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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May 16. 2024

혹독한 신고식

수비리로 가는 길

삶의 고통은 필연적이다.

삶의 시련은 고통스럽지만 시련을

극복한 이들에게 힘을 준다.

듄(프랭크 허버츠)






2023년 9월 20일 론세스바예스 숙소


숙소로 돌아왔을 때 내 윗 침대를 쓰는 한국인 순례자와 다른 순례자분과 둘이서 숙소 예약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됐다. 갑자기 나는 수비리에 숙소를 잡아놓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 수비리의 숙소를 검색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수비리는 작은 마을이라 웬만한 숙소는 다 예약이 마감이 된 상태였다.


마침 내가 한 곳을 찾은 숙소는 왜인지 숙소 카드 결제가 외국인 버전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지금이야 당연히 숙소가 없으면 다른 곳을 찾으면 되겠지 하면서 훌훌 털어버리고 다른 곳을 찾거나 공립 알베르게에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 기합이 바짝 들어간 나에게 예약이 다 찾다는 소식은 ‘노숙 확정’이라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과다하게 마신 카페인처럼 최고조로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 동안 안 보이던 불안 증세가 나타났다.


작은 세상에서 내 룰에 맞춰 살던 나에게 아직까지 유동적인 유연성 부족했다.

나는 아직 내 틀을 깨지 못했던 것이다.


밤새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남아공 부자의 이중주 코 고는 소리를 듣자 더 잠이 오질 않았다.

많이 뒤척이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서 잠을 못 잘까 봐 몸을 움츠리고 계속 핸드폰으로 숙소를 연신 검색했다.

욱신거리는 근육통과 긴장성 불안증세가 불을 지피면서 나는 몸과 마음이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20km를 걸으면 어떤 결과를 불러 잃으킬지 모른 채 예약을 못한 것에만 꽂혀서 뜬 눈으로 날 밤을 새웠다.


예약 문의 메일



내가 한 선택 중 잘 대응했던 건 모바일 결제가 안 되는 호스텔에 메일로 예약결제가 안된다는 예약 구두 메일을 보내놨다는 것이다.

가끔가다 그런 경우가 있으니 전화나 메일, 왓츠앱으로 꼭 예약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론세스바예스>수비리까지


2023년 9월 21일 새벽 4시 30분


나는 부스럭 거리며 제일 일등으로 갈 준비를 하는

한국인들을 따라 눈을 비비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직 한 참 컴컴한 어둠이 아침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새들 조차도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화장실로 가서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이 큰 론세스바예스 숙소에 화장실 문을 여닫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일찍 준비를 하는 윗침대 한국인 순례자와 짐을 싸서 6시 즈음 숙소를 빠져나왔다.

새벽 밤길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동이 트기 전까지 그 한국인 순례자분과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분은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와서 원래 하던 전공을 변경해서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딜 가나 진로는 항상 고민거리다.


한국인의 걷기 성향은 마치 뒤에서 누가 따라올 듯이 빠르게 걷는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함께 걸을 때는 그분의 걸음이 빠르다고 느끼질 못했다.

아직 새벽잠이 덜 깬 상태로 계속 걷기 시작했다.

나는 커피가 필요했고, 잠이 빨리 깨야 할 텐데 어둠 속에서 렌턴불빛과 목소리에 의지해 길을 걸어 나갔다.


한국인 순례자의 걸음은 너무 빨랐다.

나는 내 템포에 맞출 생각을 못하고 자연스럽게 상대방 스탭에 맞추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갔던 것 같다.


처음으로 나타난 산길 입구에서 순간 발을 헛디디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무거운 가방 때문인지 내 몸인데도 마음대로 다뤄지지가 않았다.


뒤에서 걷던 캐나다 노부부가 넘어지는 순간 붙잡아 줘서 크게 다치진 않았다.

비탈길 초입이었고, 삼 킬로 정도 걸은 시점이었는데 아마도 작은 순례자들 쉼터 같은 게 있었다.

가방 무게와 지팡이로 인해 앞이 아니라 옆으로 넘어져서 완충 작용을 해줬던 것 같다.


나는 한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오늘 하루 일어날 전조의 경고를 무시한 채 창피함만 올라와서 벌떡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함께 걷던 한국분은 자기가 발이 빨라서 먼저 갈 수도 있다고 말을 했다. 그분 역시 내 템포를 맞추기 위해 느리게 걷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템포가 빠르시면 먼저 가도 된다 말했다.


나는 넘어지는 순간 이 길을 걷는 것도 이걸로 끝인가 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발목과 무릎보호대를 차고 갔었고, 발목까지 올라온 트레킹화를 신은 게 신의 한 수였단 생각이 들었다.

발목이 살짝 꺾일뻔했었기 때문에 만약 심하게 꺾였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갑자기 나타나 나를 함께 일으켜 세워준 캐나다 노부부 분들과 한국인 순례자는 어느새 길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크고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쳤다.

