 공용 샤워실에 들어가니 버튼식으로 다행히 뜨거운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간의 고생을 날려버리듯 샤워를 마치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장을 보러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는 꽤 그럴듯한 주방이 있어서 뭐라도 사다 먹어야겠다 싶었다.



산페드로 성축일 축제 준비중


길로 가는 통로에 그래피티 풍경


순례자 통신으로 들은 소식으로는 무슨 성인 기념일이라더니 마을 광장에는 무대가 설치되고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아이들이 운율에 맞춰 흥에 겨워 있었다.

그런데 비가 쏟아진다.


프랑스 마을 형식만 익숙하던 유럽 생활에 국경을 넘어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양식들과 붉은색 스페인 국기

정말 이 영화와는 관계없긴 하지만 “케빈에 대하여”에 나오는. 토마토 축제나 황소 축제 때 보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마을은 아직 축제 전이었기 때문에 한산하게 평온했다.


일상적으로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과 하굣길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지나는 아이들 모습 속에 내가 포함되어 한 폭의 풍경이 되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아졌다.


슈퍼마켓 위치
마트 구경
영수증과 레몬 생강차 티백


Dia 마트 구경


카르프같은 현지 대형 마트 Dia Supermarkado가 있어서 마트에 들어가 마트 구경을 했다.

여행 다닐 때 제일 재밌는 것은 시장 구경이다.

나라의 특성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부분이니까 말이다. 프랑스에 갔을 때 입구서부터 진열된 갓 구운 빵과 버터가 이 나라가 얼마나 빵에 진심인지 알 수 있게 했었다.


스페인의 큰 마트 첫 입성!!!

마트 입구부터 전 자동 오렌지주스 기계가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하~~~~~~~~~~몽, 하몽 하몽(스페인 전통 방식 햄)

올리브 올리브

토마토 순으로 내 눈에 보였다.


예를 들자면 한국에 반찬코너에 있는 김치 코너위치에 하몽이 있고 올리브나 피클류의 저장용품들이 젓갈이나 반찬코너 가득 매웠다.

프랑스에서는 못 봤던 빠에야용 육수와 쌀 코너가 인상적이었다.

항상 느끼지만 각 나라의 이야기는 시장에 가득하다


하지만 마트 특유의 신선 냉장고 냉기와 음식 냄새를 맡자마자 다시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이 식도가 꽉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별수 없이 간식은 바나나 한 개를 집어 들고 아주 조그만 코너에 있는 일본 컵 라멘과 티 코너에 가서 생강 레몬차를 발견하고는 양이 좀 많긴 했지만 라멘 국물이라도 먹을 심산으로 계산대로 몸을 돌렸다.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많은데 먹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주방에는 이미 남아공 부자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않자 술을 마시고 얼굴이 시뻘게져서

더 우렁찬 목소리로 머리를 빡빡 민 헬창 영국인 순례자와 영양소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걸을 때 아몬드를 먹으면서 걸으면 좋아요.

그런데 이에 끼고 방귀가 나올 수 있다는 둥

시답잖은 이야기들이었다.


순례자들은 항상 카미노 관련 정보에 온 정신이 집중돼 있으니 말이다.


나는 떠드는 틈 사이로 옆에 조용히 앉아 물을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리며 컵라면 뚜껑을 열어 수프를 털어 넣었다.


나에게 술을 권했지만 나는 속이 안 좋아서 지금 뭘 먹을 수가 없어서, 일단 라멘 국물이라도 먹으려고 한다고 했다.


난들 함께 앉아서 즐기고 싶지 않았겠냐고!


뜨거운 물을 붓고 라멘을 입에 대 봤는데 종잇짝 씹듯이 밀가루면이 목구멍에서 넘어가질 않는다.


어제부터 계속 죽이나 수프 같은 게 당기는데..


도무지 소량으로 파는 수프를 찾을 수가 없으니 난감한 상황이지 뭐…라고 생각했다.


