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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May 02. 2024

ONE STEP, 피레네를 넘어

오른쪽으로 가시오!



오른쪽으로 가는 안내도


크레덴셜 사무소에서 나눠준 지형 지도





크레덴셜 여권 사무소 자원 봉사자는 피레네에서 꼭 오른쪽 길로 가세요!라는 당부와 함께 지형이 안내된 지도를 나에게 건넸다.


안 그래도 손미나 씨 유튜브나 어떤 한국인 순례자의 유튜브에서 길을 잃고 돌고 돌아 겨우길을 찾아 털썩 주저앉아 우는 모습이 담겼다.


걷는 입장에서 바라본 그 광경은 마치 내가 그곳에서 길을 잃고 겨우 숙소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왜냐하면 길을 잃는다는 게 가장 현실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영화 더 웨이에서조차 주인공 아들이 피레네 산을 넘다가 벼락을 맞고 죽는 상황이 펼쳐진다.


상상 속의 나는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듯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날씨였는데,

너무 다행히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2023년 9월 20일 새벽 5시


나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알람 없이 침대에서 눈을 떴다.


부지런한 순례자들은 새벽 5시부터 출발준비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자화장실 변기가 두 개밖에 없는 화장실에 몰리기 전에 미리 일찍 씻고 갈 준비를 했다.


독일 영화 “나의 산티아고”를 보면 공용 오픈 샤워장이 나온다. 나는 중학생 때 호주 연수 당시 참가했던

야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동야외 샤워장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 샤워장 문이 있는 알베르게에만 묵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와일드한 경험은 프랑스 길을 걸으며 만나 보진 못했다.


소설과 현실, 영화 “더웨이”에 나오는 바닷가 풍경이 나왔던 걸 보면 영화상의 표현을 위해 여러 길들이 겹쳐서 표현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혹여나 잠을 설칠까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고 잠이 들었다. 전날 파리에서부터의 여독이 피곤했는지 침대에 싸구려 부직포 시트를 깔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다.


영화에서 처럼 주인공이 잠 잘 곳이 없어서 간이침대를 깔고 자는 경험은 나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코로나 전이었으니 그간 많은 알베르게가 문을 닫고, 리뉴얼을 많이 했다는 정보만 얻을 뿐이었다.






타로카드



모든 순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넘고 싶어 하는 산 피레네 산맥을 넘는 그날이 왔다.

왜 우리는 모두 이 높지도 않은 이 산을 넘고 싶어 할까?


타로카드;

타로카드 이야기를 해보자면, 타로카드 자체가 거의 서양사를 관통한다.

우리는 잘 못 느끼고 있지만 모든 영화나 소설 드라마의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결국 길을 떠나는 이야기라는 걸 걸으며 새삼 깨닫게 됐다. 고전서부터 게임까지 우리 이야기의 시작은 길을 떠난다.


0번 FOOL CARD(바보;순례자)

나는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타로 카드의 “0번 Fool card”였다.

그림에는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나는 저 바보가 “순례자”로 보였다.


꿈과 이상을 찾아 떠나는 바보는 몽상가이자 순수함을 상징하는 하얀 장미를 들고 미지의 땅을 향해 길을 떠난다. 단출한 배낭을 꾸리고 길동무인 강아지를 벗 삼아 몸도 마음도 가볍다.


형형색색의 기워 입은 것 같은 누더기 옷은 이 사람이 어떤 신분인지 조차 알 수가 없다.

=나는 저 의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오색찬란한 등산복으로 보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순례자들이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피레네라는 큰 벽 앞에 피레네는 대지의 어머니 이자 안내자, 진정한 순례자로서 영혼을 성숙하게 만드는 길로 인도하는 첫 관문인 바로 피레네를 맞이하게 된다.


9번 HERMIT(은둔자;수도사)

사고가 많은 곳인 만큼 자원봉사자들은 9번 허밋 HERMIT 은둔자 카드에 나오는 수도자들처럼 우리에게 딱 한 발짝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도록 작은 호롱불을 비추며 길을 안내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이야기하는 안전한 오른쪽 길이란 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보카드의 그림처럼 갑자기 나타날 낭떠러지 같은 위험 속에서 한발 물러서 위험을 피해 우리가 고대하고 꿈꾸던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자인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누군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 한 부분만 짚어줘도 인생이 꽃을 피우게 되는 경우를

자기 계발서나 현시대 많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은둔자 또한 수도사가 되기 전 바보처럼 미지의 길을 찾아 떠난 순례자였을 것이다.

