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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May 09. 2024

피레네에서 지팡이 찾기

나만의 걷기 방식을 찾아서!




드디어 도착한 정상!


땀 흘려 걸어온 보람이 있을 정도로 웅장한 풍경과 어우러져 모두 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앉아 있었다.


나는 새벽 여섯 시에 출발해서 밤늦게 도착하지 않기 위해 발바닥이 불이 낳게 걷고 있었다.

그들은 숙소에서 부지런히 준비하는 한국 사람들과 다르게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빵을 먹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나서 해가 뜬 후 올라온 같은 숙소의 유럽 순례자들이 내 뒤에 나타났다.

심지어 그들은 땀도 안 흘린 듯 몸이 가벼워 보였다.


나에게 쿠키를 하나 건네고 유유히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하고는 긴 다리를 뻗어 내 앞을 추월해 나갔다.

뭔지 모를 한국인 특유의 경쟁심이 일으켜져 빨리 걷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다.

하지만 이미 10km를 직접 체험하고 나니 그런 경쟁심 따위는 피레네에서 첫 번째로 버려야 할 덕목 중 하나였다.


이 길은 경주가 아니다.


나에게 잘 맞는 걷기란 뭘까?


우선 유럽피언과 동양인의 체형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여자의 경우 165 이상의 평균 키와 발도 손도 다 나보다 훨씬 크고 힘도 좋다.

남자의 경우는 더 넘사벽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 기본이 180 이상이고 고개를 한참 올려야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나의 경우 등산이라곤 집 앞에서 걷는 게 다였고,

운동은 그나마 산티아고를 준비하기 위해 준비한 1개월이 다인 것에 비해 유럽피언에게 걷기 달리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숨 걸고 뛰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일상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나는 전망대에 도착해 벤치에 작은 몸을 유러피언들 사이에 상체를 눕혀서 하늘을 바라봤다.

이럴땐 작은 몸이 유리하다.


집체만 한 구름들이 두둥실 떠다녔다.


“날이 좋아 다행이야. “







지금부터 시작되는 내리막길은 친절하게 내리막길이라 말하고 그냥 “낭떠러지”정도의 비탈길이라 말해야 할 것 같다.

다들 자원 봉사자들이 말한 대로 오른쪽! 오른쪽!으로 가야 해 하고 말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읔~!!!!! 내 도가니가 쑤셔온다.


비탈길은 뾰족 뾰족하게 각지게 깎인 바윗길이었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바로 순례길에선 아웃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탈진 길을 우리는 지그재그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빨리 지팡이를 찾아야겠다.


오르막 풍경과 다르게 내리막부터는 나무숲들이 나타나서 지팡이를 찾기 딱 좋은 위치였다.

해리 포터가 첫 마법 지팡이를 찾았듯이 나 역시 여기 피레네에서 내 지팡이를 찾아야겠다 다짐했다.


내리막을 지나 나타난 숲길은 마치 벽돌을 두드리고 나타난 마법상점가 “다이애건 앨리”처럼 비밀스러웠다.

나무 그늘과 시냇물이 흘러서 오르막을 오를 때와는 또 다른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마법지팡이 전문가 올리밴더선생님의 지팡이 지론에 따른 심오하면서도 진지하게 지팡이를 성심성의껏 산을 내려오며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의 선택으로 산티아고 800km를 함께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리밴더 씨에게 배울 수 있는 5가지 사실을 나만의 스타일로 각색해 보았다<<<<

1. 걸으며 눈에 띄는 지팡이를 골라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내려가는 내내 지팡이 탐색에 한참 시간을 소비했다.
누군가에겐 그저 나뭇가지에 불과하지만 각자의 눈에만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2. 중심 재료가 중요하다.
나무가 너무 물을 먹었거나, 말라서 충격에 약하면 안 된다.
단단하면서도 가볍고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딛고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한다.

3. 모양
잡았을 때 손잡이 부분이 내 손에 착 감길 정도의 굵기여야 한다.

4. 길이
살짝 옆구리 정도의 길이여야 잡고 일어나 수 있다.

5. 느낌
지팡이를 쥐었을 때 너무 까끌거리거나 가시가 있거나 벌레가 나오면 안되며, 땀이 적당이 스며 들어도 될만큼 흡수력이 강하고 이것이 내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올리밴더씨에게 배우는 5가지 지혜





나는 길을 내려오는 내내 오르막을 오를 때와는 다르게 나의 지팡이를 고르는 작업을 돕기라도 하듯이 사방이 고요했다.