나는 악명 높다는 피레네 보다도 이 수비리를 가는 길이 더 나를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밤새 잠을 설치고 넘어져서

쓸린 살이 아픈지도 모르고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처음 만난 음식점



동이 트고 마주친 작은 마을 카페에 들어가 바나나와 아메리카노 토르티야를 주문했다.

테라스에 배낭을 던져두고는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처럼 진열된 맛있는 음식들이 순례자들을 반겨주었다.

든든하게 먹어야 아침길도 힘 받아 잘 갈 수 있다.

나는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오른쪽 발목 상태를 체크했다.


길을 걷기 전부터 스페인에선 꼭 토르티야를 먹어야 한다는 추천을 매번 받았었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내내 이 집의 또르띠야가 나의 유럽여행 내내 처음이자 마지막 또르띠야가 되었다.


감자와 진한 계란, 버터향, 치즈의 풍미까지 나는 묵직한 치즈케이크 모양의 또르띠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저렴한 가격에 배도 채울 수 있어서 맛과 풍미를 음미할 수 있었다.

아침길에 넘어지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무사히 이른 점심을 먹고 길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생각했다.


비가 오다 말다 하는 꾸물꾸물한 날씨가 해도 뜨질 않아서 기온이 떨어지는 듯했다. 고어텍스 자크를 올려 입었다.


생장에서 피레네는 환영식 같이 해가 쨍하던 파티가 끝이 나고 진짜 길을 걷는 것을 축하한다 말하는 것 같았달까?


Welcome to real Santiago French way!


마을을 벗어나 다시 나타난 산길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내내 중간마다 지친 순례자들이 미끄러운 빗길에 빗물에 젖은 바위를 신경 쓰지 않고 앉아서 쉬어야만 했다.


길 중반부 즈음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면서 피로감이 밀려왔다.

나는 방수 커버를 배낭에 씌우고는 다시 길을 걸을 준비를 했다.


먹었던 또르띠야 때문인지 아침에 차게 타서 가져간 냉커피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복합적인 문제였던 것 같다.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정로환을 꺼내 먹고 걷다 서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정말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미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뿐만 아니라 근처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식중독 증세를 일으킨 순례자들이

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식중독을 쌩으로 버틴 것이다.


집에서부터 생장을 거쳐 피레네까지 오랜 시간 참았는데 피레네를 넘으며 내 긴장이 풀려버렸던 것 같다.

예약을 못해 불안했던 불면은 전초 증상이었고 다리가 풀린 건 번아웃 증세였던 걸 나는 내 상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내가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걸으면서 차 멀미 하듯이 울렁거렸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길가 옆 구석으로 가방을 벗어던지고는 순례자들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토를 하기 시작했다.

한 번하면 시원할 줄 알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머리가 핑 돌고 식은땀이 났다.

일단은 산 중이었기에 숙소까지 가야 했다.


본격적으로 내리는 비가 더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움직여야 체온유지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나마 있던 정신줄을 배낭끈을 부여잡고는 한 발씩 집중하며 걷기 시작했다.


생장에서 만났던 벨기에 순례자 세이야와 노아가 함께 지나갔다.

나의 안색을 살피며 응원을 해주었다.


세이야는 나에게 늘 응원을 해주는 순례자 친구이다.

이미 오래전에 알던 사람처럼 나에게 늘 말을 건넨다.


넌 강한 사람이야.

이 고비를 잘 견뎌 낼 거야.

넌 해 낼 거야.


세이야는 마치 내가 이 고비를 반드시 겪어서 뚫고 나가야 할 사람처럼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평생 육지에서만 살던 사람이 처음으로 바다에 나가 통통배를 탄 사람처럼 흔들 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한발 한 발을 중심을 잡아 나가는 듯했다. 그야말로 나 홀로 망망대해에 표류 중인 초짜 항해사의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정말 힘나고 고마운 말인데,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지나치는 순례자들 마다 내 안색을 보고는 괜찮은지 묻고는 길을 떠났다.


나는 정말 산티아고를 걸어가면 유토피아를 찾을 거란 기록을 가지고 찾아 걸어가는 고장 난 “

아이 로봇영화”의 로봇들 같이 무거운 배낭을 들쳐 매고 비를 맞으며 발걸음을 떼었다.


정말 수차례 가방을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산티아고 역시 나에게 도피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계속 올라오는 내용물을 숲 속 구석진 곳에 뱉어 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살아 나가야 한다.

수비리까지만 버티자!

그래 너는 갈 수 있다.

피레네도 넘은 사람이다.

너는 넘어선다.


나는 계속 속으로 나를 밀어붙였다.




듄, 폴이 두려움과 맞이하는 장면


듄, 레이디 제시카의 기도문


두려워 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고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하여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난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있으리라.




정말 어떻게 설명이 안되는데 절박한 상태였다.