여러 위험을 겪고 지혜를 얻기 위해 산속 깊숙이 들어가 공부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배가 고플 때 빵을 주는 이가 귀인 아니던가?  


은둔자는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자 우리가 후배들에게 물려줄 지혜를

전달해 줄 누군가가 되어 가야 할 길일 것이다.




우리들은 군기가 바짝 든 훈련생들처럼 다들 알베르게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등반을 할 준비를 했다.


알베르게는 먼 길을 떠나기 위한 순례자들을 위해 아침 토스트와 커피가 제공되었다.

냉장고에 음식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빵을 직접 구워 잼을 발라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고는

방명록에 시작의 길을 응원하는 글을 남겼다.

이 사람들 모두 산티아고에서 만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새벽 6시 20분


알베르게 나무문을 열고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공기를 뚫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이름 모를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조차 몰랐기 때문에 카미노앱 방향키를 켜고는 우왕좌왕하면서 길을 따라갔다.


마침 나를 뒤따라 나오던 덴마크 청년 노아가 길을 가는 거면 함께 가자고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얼굴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낯선 사람이었지만, 피레네라는 방향만 가지고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새벽 산길은 정말 어둡고 무섭다.

어제 거리의 음악가들이 버스킹을 하던 성당입구 쪽으로 길을 가다 보니 순례자들의 헤드렌턴 불빛이 반딧불이 불처럼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말 옛 순례자들이 별에 의지해 걷듯이 지금 우리들 역시 길을 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별자리가 어떻게 되냐 물어보니 “사자자리”라고 했다.

(아주 용맹하게 산티아고 길을 완주하길! 바랍니다.)라고 속으로 기도를 했다.

매일 같이 출발했던 순례자 10명 중 3명 만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다고 한다.

나는 나와 인연이 닿는 모두는 아닐지라도 안전하게 그 길을 가기를 기원해주고 싶었다.


나는 스틱을 한국에서 짐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안 가져왔다고 했더니,

“스틱은 어른들이 이나 들고 다니는 거죠” 하며 내 말을 받아쳤다.

(나도 어른인데, 허허 고맙네 젊은이) 속으로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내 경험상 모든 강한 확신은 추후 그 사람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알게 된다면,

얼마나 그 기준이란 게 허황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아직 도시티를 벗지 못한 풋내기 순례자이니까.


덴마크 순례자 노아(사진 제공: 순례자 세이야)


걸을수록 탄력이 붙었는지 노아는 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내 배낭은 피레네를 오르면서 바로 잘못 샀다는 걸 체감하게 됐다. 거의 배낭을 내릴 필요 없이 설계된 요즘 가방들과 달리 뭔가 꺼내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다 토해내야 하는 구조라 가방을 내려서 짐을 꺼내고 매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보다 나는 걸음이 한참 뒤처지기 시작했다. 나는 노아에 비해 아주 천천히 걸었기 때문에 편하게 먼저 가라고 인사를 하고 다시 혼자 길을 걸었다.


두 번째 만난 순례자는

캐나다 순례자였는데, 노아가 떠나고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이 펼쳐졌다.

앞길이 전혀 안 보여서 헤드렌턴을 켜고 길을 걸어야 했다.


캐런은 캐나다에서 역사학 석박사 과정을 연구생이다.

공부만 하다 보니 너무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쳐서 몸으로 체험할 수 산티아고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낯선 이들과의 대화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어떤 일을 하고 자산이 얼마큼 있고,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공부는 얼마만큼 했는지와 같은 배경은 부차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도시를 떠나 피레네산 깊숙이 산을 오를수룩 도시에서 규정짓던 모든 것들이 뿌옇게 잊히고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 그 자체로 고해성사하듯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산티아고라는 주제가 아니었다면 절대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다니 말이다.


길의 방향성 때문에 길을 걷는 이 그리고 다음 스탭을 준비하기 전 휴식을 위해 찾은 이 그리고 나처럼 상실의 상처를 치유하길 원하며 아빠와의 이별을 추모하고 추억을 기리기 위해 마음을 추스르고 싶어서 등 등 다양한 이유로 산티아고를 걷고 있었다.


확실히 어둠 속에서 우리는 고해성사하듯이 더 진솔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등 뒤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는 길의 설렘만큼 아름다운 피레네의 풍경이 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피레네 일출& 풀뜯는 양떼들



길을 걷는 내내 맞이한 풍경은 카메라에 다 안 담길 정도로 크고 아름답다는 표현 밖에 나오질 않았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줄지어 피레네를 오르고 있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장관이었다. 왠지 모르게 나는 더 빠르게 길을 걸어야겠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경사가 꽤 있어서 지그재그로 된 길을 가다 보면 길을 막아서 풀을 뜯는 양 떼와 소들을 마주치곤 했다.