아마도 다들 빠르게 속도를 내며 내려가서 오늘 함께 걸었던 순례자들 대부분은 숙소에 도착했을지 모르겠다.


각자의 지팡이만큼이나 걷는 스타일도 다 달랐다.

그때는 못 느끼고 있었지만 나의 걸음이 빠른편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보면서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발 걷고 사진 찍고 구경하고 먹고 즐기며 오감을 만족하느라 내리막은 오르막 보다도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나는 한참을 수풀을 빠르게 스캔해서 내게 맞을 법한 지팡이를 찾아 나갔다.


내 키와 작은 손사이즈에 맞는 적당한 크기와 길이의 스틱을 두 개 찾았다.


내 오른손에 들린 지팡이는 다시 만난 콜롬비아 순례자에게 주었고, 늘 내 왼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는 “아티스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는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끝마치고 한국까지 올 수 있게 됐다.


왜 오른손에 쥔걸 주었냐면 나는 왼손잡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에서 마법사들이 평생 쓸 지팡이를 고르듯이 나도 피레네에서 나의 지팡이 “아티스틱”을 정성스럽게 찾았다.

스틱 이름은 아티스트+스틱의 합성어로 줄여서

“아티스틱”이라 만들어 주고 나니 애정이 더 생기는 듯했다.


지팡이는 나와 함께 걷는 역할외에도 의외의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매일 나에게 날씨를 알려주고 때로는 빨래 걸이, 때로는 어깨에 팔을 걸치는 용도로도 쓰였다.


날씨를 알려준다는 게 의아할 수 있지만 매일 쥐고 걷다 보니 손잡이 부분의 촉감이 비 오는 날에는 촉촉해지고 건조한 날에는 바짝 말라 있는 식이었다.


몇 번 잃어버릴뻔한 경험은 있지만 그때마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지팡이를 챙겨 왔다.

심지어 누군가 가져가려는 걸 순례자들이 제지해서 나에게 다시 돌아온 적도 있었다.

한 번도 버릴 생각 없이 함께 길을 걸어 나갔다.


확실히 지팡이를 디디며 걸으니 무릎에 충격이 덜하고 걸음이 더 빨라졌다.


중간에 나타난 시냇물이 더위를 식혀 주는 것 같았다.


물과 풀이 많다는 것은 숨을 곳도 많다는 이야기다.


약간 산길을 벗어나 수풀을 지팡이로 해치며 비밀의 정원 같은 곳이 나타났다.

그런데 사람 생각이 다 비슷한가 보다 비밀 스폿이란 게 눈에 안 보이고 조용한 것이 화장실로 딱이라 생각했는데, 바닥에 휴지가 나둥그러져 있었다.

나는 시냇가 소리를 들으며 볼일을 가볍게 보고는 길을 내려갔다.




론세스바예스 순례자 숙소


거의 꼴찌 무리에 섞여 4시가 다돼서야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나는 파리에서 미리 예약을 해놔서 다행이었다.

알베르게 체크인 앞에서 신발과 가방을 벗어 던지고는 체크인 내역을 적어나갔다.

론세스바예스 자원봉사자는 예약이름을 확인해주었다.


 삼층 가장 첫 번째 칸 일층 자리를 배정받았다.

이층침대에는 생장에서도 한 숙소를 썼던 한국인 여자순례자 맞은편에는 남아공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 순례자 이렇게 배정되었다.


생장에서와 다른 점이라면 고비 한 개를 넘었으니 본격적으로 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

그전에 배가 고프다 신호를 보낸다.


샤워를 마치고 뒷마당 지하로 내려가 빨래를 너는데 노아가 나타났다.

그는 벌써 도착해 쉬고 있었다.

빨래를 널며 그에게 숙소 배정을 어디로 받았냐 내가 물으니 예약을 안 한 사람은 지하에 배정받는다고 한다.

뭐 예약을 안 해도 방법이 다 있구나 역시!

하지만 퀄리티 차이는 좀 나는 거 같긴 하다.


빨래를 너는 뒷마당에는 핏볼(맹급류견종) 순례견과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가 캠핑을 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있었다.

사나운지 하루종일 마스크를 입에 차고 걷는 걸 봤는데 강아지에게도 쉽지 않은길이다.


나는 체크인과 동시에 고민 없이 저녁식사를 신청했다.