느닷없이 생장 크레덴셜 여권 사무소에서 실비와 함께 줄을 섰던 데비 아줌마가 나타났다.


나에게 괜찮냐며 안부를 묻고 가벼운 비쥬를 했다.

나는 데비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렸다.


뭔가 문제가 생겼어요..


토할 것 같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나는 구석으로 달려가 가방을 벗을 새도 없이 다시 속에 있는 것을 게워 냈다.


하아…


비를 계속 맞으니 점점 추워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먼저 가셔도 된다 말했지만 옆에서 탈수증세를 막기 위해 물과 사탕을 챙겨주며 발을 맞춰 주셨다.

산티아고 길에서 누군가 발을 맞춘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가?


나는 한국에서도 힘든 일을 겪고 친했던 지인에게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몇몇은 자신들의 짐에 내짐까지 얹어지는 부담감에 먼저 길을 가버리곤 했었다.


우리가 서로 아는 거라곤 산티아고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순례자라는 타이틀뿐인데 십 킬로그램의 가방을 들쳐 매고

나까지 부축하며 도움을 주는 순례자들의 선행에 나는 조금씩 그간 사람에게 닫혔던 마음이 열리는 듯했다.


인간에게 희망은 있다.


정말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숙소를 도착할 때까지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락처조차 등록하지 못하고 데비와 헤어졌다.

그 이후 길에서 데비를 마주치질 못해 감사 인사도 전달을 못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어려움을 겪는 순례자가 있다면 내가 꼭 가는 길을 도울 것이라 다짐했다.


ALBERGUE EL PALO DE AVELLANO


체크인 전 12시쯤 겨우 숙소에 도착해 반쯤 문 앞에 배낭에 기대 누워서 거의 반 좀비 상태로 문을 부여잡고 체크인 시간까지 숙소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데비는 나를 숙소 앞에 데려다주고는 예약을 해놓은 숙소로 사라졌다.


일어나서 서있을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혹시 예약을 했냐고 호스트가 한시가 되자 물어봤고, 선착순 줄을 섰던 사람들에겐 예약이 꽉 차서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다행인 건 내가 메일을 보냈었다고 하니 그러면

나까지 들어오라고 해서 나는 따뜻한 실내로 들어왔다.

나는 태풍이 심한 바다에 나갔다 정박한 배에서 내리듯이 프런트 데스크에 서서 체크인을 하려다가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마지막으로 속을 비웠다.


영화 듄 1에서 모래폭풍을 만났을 때 오히려 폭풍의 눈 속으러 들어가 비행기 시동을 끄고 폭풍 후에 몸을 맞기는 장면이 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이 오히려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

가만히 때를 기다려야 한다.


문제점을 직시하고 관통해 나간다.


 나의 길에서 나 역시 수비리로 가는 척박한 빗길을 걸으며 첫 번째 고비를 맞이했다.


폴이 마신 생명의 물, 매트릭스의 네오가 먹은 빨간약을 선택하고 속세의 모든 것을 비워낸 후 새로운 눈을 떴듯이 나 역시 수비리로 가는 길에서 속세에서 받았던 모든 것을 비워 냈다.


 나는 수비리까지 가는 길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길을 걷는 과정이 하나의 비움의 시간이었고 정면으로 나를 맞닥뜨리는 시간이었다.

다른 순례자들의 이야기나 구글지도를 살펴보면 계곡을 건너고 다리를 건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수비리까지 22km를 다 걸어왔다는 것은 정말 두려움을 넘어 정신과 육체가 승리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나 자신한테 놀라는 중이었다.

평상시였다면 못했을 길을 나는 아빠와 순례자의 수호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걸을 수 있었다고 표현했다.


걷기 전부터 습관처럼 한국에서 격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다 비워 내고 싶다 말했었다.

이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이런 방법으로 비워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트릭스의 빨간약
듄의 생명의 물


국경을 넘어 스페인땅에 도착해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순례길은 수백 년 이어온 순례자들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수비리 길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잃어 난다.

심지어 심장발작 혹은 빗길 미끄러짐 사고로 넘어져 턱도 깨지고 무릎도 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길 초입에서 우리 모두 순례길을 걸어 나가겠다는 목적의식 하나로 정신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듄에서 주인공 폴 아트레이더스 (어린아이)가 “폴 무앗딥 우슬”(진정한 리더)이 되었듯이 나 역시 상실의 상처와 트라우마로 가득 찬 지친 영혼이 진정한 내 삶의 주인공이자 지금 이 순간 순례길을 걷고 있는

진정한 “순례자” 로 거듭나고 있었다.





나는 이날 이후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질 못했지만 먹기 시작한 시점부터 뭘 먹어도 멀정할 정도로 완벽하게 산티아고 길을 적응했다.


수비리를 넘어선 오늘은 일찍 휴식을 취한 후 약국에 가서 약을 사 와야겠다.

나는 도착 후 식은땀과 비로 젖은 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 내고는 침대에 몸을 늬웠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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