저 멀리서 뛰노는 야생말들의 모습까지 이게 과연 살아서 맞이할 수 있는 현실일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컴퓨터 윈도우 배경화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모두에게 이 길은 쉬운 결단을 하고 온 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꿈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2022년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꿈을 꿨었다.

아주 넓고 푸른 풍경이 나타났다.

정말 처음 보는 곳이었다.

아빠는 그곳에서 밭을 갉으면서

밝게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고 계셨다.


나는 그 꿈을 꾸면서도 좋은 곳에 가셨겠구나 생각하면서 안도했었다. 그런데 여기 피레네에서 보는 풍경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가 꿈속에서 봤던 거기가 아닐까 싶은 풍경 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경사진 언덕을 오르면서 나에게 필요한 나무 스틱을 피레네에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산림이 우거진 길이 앞으로 많지 않다는 것도 포인트였다.


캐런은 동이 트는 피레네를 걸으며 짧은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해가 뜨고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캐런의 발걸음은 더 빨라졌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하고 쿨하게 각자 갈길을 갔다.





처음으로 맞이한 푸드 트럭에서 오렌지 주스와 바나나를 사 먹었다.

길을 걷는 내내 어제 생장에서 샀던 방울토마토와 초콜릿을 까먹으로 계속 걸었는데도,

계속 허기가 졌다.


많은 순례자들이 푸드트럭 주변에 둘러앉아 풍경을 보며 휴식을 즐겼다.

오르기만 하는 길이 아니라 천천히 피레네를 각자의 방식으로 담아가고 있었다.

여러 번 이 산을 오를 수는 있지만 오늘의 피레네는 또 다시 없을 시간 이기 때문이다.


푸드트럭 근처 하얀색 마카로 화장실 표시가 있는 곳을 갔더니 그냥 돌무더기 들이었다.


음… 처음 만난 리얼 자연 화장실이다.


볼일을 본 곳에는 찌린내만 진동을 해서 어디에 볼일을 봐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화장실 볼일을 봐야겠다 생각해서

볼일을 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하지만 몸은 좀처럼 적응하질 못했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누가 올까 봐 빠르게 바지를 올리고는 다시 가방을 들쳐 매고 길을 올랐다.





<번외 편:여자 순례자와 화장실>


번외로 화장실 얘기를 하니까 생각난 건데, 길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자면 길을 걷는 내내 생리 기간이 걸릴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길을 걸었는지 모른다.


생리기간 어떻게 걸었다는 여성 순례자들의 이야기가 아무리 내 선에서 자료를 찾아봐도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 출발 한 달 전 생리를 미루는 약을 먹고는 길을 떠났다.

길을 걷는 내내 "그날"에 대한 고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됐었다.


하지만 갑자기 내 몸이 피로와 익숙하지 않은 과다한 운동패턴에 생리가 나올 수도 있을 터였다.

간혹 여성 순례자들 중에 어떤 구간을 점프해서 말없이 가는 경우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화장실이 그중 한 가지 이유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넘게 걷는 길에서 여성이라면

누구나 7일간 이날을 피할 수가 없다.

다들 탐폰을 사용해서 고생을 줄일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생각만 해도 시작될 고통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체력적으로 하루 20km의 짐을 들고 걸어 다닌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나는 평상시에도 양이 많고 생리통이 심한 편이라 아마 그날이 시작되는 순간 일주일은 몸져누워있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걷는 내내 남성 순례자들처럼 쉽게 볼일을 해결 할수 없기 때문에 왜 그렇게 순례길에 남성 비중이 높은지 직접 걷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여자 순례자들이 겪어야 할 화장실과 위생 문제는 각자 개인의 몫이기도 했지만, 여자 순례자들끼리 암묵적으로 서로를 지키고 보살펴야 할 부분이었다.

생리대나 탐폰은 운동선수들도 구급용품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가져온 구급 용품과 더불어 혹시 몰라 생리대와 탐폰을 챙겨 갔었다.







첫번째 경유지, 오리손



본론으로 돌아가서, 다시 까미노 길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게 계속 뭔가를 먹으며 길을 걷지만 하루종일 열량을 태우며 걸어야 하니 그만큼 먹는 양도 중요할 터였다.