저녁식사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근처 성당과 레스토랑을 구경하러 숙소를 빠져나갔다.

요가를 하는 순례자, 책읽는 순례자 등등 빨래를 널거나 각자 스타일 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숙소는 터널 중간에 성당과 호텔이 따로 있었는데 호텔 아래 마련된 순례자 저녁을 먹는 장소를 못 찾아서

자원봉사자분들에게 도움을 받아 레스토랑으로 갔다.

성당도 바로 구경할 수 있는 정도로 작은 마을이라 한눈에 마을 구경을 했다.



저녁 예약으로 먹은 순례자메뉴와 안나


레스토랑 입구에는 관광객들이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고 있다.

순례자 쿠폰을 종업원에게 건네자, 안쪽으로 안내를 했는데 자리가 이미 꽉 차 있었다.

나는 실내 룸 말고 바 Bar 쪽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를 받아 자리애 앉았고, 혼자 온 순레자들과 자연스럽게 자리 배정이 됐다.


순례자 메뉴!!!!! 처음 먹어본다. 설렌다.

앞으로 질리게 먹겠지만 오늘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먹는 순례자들은 평생 못 잊을 것이다.


내 옆에 않은 미국인 순례자 테리, 내 앞자리에 앉은 네덜란드 순례자 안나, 그리고 프랑스 순례자 아저씨

이중에 “안나”는 길 목에서 우연히 의도치 않게 비슷한 발걸음으로 자주 마주치고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며 산티아고 까지 나에게 인생 선배이자, 친구 그리고 동료로서 평생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안나는 그림 작가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그림 포트폴리오를 보여준 첫인상이 떠오른다.

그녀는 네널란드서부터 여기 프렌치 로드까지 이미 걸어온 상태였다.


안나의 첫인상이 특히 예술인들이 그렇지만 쉽게 첫인상이 빠르게 친해지는 인상은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더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 주소와 왓츠앱 연락처를 주고받고는 서로 연락하자며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재밌는 직업을 가졌었는데 미국인 순례자 테리의 경우 여행작가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프랑스 아저씨는 음악 활동을 하신다고 했었다.


나는 허기를 빠르게 채우기 위해 파스타> 닭고기> 후식으로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나는 한국에서는 평상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아닌지라 이때까지만 해도 술을 많이 마시질 못했었다.

와인을 한잔을 다 못 마시고 밥 먹으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해가 다 떨어졌다.


처음 만난 사람들임에도 우리는 같은 산티아고 주제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내일 우리는 또 길을 가야 하는 사람들인지라 각자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더 실감이 났다.


46,584보를 인간이 걸을 수 있는 숫자였구나.

그것도 저절체력인 내가 핸드폰에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놀라울 뿐이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산티아고행 소식을 보고는 연락이 안 되던 지인들의 응원 메시지가 많이 날아왔다.

언젠가 본인들도 이 길을 꼭 걷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누구나 걸을 수 있다 누구나 올 수 있다.


지상보다 높은 피레네의 고도만큼이나 누군가의 희망사항 역시 땅에서 하는 이야기로 메아리치듯이 하늘 위로 날아가 연소되 버렸다.


지금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이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이다.


10kg에 달하는 배낭을 메고 산을 넘어  26km를 완주를 하다니!!!!!

이 뿌듯함은 정말 체험해보지 않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최근에 트레킹명소 소개 하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데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촬영을 해도 영상이 십 분의 일도 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이틀 차가 되자 발에서 불이 났다.

발바닥이 불이 나도록 걷는다는 표현이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진심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처럼 말이다.

적잖이 내 발은 이 상황이 많이 놀란 듯싶었다.

아직 물집은 다행히 없다.


다행이야, 고마워~ 조금만 힘내자!

나는 호랑이 연고와 파스를 붙이며 다리를 달래줬다.


경험자들의 조언에 의하면 수비리까지 마의 3일을 잘 넘겨야 그 이후부터 길을 안정적으로 걸을 것이라고 했다.


작은 완주의 기쁨보다는 다음지표로 이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수비리 전까지 나는 마치 마감작업 직전의 긴장감을 가지고 길을 걸었던 것 같다.


다음 일정은 론세스바예스부터 수비리까지의 일정이었다.


Buen Camino!



#론세스바예스 #해리포터 #영화 #다이애건앨리 #마법지팡이 #피레네 #부엔카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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