이 나라는 수프라는 건 한 컵 안에 먹을 수 있게 한다는 걸 생각을 안 하는 듯 거의 대용량만 보여서 시도를 못해보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국물만 마시고는 바로 면은 아깝지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곤 레몬 생강차를 우려서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함께 있던 스웨덴 할머니는 내가 통 뭘 먹질 못해 하는 걸 보고 안타까워했다.


다들 침대로 돌아가고 나와 내방 메이트 스웨덴 할머니 순례자만 남아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늦은 저녁 시간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생장에서부터 스치듯이 만났던 약간은 내성적이고 수줍은 소년 같던 이탈리아 청년 루이스가 조용히 주방으로 들어왔다.


와! 근데 이 작은 주방에서 그가 사 온 식재료는 저녁 한 끼를 정말 제대로 요리를 해 먹으려는 걸 보고 스웨덴 할머니와 나는 호기심에 눈이 반짝였다.

수다쟁이에 목소리가 큰 아저씨들의 관심보다는 수줍은 청년의 화려한 요리가 뭔가 더 호기심 당기지 않는가?


무려 새우와 쌀, 시금치를 가지고 볶음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이 올라왔다.

그건 아마 스웨덴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요리 마법사 루이스!


우리는 그에게 어떤 요리를 하고 있는지 질문을 건넸고 이 특별한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며 그날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제야 밝게 웃으며 그는 본인은 이탈리아 사람이고 영어를 잘 못한다고 밝혔다.

마른 체형의 진한 검은 눈썹과 턱수염의 강한 인상 때문인지 말 걸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밝게 웃으니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우리에게 음식을 권했고, 나는 속이 좋지 않아 먹을 수 없다고 헀지만 계속 권해서 밥과 새우를 한입 떠서 먹어봤다. 신기하게도 밥이 넘어갔다.


역시 이탈리안들이 음식에는
진심인 것이 사실이다.


며칠간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었는데 그날 이후 식중독 증상이 점차 없어지다 못해 늘 달고 사는 속 쓰림과 위장병 증상도 싹 사라져 버렸다.

그는 가벼운 선행을 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통증을 낮게 해 준 귀인 같았달까?


그는 종아리 통증 때문에 빨리 걷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사진도 전달해야 해서 서로 왓츠앱으로 연락처를 등록했다.

아직 길 초입이지만 각자의 문제를 앉고 여전히 우리는 걸어 나가고 있다.

루이스는 종아리 나는 식중독 문제로 길 초반 의도치 않게 도착한 빌라바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을 길에서 만났다는 것이 기뻤다.


원래 힘들 때 만난 인연은 잊히지 않는 법이니까.

그렇게 고단했지만 예기치 못한 하루가 지나갔다.


밤늦은 시간 방에 포르투갈 순례자 한 명이 들어왔다.

이름은 리타.

이 친구가 재밌었던 것은 산티아고에서 생장까지 길을 역으로 걷고 있었다.


9시 즈음되는 시간이 되면 다들 알베르게에선 자연스럽게 소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공 부자와 헬창 영국인 그리고 머리를 빡빡 민 여자분은 대화를 끊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머무는 숙소인 만큼 그 장소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방식도 가지 각색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잠을 자야 하니 조금 조용해달라 부탁을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빌라바에서 팜플로나까지 숙소 거리 지도 거리와 닌자앱의 거리 차이 비교



2023년 9월 23일 8시

나는 아침 7시에 기상을 해서 아침 생강차를

마시고 너무 많은 양의 생강차티백의 반 정도를 알베르게에 기부했다.

8시쯤 되니 숙소에는 거의 모두가 나가고 몇 명밖에 남아있지 않아 고요함이 느껴졌다.

다 빠져나가고 나만 남아서 좋아했는데 호스트가 체크아웃 시간이라며 이제 길을 떠날 시간이라며 작별을 고했다.