정말 하루종일 배가 고팠던 것 같다.

배가 고픈 수준이 정말 장난 안 치고 화가 날 지경일 정도였다.


드디어 오리손에 도착했다.!!!


첫 번째 경로에 도착하다니!!!

10km대의 오르막을 12시가 다 돼서야 올라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구글맵에서 안내하는 걷기 시간은 내가 기계라면 쉬지 않고 갔을 때 가능한 시간대였다.

2시간 30분이라니…


오리손 휴게소에서 캐런은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가방을 테이블에 벗어던지고 참았던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느새 내 등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땀에 젖을 정도로 운동한 적이 있던가?

오롯이 걷기에만 집중하는 길이었다.


첫 산행에서 오리손 순례도장을 찍었다.


토르티야와 아메리카노를 시켜 야외 테라스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화장실 가는 게 싶진 않았지만, 화장실이 보이는 곳에서는 꼭 볼일을 보고 길을 가야 한다.


야외 화장실이 적응이 안 되는지 몸은 버퍼링 걸린 듯 볼일 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빨리 적응하고 받아들일수록 길을 수월하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잠깐의 점심 식사와 휴식을 마치고,

땀에 젖은 티셔츠도 거의 말라갈 때즈음

다시 걸을 채비를 마쳤다.

오리손을 지나 더 경사 높은 언덕들이 나타났다.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길 앞만 보며 걷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길가 양옆에는 붉게 익은 산딸기와 민트가 잡초처럼 자라고 있었다.


민트가 보이자 나는 반가움에 민트를 뜯어서 향기를 맡으며 귀에 꽂고 길을 걸어가니 더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만약 한국이었으면 지천에 널려 있는 산딸기를 다 따먹었을 텐데 이 길에서 산딸기는 그저 관상용일 뿐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산딸기를 따먹지 않나 보군..

그라시아스!!!


나는 신이 나서 산딸기를 한 웅큼 따먹으며 길을 걸었다.

내 옆에서 같이 산딸기를 따먹던 콜롬비아 순례자는 나에게 한 움큼을 주었다.

그분은 영어를 전혀 못했지만 우리는 서로 소통이 됐었다.

산딸기로 통한 인연이랄까?


콜롬비아 순례자


땅에는 민트가 지천에 있고 베리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어 따먹고, 조금 멀리 길을 보면 나무와 양 떼들 그리고 말과 소가 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리곤 바라본 하늘에서 나의 감동은 절정에 이르렀다.


오르막을 오르는 길은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눈과 귀 코까지 새롭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그간 도시에서 못 보던 거리의 풍경까지 담아내기 위해 나의 머리와 눈이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몽고인들이 시력이 4.0인 이유를 알게 됐달까?

정말 파노라마 4D영화를 보는 것처럼 드넓게 펼쳐진 대자연에 몸과 마음이 활짝 열린 것 같았다.


산 정상에 다다를 때 즈음 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바로 독수리를 본 것이다.

아주 멀리서 보이던 독수리 무리는 하늘을 뱅뱅 돌고 있었다.

아마도 위에서 먹잇감이 발견돼서 그렀겠지?


내 머리 위로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내려오는 독수리 무리를 만났다.

독수리는 내 키만 한 크기로 정말 생각한 것 보다도 덩치가 아주 컸다.

나는 왠지 이 독수리가 순례자들을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우리를 넘어갈 때마다 보이는 새로운 풍경에 나는 다음 풍경에는 뭐가 나타날지 이제는 영화의 다음씬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하게 만드는 생생한 현실영화를 보는 듯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주 멀리 봉우리에 흰 숫소 조각상이 설치돼있다 생각할 만한 거대한 조각상이 보였다.

설마 저게 실제 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라 같이 올라가던 사람들과 진짜 소 일지 의논을 나눌 정도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아주 큰 숫소였고, 그것이 설마 진짜 숫소 일거라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왜 사람들이 흰소를 신격화할 정도 영물로 모셨는지 알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소는 봉우리에 앉아서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베이지색 털이 햇볕에 반사되어 빛이 났다.

다 안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표정이 미련한 미물들을 위로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산 위로 올라와서 참 이상하고 묘한 경험이었다.


피레네에서 만난 독수리와 황소들


오르막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피레네의 내리막길을 경험하고 앞으로 펼쳐질 앞으로의 길이 기대가 됐다.


나의 두려움은 이제 설렘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부터 내리막길!

오른쪽으로 가시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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