조용해진 숙소를 둘러보고 방명록에 우연히 만난 숙소의 고마움과 반가움을 남겼다.


팜플로나까지는 4킬로대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기 때문에 나는 일찍 도착해 공립 알베르게에 묶기로 결정을 한 후 길을 나섰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스페인의 시골길을 걷다 진짜 대도시 입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부터 열심히 걷는 순례자들이 거의 팜플로나 근방 빌라바까지 와 있었고,

성곽과 공원을 지날 때는 말 체험을 하는 순례 관광객도 만나볼 수 있었다.


브엔 카미노 앱 자료
캐빈에 대하여


팜플로나는 황소 축제로 유명한 중세 느낌이 물씬 나는 도시이다.

나는 이 도시 성곽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좁디좁은 골목들을 보며 진격의 거인이 떠올랐다.


진격의 거인의 실제 모티브가 된 도시는 독일의 “뇌르틀링겐”이라고 들었지만 기본 요새의 형태와 성당을 중심으로 물방울 퍼지는 도로 모습들 그리고 성곽을 둘러 쌓인 길을 따라 “프랑스 정문” 으로 들어가는 루트까지 꼭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요새 속에 폭 쌓인 팜플로나 안에 “캐빈에 대하여 “

에서 틸다 스웬튼이 토마토 축제를 참여하는

자유로움과 쏟아지듯 뿜어내듯 열정의 토마토의 붉은빛이 생각났다.


나는 연신 카메라를 찍어 댔다.


숙소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아직 체크인 시간까지는 여유로웠지만 오늘 뭔가 축제를 시작하려고 하는지 늘 아침이 늦은 스페인에서

팜플로나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해 보였다.

성당을 찾아 구글 지도 맵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아는 척을 한다.


올라!


피레네에서 함께 산딸기를 따먹던 콜롬비아 분이었다.

나는 수녀머리띠를 하고 계셔서 수녀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수녀가 아니었다.

역시나 영어는 한마디도 못한다.


Albergue municipal de Jesus y maria
알베르게 옆 빠에야 만들기중


우리는 숙소 앞에 11시쯤 도착해서 1등과 2등으로 도착했다. 그다음 3등과 4등으로 고프로를 들고 유투버처럼 말을 하고 있던 브라질 아저씨와 캐나다 순례자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이름은 페드로와 캐시이다.


이 브라질 아저씨 친화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콜롬비아 순례자와 나에게 동시 통역사를 자처하셨다.

그때까지 캐나다 여성분 캐시는 말수가 많지는 않았었다.


브라질 순례자 페드로가 말하길 9월 21일 내가 수비리를 가던 날 이들은 피레네를 오르며 태풍을 만나 악천후를 뚫고 함께 산을 넘으면서 둘도 없는 동료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말이다.


나 역시 그날 수비리 가는 고행담을 서로 이야기하며 체크인을 기다리며 우리들 뒤로 마침 팜플로나를 도착한 순례자들이 길게 체크인 대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성축일 축제가 그렇게 큰 축제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옆집 사람들 같은데 12명 정도는 거뜬히 앉을 수 있는 대형 탁자를 야외로 가지고 내려와 가족들과 테이블을 세팅을 하고 거대한 빠에야 냄비에 빠에야를 요리를 준비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스페인 사람들 정말 노는데 진심이다.


빨리 체크인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뭔지 모를 이 들뜬 분위기에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과 걷기에서 온 피로가 동시에 밀려왔다.


오늘은 뭔가 꼭 제대로 먹게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굳은 흐린 날씨와 식중독으로 고생한 초반 길 이후 팜플로나란 도시의 기운이 뭔가 느낌이 좋은 것 같다.

캐나다 순례자 캐시와 브라질 순례자 패드로는 앞으로의 나의 산티아고 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Vamos!(바모스; 출발)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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